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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영작가 Aug 25. 2023

꿈꾸었던 도시 서울,  벗어나고 싶은 도시 서울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창업한 청년의 이야기


지방에 산다면 누구나 서울을 한 번은 꿈꾼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가는 강남행 버스 창가에 비추어지는 서울의 한강과 모든 모습은 늘 가슴 설레었고 언제나 꿈의 도시라고 생각했었다.

19살 처음 강남이라는 곳을 가봤었고, 대학생 때 서울 시내버스에서 본 한남대교, 강변북로는 졸업 후 지방에 머무르겠다는 하찮은 생각들을 모두 지워내게 만들었다. 24살 경기도 회사를 다니면서 차차 서울가 가까워졌고, 퇴사 후 창업의 첫 시작은 고향인 세종이었지만 늘 핸드폰 부동산앱은 서울 근처의 사무실을 찾는 흔적이 가득했을 정도로 서울로 올라가겠다는 의욕은 넘쳐났다.


첫 사무실, 삼송역의 지식산업센터

내 첫 사무실은 서울과 근접해 있던 고양 삼송지구의 여느 한 지식산업센터였다. 차 타고 마포구까지 20분, 강남은 1시간 거리. 삼송지구는 3기 신도시 창릉의 호재로 막 개발에 들어가는 신축 동네로 깨끗한 거리, 깔끔한 분위기와 아직 지워내지 못한 시골의 모습이 함께 보이는, 너무 나에겐 만족스러운 동네였다. 하지만 서울은 아니었기에 서울 접근성은 생각보다 좋지 못했고 그렇게 일 년이 지나 다시 자리를 옮기는 선택중 결국 서울 강서구의 사람 바글바글해 보이는 어느 동네를 선택하게 되었다.


수원, 화성, 고양 그렇게 경기도만 떠돌던 충북청년은 그렇게 서울에 처음 입성했다.


서울 강서구의 집

월세 90만 원, 관리비 30만 원. 집 앞에 역이 있고 투룸이라는 조건에 걸린 댓가다. 월세 28만 원, 관리비 8만 원에 신축건물과 도심 속에 살던 충청도와 비교했을 때 누가 보면 호화스러운 아파트에 사는 줄 알 것 같은 금액이다. 밤이면 조용한 분위기에서 들려오던 자연의 소리와 한산하던 동네의 분위기는 꿈꿀 수 없는 이곳. 오래된 구옥들과 플라타너스 사이로 잦게 느껴지는 하수구냄새들과 사람냄새. 늘 씨끄러운 오토바이, 자동차소리. 이사 온 지 며칠 만에 어머니와 걷던 세종의 호숫가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20살의 내가 생각했던 서울을 매일 만날 수 있지만 20살 이전의 내가 늘 누려왔던 한적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담아내지 못하는 이곳의 시작을 느끼기도 전에 작년과 다르게 상반기부터 너무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들이 쏟아졌고 그렇게 한 달 두 달.. 흘러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서울살이 9개월 차, 사람도 거리도 신기했던 강남은 이제 시간당 4000원 주차료가 걷히는 주차하기도, 밀려서 운전하기도 힘든 피하고 싶은 동네로 남았고 어딜 가나 북적이는 사람 때문에 집밖으로 안 나가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고 집이 고요하고 아늑하진 않다. 서울 번화가 불빛에 속아 밤과 낮을 구분하지 못하는 눈먼 매미들의 어리석은 울음소리가 채우고 있을 뿐. 지독하게 씨끄럽던 매미소리에 서울의 여름은 유난히 달갑지 않은 것 같다.


서울에 남아야 하는 이유.

서울 당산에서의 밤

서울이 아니면 내가 하고 있는 디자인업은 사업적으로 영업이 거의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시장의 돈이 대부분 이곳에서 흐르고 매일같이 미팅과 협업이 이루어지는, 열정들이 모여있는 이곳을 사업지로 두지 않는 것만큼 어리석은 판단은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서울의 밤과 북적이는 사람들의 냄새를 느끼고 살기엔 여유가 너무 없다.


상승과 추락 롤러코스터를 매달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는 나에겐 잠깐의 여유는 휴식이 너무나 달콤했고, 로망으로 물들어있던 서울의 모습은 이제 극복해 나가야 하는 어두운 그림자들만 가득해져 있었다. 아등바등 살아가는 구슬픈 청년의 사업도전기가 펼쳐지는 조그만 강서구 사무실의 젊은 창업자는 어떻게 하면 성공해서 서울을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서울에 와서 성장의 발판으로 얻어내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고, 이제는 모든 게 일상이 되어버려 당장에는 벗어날 수없다는 것을 안다. 한산한 자유를 누리고 싶지만 시기가 옳지 못하다. 상승곡선을 꽃피워야 하는 내 나이 28살, 나는 적어도 5년 이상은 이곳에서 버티고 자리도 잡고 내 소유의 부동산도 여럿 가져낼 것이다. 그렇게 탈출욕구를 식혀갔다.


23살 전역하고 용돈벌이하겠다고 포토샵으로 로고디자인하던 작은 일이 어느새 수백 개 브랜드 프로젝트를 이행한 에이전시로 성장해가고 있다. 이 성장의 배경에 지방에 남지 않고 서울근접거리에서 일을 접했다는 것만큼 옳은 판단은 없었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하겠지만 꾸준함과 지속력만큼은 놓지 않고 언젠가 어엿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해 있을 회사와 내 모습을 꿈꾸며 서울에 대한 현실적인 모든 불만을 수그러트렸다.


언젠가 떠나야 하는 서울.

본가에서 바라본 세종시 풍경

나에게 서울은 이제 꿈꾸는 목표가 아닌, 20대 젊은 피땀 노력들이 가득 묻어나 지나쳐지는 과정이 되었다. 살아가다 보면 미리 예상하고 꿈꾸고, 멀리 바라보는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현실에 부딪히면 대부분 꺾여나간다는 것을 배우고 알게 된다. 서울은 나에게 그러한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제는 서울을 벗어나는 것이 내 목표가 되었다. 단, 서울에서 성공하여 자리를 잡은 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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