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저분했던 상반기를 마감하면서
살아가면서 가장 반기가 빠르게 느껴졌던 한 해였다.
많은 일들과 함께 분주하게 살았던 지난날들의 일부를 글로 끄적이면서 정리해 본다.
작년은 정말인지 너무 힘든 시기였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사람에 대한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던 수많은 일들을 겪고 맞이한 올해는 작년보다는 달가울 줄 알았으나, 살아가는데 쉬운 것 하나 없다 하듯 매 순간 삶의 그래프는 수직하락이었다. 체념하고 싶었던 수많은 시간들, 예전 같았으면 분노에 가득 찼을 것 같은 수많은 일들이 올해도 반복되다 못해 무뎌지고 이젠 아무렇지 않다 느껴진다.
올해도 나에겐 성장이 간절한 시기이고 대수롭지 않은 감정에 무너지는 시행착오는 더 이상 반복되면 안 되기에 무덤덤하게 매일을 맞이하고 자기 전엔 항상 딱 몇 년만 힘들어도 기운내고 고생하자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하루에 3,4시간 자는 건 일상이 되고 매일 9시면 쏟아지는 메일, 카톡들과 식곤증 때문에 거르던 끼니, 이동시간단축을 위해 차에서 식사하던 순간들. 퇴근하고도 이어지던 줌미팅들. 앞으로 이보다 더한 지치고 힘든 일들이 반복되겠지만 남들 다 하는 똑같은 생각, 똑같은 노력으로는 내가 원하는 가치를 갖추기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멈추기란 쉽지 않다.
고생 속엔 많은 성장이 있었다. 대기업 거래처, 대형 클라이언트들이 여럿 생겨나면서 미팅 자리의 품격도 달라졌고 불러주는 업체들의 대우, 프로세스 간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도 작년과는 눈에 비교될 정도의 성과들이 기록되고, 그 과정에서 가능성이 이젠 간절하게 느껴진다.
생각보다 괜찮았던 반년이었던 만큼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다고 생각되기에, 마음을 보다 단단히 먹어야 할 시기이다. 나에게 바람이 하나 있다면 배움의 영역 확장이다. 브랜다임 앤 파트너즈 황부영대표님의 인터뷰 중 자신이 있더라도 관련분야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며, 정체된 본인의 프로세스를 남에게 고집하지 말라던 이야기는 늘 머릿속에서 맴도는 장면으로 각인되었다.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와도 프로세스에 대한 강화에 대해선 늘 심도 깊게 대화하는 중이며 과정에 학습은 확장될 사업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
마라토너들이 장거리를 뛸 수 있는 이유는 목표를 두고 뛰는 다른 경쟁자들이 있어서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에겐 경쟁자라기보다는 매 순간 동기부여와 존경의 대상이 되는 분들이 주변에 여럿 있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매년 엄청난 성장력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리오랩 허재혁대표님과 충분한 결과물을 갖추었음에도 새로운 도전을 지속하는 클라이언트사의 많은 대표님들, 또 친분은 없지만 동종업계 리서치과정에서 매번 성장과 변화를 보여주시는 ynl에이전시 대표님, 그리고 그 작업물들. 간혹 드는 생각으로는 나에게 주어진 환경은 굳이 내가 뛰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레 뛰게끔 갖추어져 있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이다. 올해도 열심히 살았다 안도할 때쯤 어마어마한 성과로 압도하시는 많은 대표님들의 시간운용력을 보며 또 한 번 감탄과 함께 동기부여를 받아간다.
가끔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알아서 내가 성장하길 바랐다. 일에 치이고 대학원 학업에 치여서 원래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하고 지내다 보니 문뜩 머릿속에는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자리 잡혔었다. 원어민처럼 영어회화능력을 길러서 가끔 들어오는 외국업체의 컨텍에 활용도 하고 싶었고, 존경하는 대표님의 이력처럼 화려한 수상스펙을 위한 도전을 꿈꾸기도 했었는데 정말 반년을 생각만 하다 끝이 났다. 일이 물론 정신없이 바빴던 것은 사실이나 정말 그 와중에 간절했다면 적어도 시도는 하지 않았을까. 일이라는 핑곗거리가 없었다면 사체가 되어 강물에 떠밀려 다니는 물고기였지 않았을까 싶다. 헤엄쳐야 한다. 뻔하디 뻔한 인생의 흐름에 엮여가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노력이 때로는 불공평하게 결과물에 반영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러한 억울한 상황과 더불어 타인의 터무니없는 변명을 억지로 눈감아야 할 때, 불편한 순간을 무방비상태로 맞이할 때 등 불공평하고 억울한 많은 시간들이 두려웠지만 익숙해지면 금방 적응되고 무뎌지기 마련이다. 더하여 어느 순간부터인가 일상처럼 친근해지기도 한다. 모든 상황은 돌파구를 찾는 과정에서 늘 배움이라는 긍정적 요소를 맞이하게 되고 이를 통해 한 단계 성장해 나가는 모습들이 눈에 보인다. 맞으면서 커야 강해진다 하지 않았던가, 매도 맞다 보면 타격감의 강도에 익숙해져 단단해지기도 하고, 융통성 있게 피하거나 예방을 할 수 있듯이 말이다. 경쟁자들에 비해 나이도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 불공평하다 판단되는 무대가 잦게 눈앞에 펼쳐지고, 미리 매 맞는다 생각으로 하지만 최선으로 순간을 맞이하며, 언젠가는 이 불공평한 무대가 내 독주회를 위한 공간이 되기를 바라며 딛고 버틴다.
많은 소중한 추억들을 뒤로하고, 무수한 경쟁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나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 뒤돌아 머물고 싶었던 순간들이 많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상상으로 가득 찼던 22살의 어린 시절, 매일이 낭만과 행복으로 가득했던 24,25살과 정신없이 도전적으로 덤벼들었던 26살 겨울. 늘 느끼지만 이 모든 행복에는 영원이란 없더라. 우연으로 얻어진 소중한 순간은 생각보다 지속시간이 짧고, 어쩌면 맛보기처럼 느껴질 정도니까.
힘들다고 생각되는 지금 이 순간이 어쩌면 먼 훗날 영원히 머물고 싶었던 순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는 앞으로의 노력 끝에 그런 행복한 순간이 오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한다. 세상을 떠나 한 줌의 재로 남겨지기 전 돌이켜볼 과거의 좋은 회상에 선택지가 많다면 그보다도 아름다웠던 삶이 있을까.
오래 간직하고 기억될 그런 먼 훗날의 기억 조각들이 언제 일진 모르지만, 순간에 머무르지 않고 오래 지속되어 현실로 자리 잡힐 수 있도록, 광활한 바다를 꿈꾸는 어린 거북이처럼 우리는 무거운 짐은 잠시 내려놓고 마음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