일상에서 내 작업물들을 마주하는 디자이너의 심정들.
처음 디자이너로 첫 외주를 시작했던 시기가 2017년 겨울로 기억된다. 내 나이 22살 군대를 막 전역한 겨울 놀랍게도 디자이너도, 디자인과 학생도 아니었을 시기.
20살에 입대했던 나는 동갑내기들보다 조금 빠른 시기에 전역을 할 수 있었고, 말년병장 때 미리 알바자리를 구할정도로 무언가를 빠르게 추친하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던 시기였다. 전역하고 막연한 여행을 꿈꾸는 것은 가뜩이나 2년을 군대에 소비한 나에게는 너무나 큰 사치라 생각되어, 여행보다는 일과 공부에 전념을 하겠다 마음먹고 나왔었고 이는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과정에서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취미생활로 하게 되었는데 자연스럽게 크몽, 오투잡같은 재능기부 사이트에 눈이 가는 것도 하나의 흐름 같았다. 체계적인 배움과 이론으로 다져진 디자인 실력이라기보다는 소비자들의 손그림을 일러스트로 만들어주는 것. 이 사소한 행동이 지금의 내 회사의 첫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도 못했다.
무척이나 간단한 로고작업, 포토샵으로 목업 해주던 작업들을 당시 5-10만원 비싸면 20만원정도 받고 진행했었고 아침 저녁으로 마트에서 알바를 하고 있던 나에게 한달에 50만원이상 더해지는 소소한 수입은 생각보다 많은 생각을 갖게 해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대 초반, 디자이너를 바라보던 내가 제일 꿈꾸던 것은 일상에서 내 디자인 작업물들을 만나는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라는 시간을 정말 쉼 없이 달렸고 무엇이든 도움이 될 거라면 과감하게 투자해 온 결과, 지도를 열면 서울부터 부산, 제주도까지 대부분 지역에 나와 함께했던 클라이언트의 사업장들이 위치하고 있고, 중고등학교, 20대 초반에 생각했던 내 모습보다는 훨씬 더 나은 나로 나아가고 있다고 감히 생각된다.
막연하게 외주를 주던 대표님들과의 미팅자리의 분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편한 분위기로 바뀌어갔고, 일의 모든 요소 들은 흥미를 바탕으로 점차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마트나 거리, 홈쇼핑등 다양한 곳에서 내가 디자인했던 작업물들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때로는 그 브랜드 공간에 놀러 가기도, 지인한테 소개하기도 하면서 주말을 보낸다.
상상이나 했었을까, 내가 할리스커피, 공차, 연세생활건강 같은 이름만 들어도 아는 브랜드들과 함께 일을 하고 디자이너로 인정받고 있을 줄은. 이 모든 결과에는 어느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한길만 꾸준히 파고 있던 내 일상이 바탕이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지인들이나 후배들이 자주 묻는다. 본인 작업물을 실제로 보면 어떤 기분이냐고.
너무 기쁘고 내 자식 같다 생각이 될 것 같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현실은 오류가 있을까 봐, 잘 못 나온 게 있을까 봐, 무드가 틀릴까 봐, 소비자 반응이 안 좋을까 봐 불안한 마음이 가득하고 심한 경우는 출시된 제품이 고난도였을 때는 평상시 같았으면 구매를 해서 직접 보는 편인데 인터넷상에서 찾아보지도 않는다. 며칠이 지나 좋은 반응이 보이면 그때 바라보고 기뻐한다.
실력이 더 좋아지고 분야의 마스터에 근접하게 되더라도 이런 내 모습은 고쳐지진 않을 것 같다.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게 내가 걷고 있는 디자인이라는 학문이다. 학습을 멈추는 순간, 트렌드와 흐름은 생각보다 금방 나보다 앞서나가기 시작하고 걷잡을 수 없이 격차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디자이너로 내 인생은 불안하면서 근사하다.
하지만 매년 목표치가 달라짐은 사실이고, 이에 한 번도 만족감은 가져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다른 디자이너들보다 늦은 24살에 디자인학문을 접한 것도 사실이고, 다른 대표님들보다 너무 이른 나이인 25살에 사업자를 내어 경험이 미숙한 것도 사실이다. 항상 미숙함과 부족한 학습과 경험은 발목의 족쇄같이 느껴졌고 보완할 방법은 올바른 길로 시간투자와 노력밖에 없었기에 여태껏 그래왔으며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더 많은 공부가 더 좋은 길의 발판이 될 것이라 자신한다.
어리석었던 10대를 많이 망가트려서 20대는 그렇게 후회하고 싶지 않았었고, 과정에서 너무 좋은 사람들과 너무 좋은 일들을 하게 되었고, 이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세상에 좋은 디자인들을 만들어나가는 게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내 목표로 점차 자리 잡을 것이다. 이제는 포트폴리오가 다양해지기보다는, 많은 클라이언트가 지향하는 디자인의 포트폴리오 리스트에서 내 작업물들이 많이 보이길 바라고 있다.
디자이너는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 시간낭비를 인사이트 얻는 데 사용하고 시간소비를 학문에 투자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게 일상이 되어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나아가다 보면 30대엔 더 높이 올라가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