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입주를 앞두고 끄적이는 경험담
2021년 나의 26살 겨울, 사업자를 낸 지 2년 차를 넘어가던 시기. 한적한 지방에서 서울근교로 사무실을 구하고자 정신없었던 때가 있었다. 살게 될 오피스텔과 사무실을 따로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충청도에서 고양시까지 장거리 이사를 준비해야 했기에 철저히 비용계산을 하면서 이사준비를 했었다. 그리고 이사하게 될 사무실은 통창으로 구성된 아름다운 도시뷰의 지식산업센터였다.
기다리던 시간들이 지나고 그렇게 마주한 12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꽁꽁 짐을 싸서 고양시로 향했다. 이쁜 도시뷰를 품은 사무실에 반해 세상물정 모르던 몇 년 전의 나는 보증금과 이사비용, 몇 달 유지비용을 빼고 남은 천만 원을 아무 생각 없이 여비용으로 사무실 인테리어와 집기류에 전부 탕진했었다. 참으로 부질없던 가구, 커튼, 커피머신, 기계, 인테리어소품, 티비등에 정말 원 없이 긁었었다. 누구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이기도, 정말 열심히 매일같이 일하는데 번돈으로 이 정도는 써도 되지 않을까라는 자기 합리화가 어느 정도 깔린 판단이었다.
일시불로 긁어낸 자신감은 다음 달 1250만 원이라는 카드값으로 돌아왔고 그와 함께 누구나 혹할 인테리어의 사무실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해 여름 통창의 더위 앞에 이쁜 뷰의 사무실 현실을 마주했고, 더위와 추위가 극도로 말썽이었던 사무실에선 어떤 인테리어도, 물건도 효율성이 없었다. 그렇게 멋으로 사는 세상에 온갖 허물들은 사무실 계약이 끝날 때 즈음 고물들이 되어 가격의 10분에 1도 회수되지 않은 채 공허함만 안겨다 주었다. 천만 원이 백만 원이 된 순간이다.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전 다루었듯이 명품소비도 심했고 온갖 사치로 얼룩져있던 26살이었음을 인정한다. 잘 살아 보이는 흉내를 내보고 싶었었다. 그리고 돌아보니 그만큼 부질없는 게 없었다. 사람은 정말 단순하게도 배울 점이 많거나 내면이 꽉 찬 사람, 또는 나와 잘 맞는 사람을 곁에 두려 하지 겉만 번지르르하게 치장하는 사람에 대한 니즈는 못 느낀다. 이 단순한 이치를 몰랐었다. 내가 번지르르해 보이면 남들이 좋아해 줄거라 생각했었고 그 기간 동안 내면을 채우지 못했던 사실은 일상의 정보력에서 허점으로 잦게 나타났었다.
목표가 없었다. 그러니 과정도 없었고 결과는 엉망이었다. 겉만 번지르르했던 내 22년은 그랬었다.
그로부터 일 년 사치소비를 줄이고 일과 학업에만 집중하며 일상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시간이 되어 또 한 번의 사무실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웃기게도 이번에도 여비용에 또 천만 원을 산정해 두었다. 물론 이전과 같은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목표와 쓰임새가 다른 천만 원이다.
26살이 아닌 만 26살이 된 지금, 서울권에서의 세 번째 이사,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어나가면서 맞이하는 이번 도전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이전엔 늘 노력에 비해 운이 따르길 바라고 세상이 위기를 해결해 줄 거라는 막연한 감정들이 있던 어린 생각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었다면, 이번 도전은 큰 성과가 없어도 괜찮다는 마음이다. 운이 없어도 좋고, 인복이 따르지 않아도 좋다. 그저 하는 만큼만 결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노력한 만큼 세상은 결과로 내비치어진다는 것을 잘 안다. 결과를 잘 만들어낼 자신은 충분하기에 그저 한만큼만 나와준다면 이전과 같이 늘 최선으로 살아갈 예정이다.
매년 노력한다고 매달을 주말 없이 일한다고 자신하는 나이지만 올해부터는 이를 장식하는 수식어구가 생겼기에 보다 더 자신이 붙는 것 같다. 바로 목표와 체계성이다.
지난 모든 도전은 목표도 없었고 체계적이지 못했으며, 관리를 해야 하는 컨트롤타워는 매주 무너져서 새로 짓기에 바빴었다. 물론 1인사업자였기에 혼자라는 핑계도 있지만 1부터 10까지 우연의 흐름에만 의존하는 악습은 매 순간 위기에 봉착하게 한 것은 사실이었다. 시간이 지나 회사 팀원들이 생겨나 안정적인 지금, 나는 모든 포커스를 주도면밀한 준비성과 프로세스의 체계적인 장점에 두고 일상과 업무에 임하고 있다.
이전에 발목을 잡던 자기 합리화의 약한 모습과 체계적이지 못한 운영방식은 모두 떠나가는 이 자리에 남겨두고자 한다. 깔끔하게 일하고 완벽을 추구하고 싶다.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시간적 여유는 모두 이것에 투자할 예정이다.
회사를 더욱 완벽하게 갖추어나가고 싶다. 고객사들도 안정적으로 느낄 완벽한 프로세스와, 매 순간의 가설을 철저히 증빙하는 자료조사와 데이터들, 외부적으로 비추어지는 이미지적 요소들, 광고와 마케팅, 나아가서 다루어야 할 새로운 사업요소들 모두 말이다. 가슴 뛰는 일임이 분명하고 일을 열심히 하게 해 줄 원동력이기에 존재에 무척 감사할 뿐이다.
천만 원이 이전처럼 몽땅 날아가도 상관없다. 다만 지난번엔 공허함만 남았다면, 이번에는 사지는 모든 경험이 강화된 회사 프로세스에 장작처럼 태워지길 바란다. 그 경험의 값어치는 고작 천만원정도로 매길 수 없기에 활활 타올라서 모두 능력으로 갖추어졌으면 좋겠다.
갖춰야 할 능력에 경험적 도움이 되는 많은 일들에 투자하는 것이 겉모습 치장에 있어 보이게 쓰는 것보다 바람직하다는 걸 뼈저리게 배웠다는 사실을 길게 글로 남기고 싶었다. 나와 같은 물질적 소비에 지친 경험이 있었던 분이 있었더라면 이번에는 생산성 있고 가치를 높여나갈 수 있는 많은 일들에 투자해 보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처음 살아보고 마주하며 떠나야 할 인생이기에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아낌없이 그 열정에 투자하고 미쳐도 보고, 그 가치를 밝게 비추어 나가는 게 가장 뜻깊은 일이라 생각된다. 아직 그런 가슴 설레는 일을 찾지 못했다면 많이 부딪혀 늦게라도 꽃 피워내 가치 있는 내음을 풍겼으면 좋겠고, 가슴 설레는 일을 매일 마주한다면 무기로 삼아 매일같이 강해져 빛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