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과업수행을 위해 어디까지 노력해 보셨나요?
오랜만의 주말 약속이었다. 선배와 동종업계에 계신 선배 여자친구분을 사무실로 초대하여 담소를 나누는 의미 있는 일요일이었다.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직장에서 리더급 위치해 있는 선배의 여자친구분이다 보니 일을 잘하는 직원에 대한 이야기들이 중점으로 오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통해서 나뿐만이 아니라 대표님들도, 더하여 직장에서 팀장이상급의 담당자들도 일잘러들을 보는 관점이 거의 비슷함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일잘러들이랑 일하고 싶어 하지만 현재의 세대가 일을 극도록 하기 싫어하는 범주의 사람들이 워낙 많음을 다들 느끼고 있었다.
"일이란 상대방에게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상대의 니즈를 해결해 주는 활동이며, 그저 열심히 노력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과업을 상대방이 만족하게끔 성공시켜 내는 것을 말한다."
박소연강사님의 멘트를 인용하였다. 극히 공감되어 더는 부가적 설명이 필요 없어지게 하는 문장, 일을 하면서 느끼지만 수많은 신입사원들이 일을 단순히 노동적 행위로만 파악하여 스스로에게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들과 그간 봐왔던 일잘러분들의 특성들을 조밀하게 분석함과 동시에 키워드들을 문장화하여 글에 나열해 보고자 했다. 이러한 글을 작성할 때 보통 주변의 전문가분들의 견해와 다소 주관적인 이야기들이 섞여있음을 사전에 말씀드리는 편이다. 본글도 마찬가지이다.
일잘러들은 단순하고 겸손하다. 그리고 늘 책임감을 갖고 살아간다.
일잘러들은 단순하다. 단순하지만 쉽게 책임감을 가지고 해결해 나간다. 가끔은 과업의 난이도가 난처하고 어려운 일인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욱 빛나는 편이다. 대부분 하기 싫어하고 어렵다고 핑계를 놓을 때 일잘러들은 자신이 가능한 선까지 우선 진행을 하면서 빠르게 과업내역의 OX를 판단해 나간다. 그렇게 일의 본질을 파악하고 자신의 범주가 아닐 때도 완벽하게 성공근삿치로 구현해 내기도 한다. 일잘러들은 단순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하게끔 만드는 것을 잘하는 것일지 모른다. 더하여 거듭되는 성장에도 자화자찬 없이 겸손함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태도의 비결이 아닐까 싶다.
일 외적으로 기복을 가져올 리스크를 쉽게 두지 않는다.
축구선수도 기복이 심하면 필드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자기 관리가 무척 중요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본인이 어떠할 때 약하고 어떨 때 강한지 판단하여 평균치를 스스로가 잘 안다. 이 내용은 필자도 무척이나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 번아웃은 아니지만 가끔 일적으로 무너지는 순간이 꼭 찾아온다. 나의 경우 금전적 문제와 대인관계에서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더욱이 그러하다. 많은 사람들을 고객으로 만나다 보니 하루에도 수십 통 전화와 연락이 오가고, 그런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나에겐 어렵고 힘든 일이기에 이 외에 다른 대인관계에서는 최대한이면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더하여 금전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리스크는 스스로가 예방할 수 있기에, 겪을수록 한층 한층 성장해나가야 한다. 심적으로 무너지는 것만큼 무서운 일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럴 요소들을 미리 곁에 두지 않는 것. 그렇기에 일잘러들은 평균치에 비해 무척이나 안정적인 편이다.
불안정한 사람이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것은 극히 드무니 말이다.
체계성과 그 속에 디테일함과 세심함이 돋보인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일을 왜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일을 빨리하고 그럴싸한 성과지표를 만드는 것도 무척 중요하지만 왜 이 일을 내가 하고 있는지를 무엇보다 빠르게 스캐닝해 간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일을 처리하기 바쁜 사람과 달리 일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는데 필요요소들을 파악하고 제안하기까지 한다. 제안사항에는 빈틈이 없어야 하기에 보다 디테일함이 묻어나고, 세심하게 과업을 스캐닝했다는 노력의 증표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상대방의 제안서, 과업보고서에 노력의 땀방울이 묻어남이 느껴질 때, 비로소 보는 사람도 기운을 얻는다. 디테일은 한 끗 차이라고 한다. 그 한 끗의 차이는 스스로가 얻어내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절대 얻어지지 않는다.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쓴다.
AI시대가 다가올수록 본인의 생각과 표현하고자 하는 방법이 더욱 구체화되어야 함이 사실이다. 모든 명령어는 프롬프트 표현으로 이루어짐과 동시에, ai는 인간의 행동분석을 통해 이루어지기에 이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표현해 낼 줄 아는 전문가만이 살아남을 것이라 이야기들 한다. CHAT GPT라는 하나의 툴이 생겨나면서 가뜩이나 문해력 저하가 심하다 평가받는 지금의 mz세대는 더욱이 하강곡선을 내리꽂게 생겼다. 키워드만 입력하면 그럴싸한 문장이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시대가 눈앞에 펼쳐졌고 긴 글은 기피하고 보이는 키워드만으로 제멋대로 해석하기 바쁜 세대가 머지않음을 매번 느낀다. 이럴 때일수록 피칭과 라이팅의 모든 분야를 튼튼히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말은 다수 앞에서 의견을 표현할 줄 아는 정도, 글은 gpt 없이도 한 페이지 이상은 거뜬히 써낼정도의 능력만으로도 고평가를 받는 것이 지금의 시대이다.
누구나 피곤하게 살지만 나만큼은 타인에게 피곤함을 내비치지 않는다.
만나는 많은 대표님들이 지목하는 직원 채용 시 필히 걸러내는 유형의 타입 중 하나가 흐리멍텅하고 다크서클이 심한, 얼굴에서 피로감이 묻어나는 지원자다. 바쁜 사회 속 누구나 피로를 안고 살기에, 같이 일하는 사람마저 피곤함을 내비치고 있다면 그만큼 힘 빠지는 일이 없다. 필자 또한 매일이 피곤하지만 일과시간에는 타인에게 그러한 모습이 비추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고있다. 생각해보라, 전문가를 일시키려 불렀는데 피곤하답시고 하품이나 하고있으면 얼마나 신뢰가 안가겠는가. 클라이언트가 전문가를 볼때의 제일 최악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되기도하면서, 회사들도 싫어하는 유형의 타입임은 여러 매개체를 통해 알 수 있다.
스스로가 타인이 같이 일하게끔 만든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가치를 고평가 되게 만드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자발적이기도 하며, 본인의 욕심이 때로는 과업보다도 앞서기도 한다. 즐겨서 한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가끔 고객사로 만나는 클라이언트 담당자분들 중에 보이는 편인 이런 타입의 유형은, 상대방이 보기에도 회사가 사람을 정말 잘 만났구나 생각이 들게 뜸하다. 이는 채용 시 면접상의 서류스펙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사항이기도 하다. 좋은 학력을 바탕 삼아 입사한 사람들도 업무적 능력에는 상관관계가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을 수차례 업무상의 경험을 통해 느꼈기에, 일잘러들을 한 번에 알아챌 요소로 스펙을 보는 것만큼 옳지 않다. 다만, 일잘러의 경우 스스로의 PR을 위해 스펙관리를 늘 잘 갖추어두는 편이기에 추려낼 범주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회사는 자발적이고 스스로가 업무를 끌어가는 사람을 좋아한다. 일잘러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더욱 찾기 어렵다. 일잘러들은 남들이 자신을 탐낸다는 것을 스스로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일잘러들은 늘 바쁘다.
사람들은 알고 있다, 바쁜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한가한 사람에게 일 시키는 것보다 더 빠르고 높은 성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바쁜 사람들은 빠르고 정확하게 일처리를 해내는 노하우들이 몸에 배어있다. 그렇기에 보통은 타인이 먼저 알아보고 일을 제안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일까 일반적인 그룹이나 묶음단위의 네트워킹에는 인재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만났던 많은 일잘러분들이 제일 기피하는 것이 시간만 낭비하는 네트워킹이라 하였으니 말이다. 그들에게 시간은 돈이고 바쁜 만큼 자신이 얻는 게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때로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너무 바빠 당연한 걸 놓칠 때 다가오는 속상한 감정들이 시간을 거듭할수록 줄어들기를 바라고 있다. 단순한 태도로 일의 본질을 꿰뚫어내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천운이라 생각하기에, 그런 운을 기대하기보다는 매번 마주하는 일상의 모든 프레임에서 늘 최선으로 기록되어 있기를 기대하며 거듭되는 성장의 끈을 붙잡아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만나는 범주에서도 일에 진심이고 잘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일을 잘하는 전문가를 곁에 둔다는 것은 무척이나 축복받은 일이다. 그러한 축복이 오늘날의 많은 전문영역 종사자분들에게 내려지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