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까지 남의 말에 휘둘려 살아야 하는가.
24살 내 첫 직장 상사는 어느 경기도 소재 대학의 교수였다. 부모님을 포함해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교수를 상사로 두고 있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고 했는데 꿈이 교수이기도 했고, 첫 직장이라 모든 게 긍정적인 시기여서 잘 들리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1년이 지날때즘 지칠 대로 지쳐진 나는 '내일 출근할 때 우리 아들 좀 유치원에 태워다 주고 출근해 줘'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듣고 회사를 제외하면 너무 행복했던 경기도생활과 5개 월남은 원룸비, 1개월 지나면 받게 될 퇴직금등 모든 이점을 내려놓고 사표를 쓰고 고향인 세종으로 내려갔다. 남아있던 모든 자존심을 짓밟은 그 한마디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라는 24년간 믿고 있던 신념이 보다 현실적으로 변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내려오는 차 안에서 언젠가 다시 서울로 올라갈 때는 더 강해져야겠다 다짐했지만 그런 동기부여는 소용이 없었고 내려와서 한두 달간 내적으로 많이 방황했었다. 남을 탓하기 싫었다. 나를 무너트린 건 그 교수가 아니라 그 정도 대우밖에 못 받아야 하는 현실과 내 위치였다.
이때 필자는 처음 번아웃을 경험했었다.
번아웃은 주로 과도한 스트레스와 업무 부담, 심리적인 압박, 몰입과 동기 부족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심리적, 정서적, 생리적인 상태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업무 부담, 압박, 몰입과 동기부족은 전체적으로 내적 요소에서 발생하기보다는 외부의 영향력이 의해서 발생할 확률이 크다. 나 또한 그랬었다. 동기 부족이나 몰입도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압박이 너무 크게 작용했어요 서다. 어엿하게 30대를 바라보기 시작할 나이 25살에 고작 이런 대우나 받고 무너지고 있는 현실이 나를 너무 작게 만들었고 자연스레 일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내가 부족하고 못났기 때문에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생겨난다.
스트레스의 요인이 타인이라면 이는 타인이 못나서가 아니라 내가 부족해서일 확률이 크다. 남탓하지 말라고들 많이들 한다. 맞는 이야기다. 남탓하기 전에 부족한 나를 돌아보면 번아웃이 시작된 스트레스, 부담의 원인이 보인다. 나의 어리숙하고 무능력함이 상대에게는 약점으로 보여서, 내 지위가 누구나 훈수두기 편한 위치에 있어서 등등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남 탓만 하며 자기합리화하는 방법과 내 탓을 하며 자기 강화를 하는 두 방법이 있는데, 본 글은 후자에 관련해서 서술하였다.
먼저 번아웃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며 위의 내용을 녹여보고자 하였다.
필자가 자신하는 현실적인 제안이고 적용범위에 대한 확신과 근거자료는 지극히 주관적임을 밝히는 바다.
1. 성장에 도움이 안 되는 노력은 대체적으로 몸이 편하고 자만감이 따라온다.
우리가 꼼꼼히 보아야 하는 사항이 있다면 바로 노력과 시간의 비례 곡선의 우상향을 만들어내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분명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것 같은데 가속도와 결과물의 존재에 대한 차별점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이는 위의 사항에 해당될 수 있다. 바로 누구나 시간만 지속적으로 투자하면 해낼 수 있는 것들. 전문성과 기술성이 부재함에도 언어술사들에게 속아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고 있는 그런 분야는 실제로 정말 많이 존재한다.
노력과 피땀 섞인 노력은 엄연히 다른 말이다. 지속적으로 시간투자와 일을 한 흔적이 쌓여 나가는 것은 보통 전자에 속한다. 반대로 매 순간 힘겹게 딛고 일어나고 반복하는 것들이 대부분 후자에 속한다. 같은 시간을 투자했음에도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전자와 후자 중 어떤 것을 선택해서 투자했는지에 따른 선택의 결과이다. 남들이 다 만들어놓은 등산로를 10시간 동안 등산하고 얻은 '10시간 등산'타이틀과 남들이 올라보지 못한산을 개척해 나가면서 등산하는데 10시간을 소요한 사람의 '10시간 등산' 타이틀은 이름은 같지만 경험치와 얻어낸 총량의 무게는 엄연히 다르다. 하나 사람들은 흔한 착각에 이를 타이틀만 놓고 동일하게 판단한다. "왜 똑같이 일했는데 나만 느리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다.
명심하자. 누구나 다하는 것들은 그만큼 얻기 쉽고, 누구나 함부로 해내기 어려운 것들은 숨겨진 피나는 노력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만큼 쉽게 열등감과 실망감으로 다가온다.
2. 사람을 너무 믿지 말고, 가설에 근거와 확신이 없다면 내 사람에게 너무 확신을 주지말자.
나이가 들수록 확실해지는 것, 바로 거리감을 두어야 하는 두 분야의 사람이 확실히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를 관상과 행동 그리고 고집으로 판단한다. 관상이 흐리멍덩하고 힘이 없는 사람은 대게 노력과 열정이 없는 편이고, 반대로 누군가에게 큰 피해를 입히거나 방해를 하는 사람은 얼굴에 대놓고 사기꾼이라고 이야기하듯이 관상이 이야기를 한다. 관상의 판단은 과학적이지 않고 지극히 주관적이며 결과의 근거 또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분들도 분명 알 것이다. 믿고 걸러야 하는 관상은 존재하며, 이는 추가적으로 관상뿐만이 아니라 행동에서도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관상과 행동으로 사람을 보는 능력도 키워야한다.
또 하나는 고집이다. 서두에 말했듯 고집 센 사람을 필자도 많이 만나면서 살아왔다. 그 결과 이는 여든까지 습관이 간다고 하듯이 절대 고쳐질 수 없다는 것이다. 고집 센 사람을 곁에 두면 주변사람만 힘들고 지친다. 같이 일하는 파트너 중에도, 클라이언트 중에도 많이 봐왔지만 결과적으로 남기고 오래가고 있는 사람 중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필자도 고집이 있는 편이다. 이것이 주변사람들에게 득이 될 수도 실이 될 수도 있는 것을 알기에 정말 많이 고치고 개선해나가고 있다. 필요한 고집은 일에 추진력이 될 것이고, 필요 없는 고집은 남한테 피해만 주기 때문이다.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엮여 지내간다. 그만큼 조심해야 하고 어렵게 생각해야 하는 게 바로 사람관계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만나는데에서 인복과 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20대인 필자에게는 삶에 현명함이 묻어 있지는 않기에 많이 맞아가면서 배우는 편이다. 그래도 중간이라도 가려면 사람을 너무 믿지 말아야 하고, 사람에게 너무 확신을 줘서 실망을 시켜서도 안된다는 점이다.
3. 일상에 큰 리스크가 될 행동과 요소는 삶에서 배척하자.
나라는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게 첫 발걸음이다. 내가 안 아프고 내가 행복해야 내가 하는 일들이 다 잘 이루어지는, 정말 간단한 논리이기도 하다. 잦은 부상이나 일상에 체력적으로 영향을 크게 주는 무언가가 있다면 이를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새롭게 정의하면서 생각해 보자. 체력저하로 발생하는 의욕부족이 생각보다 번아웃으로 다가올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적 요인으로 몸이 아픈 것은 치료를 통해서 극복하면 되지만 인간관계나 타 요소에 의해 발생된 내적 상처는 일상에 크게 영향력을 끼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많이 주었는데 떠나는 과정에서 메꾸지 못하는 공허함, 뜻밖에 배신으로 안게 되는 모든 부담감, 우연히 떠밀려 억지로 책임지게 되는 수많은 일들.. 이런 일들을 우리는 사전에 예방할 필요가 있다.
보다 현실적으로 살아가자. 확신이 없는 분야에 진심을 다해 일할 이유도, 근거가 부족한 무언가에 떠밀려 정성을 담아내는 것도, 우리는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현실적으로 이를 대응해야 한다. 내 주위에 내가 끼치는 영향력이 내가 확신하고 자신 있는 분야 외적으로 퍼져있다면 그 범주에서 일이 터졌을 때의 대응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런 요소들을 사전에 방지하고 영역을 줄여서 강화해 나간다면 정신없는 일상에서 보다 안정적으로 바뀌어 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이 글에서 번아웃을 막아낼 마지막 결과점으로 필자는 사회적 지위와 책임을 꺼내고자 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타인이 보기에 몸집이 크게 느껴지게끔 만들어야 한다. 마치 목도리도 마뱀처럼 말이다. 동종업계나 지인들에겐 자랑거리로밖에 안보이겠지만 이는 어떻게 보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강해 보이려는 발버둥이라고 보면 된다. 처음부터 높은 지위를 갖고 사회에 나가기는 극히 드물고 힘들다. 그런 우리는 실제로 그럴싸해 보이게끔, 대신에 실제로 행 해졌을 때 이행이 가능하게끔 나를 브랜딩해나 간다. 성장의 과정에서 가설로 내세웠던 모든 장점들은 현실화되어 능력으로 바뀌어야 하며 이를 통해서 사회적인 지위를 하나하나 얻어나갈 때 비로소 성장을 하고, 나아가 높아진 지위에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적어질 것이다. 내가 위치한 자리가 높아진다 해도 그 위에는 항상 강자가 존재한다. 필자도 이 사항을 알고 있으며 적어도 가급적이면 높은 자리에 위치하여 내 위의 숫자를 줄여보자는 의도의 이야기다.
잦게 무너지는 사람이라면 특히 내가 지켜내고 보호해야 할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너무 혼자 생활하고 책임져야 할게 나밖에 없을 때 사람은 극단적인 판단이 가능해진다.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사람을 통해서 만드는 방법이다. 내가 무언가를 쉽게 포기하면 나 때문에 일상에 지장이 생기는 내 사람들, 나를 믿고 밀어주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스스로가 알아야 한다.
필자도 필자를 믿고 같이 일해주는 너무 고마운 사람들이 있고 이 사람들에게 항상 내가 조금이라도 열심히 해서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다고 수시로 이야기한다. 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나와 함께해 주는 시간과 열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요소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믿어주고 밀어주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내가 잘돼서 그런 마음들이 빛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마음 하나뿐이다.
이런 책임감을 바탕으로 하는 마음들이 한둘 모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번아웃의 상황이 와도 쉽게 손 놓지 못하고 버텨내는 지구력과 힘이 생긴다.
폰, 룩, 비숍, 나이트 등 다양한 체스말이 있지만 체스판에선 퀸이 매우 중요하게 활용된다. 퀸이 죽으면 전략적으로 상당히 불리 해지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퀸이 없는 킹은 매 순간이 위험해지며, 상대측 퀸이 없을 때 공략루트가 수없이 많아진다. 퀸이 죽으면 이로 인해 상대측은 기회를, 내측은 위기를 맞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내가 일상에서 사라질 때 체스판에서 퀸 정도의 영향력을 끼치는가? 아니면 여느 말처럼 없어도 대체가능한 자원이 많은가? 내가 퀸이라면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애초에 다르기에 번아웃의 외부 영향력에서 많은 요인이 배제되어 다가올 것이지만, 내가 폰이라면 그리 중요하지 않기에 하찮은 대우와 지시가 따라와 번아웃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우리는 퀸이 되어야 한다. 많은 노력으로 판의 흐름에 영향을 주는 퀸이 되면 적어도 잦게 찾아오는 번아웃은 생각지도 못하게 해야 할 일, 해나가야 할 일들을 소화해야 하기에 자연스레 묻어질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