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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영작가 Mar 09. 2024

가까웠지만 멀어진 유럽,
블라디보스토크의 1월 1일

그때는 지금처럼 여행이 어려워진 도시가 될 줄 몰랐었지

얼마 전 홍콩 가족여행 겸 출국을 앞두고 장난 삼아 부모님께 홍콩은 과거와 달리 많이 홍콩다움을 잃고 있기에 지금의 여행이 어쩌면 진짜 홍콩의 마지막 모습일지 모른다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에겐 정말 유사한 흐름으로 기억에 남아있는 여행지가 있는데, 바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다. 한때는 한국에서 제일 가까운 유럽이라 칭해지며 좋은 여행지로 손꼽혔던 블라디보스토크의 기억을 글로 담았다. 


2022년 2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전쟁이 발발했다. 금방이면 끝날 것 같았던 전쟁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고 이와 동시에 한국-러시아 간의 하늘길은 비어져있다고 한다. 운항은 가능하지만 항공사 측에서 감당해야 할 수많은 리스크를 안고 운항하기에는 명확지 않은 수요와 더불어 보험가입의 문제등으로 서서히 노선을 지워내기 시작하였다 한다. 하기에 국내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갈 수 있는 방법은 동해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이용하거나 울란바토르, 우즈베키스탄, 몽골등을 우회해서 들어오는 방법이 있다. 우회하여 들어가는 방법은 항공권이 무척 비싼 편이며, 배로 가는 방법 또한 승선권이 1-200만 원대에 잡혀있는데 더불어 편도로만 24시간이 소요되기에 가는 길부터 꺼려지기 시작하는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더하여 러시아 루블화를 구하기도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렇게 블라디보스토크는 가까웠지만 여느 유럽의 나라처럼 멀어져버린 현실이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12월 31일 밤

러시아는 정말 추운 나라라고 어려서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22살 전역과 동시에 여행경비를 모았고 그해 12월 나의 생일과 1월 1일 새해를 러시아에서 보내겠다 마음을 먹고 자유로이 여행을 준비하였다. 별도로 여행의 세부적인 계획은 없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여행지 방문에 상세한 플랜을 짜는 성격이 아니었다. 무턱대고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겠다는 생각과 러시아의 얼음이 펼쳐진 바다를 보고 오겠다는 생각, 더불어 가까이 있는 북한접경지역에 북한사람을 직접 보고 오겠다는 생각만 배낭에 짐과 함께 담고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 블라디보스토크는 지금과 같이 비싼 항공권료는 아니었다. 일주일 여행경비로 항공권을 포함해 당시 물가 100만 원에서 150만 원 사이의 금액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러시아에서 1월 1일을 보냈다. 사실 문화적인 경험을 즐겨보고 싶어서 밖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는데, 입국부터 총기류 검사를 하는 것을 보고 심히 걱정되어 창밖에서 도시를 내다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아침이 휑한 블라디보스토크 백화점 앞 광장


블라디보스토크는 생각보다 가난한 나라였다. 모스크바와 거리가 멀어서일까 소련의 해체 이후 별도로 나라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독립형 성장을 도전하는 모습이랄까. 세계사를 들여다보더라도 러시아의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같이 전쟁과 변화의 중점에 위치한 도시는 아니었기에, 역사적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으면서도 많이 생소한 편이었다. 가장눈에 띄는 것은 처음 보는 큰 규모의 밤이면 더욱 빛나는 항구, 그와 함께 겨울이 참 잘 어울리는 도시이지만, 폐차직전의 한국산 버스들과 도시의 인프라등을 보니 되려 한국이 얼마나 도시적 측면의 발전을 잘 구성하려 노력하는지 알 수 있었다. 


메모리카드에 남아있는 러시아 광장의 사진, 니콘 d5300

새해 첫날의 블라디보스토크는 여느 일상과 다름없었다. 분주하기보다는 나른한 오전의 모습으로 광장에는 가족단위의 행사가 열렸고, 오후에는 장 보러 가는 인파들이 많이 보이는, 여느 사람 냄새나는 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여행을 와서 설레는 기분보다는 1월 1일을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보내봤다는 기억이 아직도 좋게 남아있다. 신년을 맞이하는 다른 나라의 모습이 궁금하였고, 늘 매년 첫날은 마음정리가 필요한 시기이기에 얼어붙어 하얗게 뒤덮인 러시아의 바다는 마음을 비워내기에 너무나 완벽한 공간이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역이자 종착역으로도 유명한 이곳, 블라디보스토크는 둘러보기에 좋은 장소로는 중앙 혁명광장과 근처 아르바트거리가 볼만하다. 사람구경을 원한다면 혁명광장으로, 유럽의 분위기 도시를 구경하고 싶다면 아르바트거리로 가면 된다. 몇 년 전이긴 하지만 당시에는 곰새우와 랍스터가 제일 인기가 많았으며, 도시의 위치가 북한, 러시아, 중국을 모두 접경지역으로 두고 있기에 세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시장과 같은 지역에 가면 서로 얽혀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더욱이 북한식당이 도시에 있을 정도기에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한다면 자연스레 북한인으로 의심하곤 하였다. 


겨울의 러시아는 무척이나 추웠다. 패딩만으로 활동이 어려운 날씨였기에 밤에 돌아다니는 것은 거의 힘들었으며 장갑 없이는 손을 내밀고 다니기도 어려웠다. 그렇지만 근래 한국의 겨울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킹크랩과 곰새우가 맛있었다.

일주일정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머물며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여행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이야기거리가 많기에 향후에 한번더 브런치에 담아보고자한다. 


역사는 생각보다 가까우면서도 멀다. 우리가 멀다고 느끼고 있는 많은 역사들도 알고 보면 가까웠던 하나의 장면이었을 것이고, 더하여 지금의 많은 변화들도 먼 훗날 돌아보았을 때의 큰 이벤트로 기록될 확률도 높다. 과정에 사라져 가는 기회가 담긴 많은 것들을 직접 마주할 수 있다면 생은 한 번뿐이기에 눈에 담아보는 것도 뜻깊지 않을까. 여행 또는 경험등의 시도를 미루다가 기대했던 모습을 마주하지 못하는 것만큼 가슴 아픈 일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영국, 스위스, 이탈리아, 중국, 일본등 다양한 나라들을 틈틈이 더 다녀볼 계획이다. 여행의 본질적인 내용을 내포하여 계획하기보다는 눈에 담아두는 단순한 기록의 목표가 클 것이라고 생각된다. 전쟁이 끝나고 하늘길이 자유로이 열려 우연의 기회로 다시 방문한다면, 23살의 내가 담았던 블라디보스토크의 기억보다 더욱 성장한 도시로 변모해 있길 기대해 본다. 


눈 덮인 블라디보스토크의 바다



201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7박 8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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