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영작가 Aug 13. 2023

사업하는 20대의 현실적인
소비습관 변화

사업 4년 차 디자이너의 너무나 현실적인 소비습관 변화 

필자는 대학 4년과 석박사 과정을 밟아가는 디자이너이자, 직장생활 1년을 거치고 간이사업자에서 법인사업자로 순차적인 단계를 밟아오고 있는 사업자이다. 본래 자기 계발에 욕심이 많아 학력도 이력도 포기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아서 사업이라는 길을 택하였고, 그 과정의 많은 변화를 소비습관에 맞추어 정리해보고자 했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가 비싸다 느껴졌던 시기, 1년 차


19-20년, 처음 간이사업자로 본가에서 외주를 받아가면서 일했지만 이력도 마케팅방법도 잘 몰랐기에 잦게 찾아주는 클라이언트는 물론 고정클라이언트가 없어서 '라우드소싱'이라는 국내 플랫폼으로 콘테스트 참여에 간절히 목매달아 살았었다. 그렇게 1년 조금 넘게 남짓한 시간 동안 국세청에 찍힌 수입은 일반 직장인 수준에 다를 게 없었다. 당시엔 1,2만 원도 쓰기 벅차고 커피값도 너무 소중했어서 강의나 업무적 개발향상에 많은 금전적 투자를 하지 못했었고 그로 인해 반년의 정체기가 왔었다. 지나고 늘 생각하는 것은 실력도 투자가 이루어져야지 효과를 본다는 것. 이루고자 하는 사항엔 최소한의 금전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결과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많이 배웠었다. 이때 2-30만 원 무언가 하려는 것에 과감하게 투자를 했었더라면 지금 그 분야도 갖추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가 가까워지던 시기, 2년 차


20년 후반, 처음 고정 클라이언트가 생겼다. 다만 늦은 학업 마무리로 학교를 병행하다 보니 일 소화가 더디고 많은 기회를 놓치기도 했었다. 1-2년 만에 실력이 나름 늘어나면서 작업의 범주가 커져갔고 그에 따라 프로젝트 건당 평균 금액대가 70만 원대까지 올라왔고 일반 직장인평균보다는 조금 더 버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이때부터 자유로이 일하던 업무스타일이 점차 8시 출근, 7시 퇴근의 직장인들처럼 구체화가 이루어졌고 프리랜서 일상이라기보다는 정말 사업하는 사람의 하루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많은 직장인들이 사업을 하면 모든 생활이 낙천적이고 자유로울 거라고, 모든 게 원하는 흐름대로 잘 흘러가리라 예상하겠지만 사업이라는 늪은 생각보다 깊어서 가벼운 강 건너기 수준으로 생각하고 뛰어들었다가는 큰코다친다고 감히 이야기한다. 세금이라는 게 이때부터 눈에 띄게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 시작했고, 현명하게 일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발 벗고 지원사업, 세무일정 등을 파악해나가야 했다. 이 시기에도 달 수입이 꾸준치않았고 잘 벌어도 개인소비에 많은 투자를 하긴 어려웠었다. 다만 작년과 다르게 디자인작업에 필요로 한 많은 요소에는 아낌없이 투자를 감행했고, 공부에 있어서도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스타벅스를 집처럼 들락거리던 시기, 3년 차


20-22년 처음 사무실을 두고, 수도권 근처로 이사하면서 달마다 책임져야 하는 많은 요소들이 생겨났다. 대면으로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일도 잦아서 언변능력의 극대화를 위한 노력도 많이 이루어졌고, 땀나는 하루가 현실이 되어가는 시점도 이때였다. 대인관계에 힘듦도 많고 하는 업무량도 한두 업체가 아니라 많으면 8-10곳을 상대하는 게 일상이 되다 보니 카톡정리, 데이터정리도 필수화가 되었고 취미생활은 모두 이때 접게 되었다. 필자도 흔히 말하는 월 1000만 원 수입이라는 단어가 이 시기에 잦게 나타났었다. 작년과 달라진 수입규모에 조금은 거만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명품이란 걸 생전 들여다보지도 않던 내가 수시로 백화점을 오다니기 시작했다.


100, 200만 원 정도 하는 옷, 신발들은 며칠 노력하면 살 수 있는 자잘한 재물로밖에 눈에 안보였었고 그런 사치스러운 시기가 자리 잡을 때마다 사람의 눈은 더 높아져 말도 안 되는 현실을 꿈꾸곤 했다. 보다 현명한 눈과 지혜가 따랐었다면 먼 훗날 사업투자를 위해 저축을 했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매일 힘들게 일하는데 당연한 댓가와 보상이라 생각했었다. 사치스러움은 잠시, 매출 규모가 억대로 잡히기 시작하면서 다가오는 세금과 책임의 그림자가 서서히 등 뒤를 감싸기 시작했다. 


1년을 돈 쓰는 재미에 살았었다. 사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이때 제일 많이 벌었었으니, 주식투자로 1천만 원 가까이 날렸기도 했는데 한두 달 일하면 커버되는 금액이라는 말도 안 되는 자만으로 웃으며 넘겼던 것들이 어느 순간 폭탄 돌리기가 되기도 했었다. 더불어 세금폭탄도 이시기에 경험하였다. 사람 소비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고, 스스로 고쳐야지 고쳐야지 하면서도 쉽게 고치지 못했었다. 그렇게 27살에 4천만 원 가까운 돈을 일과 관계없는 사치에 불태우면서 보냈다. 


그리고 그해 겨울 하나뿐인 소중한 반려묘를 떠나보내면서 삶의 많은 요소가 뒤바뀌었다. 


6년을 함께해 온 반려묘가 세상을 떠났다. 며칠 전까지 멀쩡하던 아이가 더 살 수 없다는 판정을 듣고 모든 일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시작된 아이와 마지막 이별여행, 눈물로 지새우던 며칠의 밤은 생각보다 나에게 너무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당연히 내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고, 서울로 이사하면 같이 행복하게 살 생각에 좋은 월세집도 알아봤었다. 갑작스럽게 많은 눈물과 배움을 주고 떠났다. 그 아이의 존재, 빈자리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었고 더불어 내 존재와 나와 함께하는 많은 이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기존과 다른 정의를 내렸다. 이때 제일 많이 든 생각은 '나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사는가'이다.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이렇게 살고 있으며, 올해의 상황은 노력에 대비해 형편이 없는데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도 큰 문제였다. 


내가 고작 이 명품 몇 개 걸쳐보겠다고 매일을 채찍질하며 살았던가.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이유가 어느 순간부터 허영심에 변질되었다는 것을 생각보다 빨리 알아차렸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이 너무 알차지 못했었다. 그랬었기에 더 사치로 몸을 감으려 했었던 걸까?


스타벅스 갈 시간적 여유가 없는, 4년 차


무수한 변화를 겪고 딛고 일어선 23년, 바로 올해다. 

석사과정을 병행하는 법인사업자로 올해는 보다 학력의 스펙에 많은 투자를 감행하기로 했다. 사대보험을 포함해 이전과 다르게 책임져야 하는 많은 요소들이 생겨나면서 달 고정지출비가 300-400만 원선에 항상 머물러있었고 수입구조가 이 이하로 무너지면 그만큼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기에 작년보다 더 바쁘게 뛰어다녔다. 작년보다 더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올해 사업의 흐름이지만 작년에 비해 눈에 띄게 소비습관에 안정화가 이루어졌다. 작년과 다른 점이라면 찾아주는 클라이언트사의 순도가 높아져 요해지는 많은 것들이 생겼는데, 이 앞에 서서 비로소 알게 된 점은 이에 대응할 요소를 작년에 샀던 사치스러운 개체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천만 원을 투자해서 전시회라도 한번 제대로 진행했다면, 걸맞은 경험을 축적하여 언어데이터로 유용히 사용했었을 텐데 말이다. 


요즘은 시급으로 일하는 일이 잦아졌다. 단순 외주, 미팅 중점이었던 사업구조에 컨설팅이 더해지면서 잦게 심사역으로 제안받게 되었는데, 제안받는 시급이 20-30만 원이 평균이라는 메리트와 더불어 스펙에 너무 큰 도움이 되기에, 또 성격과도 잘 맞아서 이 업무에 조금 칼날을 갈아 넣고 싶어서 여러 학문적 교육, 논문에 도움 될 내용들과 더불어 vc스프린트 같은 심사역교육과정도 알아보고 있는 찰나이다. 단순한 기회가 스치는 것일 수 있지만 최대한 살려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기에 하반기에 이와 관련된 스펙업 투자를 과감하게 강행하고자 한다.


내 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봤었다. 나는 대학교수도, 디자이너로, 컨설팅사업도 셋다 모두 이루어내고 싶은 욕망하나로 몇 년을 살아오고 있다. 세 마리 토끼를 다잡으려면 그만큼 총을 쏠일이 많기에 헛되게 총알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을 작년에 많이 배웠고, 안이 텅텅 비어 겉을 명품으로 치장하는 방어적인 습관이 얼마나 허탈했는지 알게 되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자 시장조사할 때 빼곤 백화점을 가지 않는다. 


소비습관이라는 단어가 금전적 요소에 한정적으로 활용되지만 필자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되돌아봐도 명품 사러 다니던 시간들, 카페, 비싼 음식점에서 허투루 보내던 무의미한 시간들은 무슨 말로도 나 스스로에게 해명이 어렵다. 시간소비는 금전적 소비보다 우리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작년이 후회되는 것은 사치스럽게 쓴 내 소비지표보다도 그 시간에 더 노력했으면 이루어냈을 하나의 알 수 없는 결과물에 대한 한탄이 더 크다. 이 결과물은 지금의 몇천만 원으로도 살 수 없는 무언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물질적, 시간적 소비습관 모두 컨트롤을 잘 해내어야 한다고 스스로 많이 다짐했다.




돈으로 밖에 살 수 없는 게 있다면, 시간으로 밖에 살 수 없는 게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위의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요소는 전부 시간으로 밖에 살 수 없다. 더하여 이 시간들은 전부 유동적인 노력이 따르지 않으면 진가를 발휘하기도 어렵다. 20대 끝자락에선 지금이 아니라면 하지 못할 일 들이다. 그래서인가 요즘 더 분주해진 것 같다. 다가오는 하반기 그리고 많은 투자가 이루어질 내년에는 내면이 꽉 찬 나를 필요로 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길 바라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일주일은 8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