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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해영 Feb 07. 2021

07. AKMU-집에 돌아오는 길

나의 퇴근길에서 아버지의 퇴근길을 추억하다.

“가로등이 줄지어
굽이 진 벽돌담이
날 조이는 골목길을 지나
어둑어둑한 달 밤 하늘에
가족 얼굴 그려보다가
익숙한 냄새와 귀 익은 소리
덜 깬 잠으로 마주한
따뜻했던 오늘 아침밥처럼
눈앞에 뿌연 아지랑이 피곤해”
‘AKMU-집에 돌아오는 길’ 가사 중

어릴 적, 저녁 준비 시간이 다가올 때면 어머니는 내게 항상 미션을 주셨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께 전화드려서 언제 오시는지 확인하기’.
그럼 언제나처럼 유선 전화기 앞으로 가, 아버지 직장 번호를 누르고 능숙하게 미션을 수행하고는 했다.


약속하신 퇴근 시간이 다가올 즈음.
나는 주차장으로 나가 아버지의 퇴근을 기다렸다. 토끼풀이 자란 날에는 네잎 토끼풀을 찾으며, 낙엽이 떨어지는 날에는 책 사이에 끼워 둘 예쁜 낙엽을 고르며, 눈이 오는 날에는 눈사람을 만들며.
기다림의 시간에 푹 빠져 있다가도 주차장 입구에 빛이 들어오면 재빨리 일어나 확인했다. 그럴 때면 모르는 차가 부지기수였지만 그렇게 몇 번을 더 속고 나면 어김없이 아버지의 차가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으로 아버지께로 가 웃음소리를 선물했다.


아버지와 함께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도 하지만 종종 ‘산보’라는 명목으로 집 앞 가게에 갔다. 단골을 알아보는 듯한 주인아저씨의 반가운 인사로 가게에 들어서면, 아버지는 오늘 하루 수고한 당신을 위해 맥주와 안주를 고르고, 나는 나, 엄마, 오빠를 위한 과자를 골랐다.
집에 돌아오는 길, 아버지 손에는 어느새 큰 봉지와 작은 내 손이 들려 있었다. 아버지의 퇴근길은 막내의 조잘조잘한 하루 일과 이야기와 함께, 어둑어둑한 하늘을 뒤로하고 밝은 집으로 들어서면 비로소 끝이 났다.


AKMU는 정규 앨범, <사춘기 하 (思春記 下)> 중 일곱번 째 트랙 ‘집에 돌아오는 길’ 소개 글에

‘집은 우리에게 가장 따뜻하고 편안한 안식처. 하지만 집 밖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그것은 항상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인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하루를 살아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나는 종종 아버지의 퇴근길을 추억하곤 한다. 유난히 힘든 하루를 뒤로하고 불 꺼진 자취 집으로 향하는 길이면 그때의 장면은 더욱 짙어진다.

기억 속 아버지의 퇴근길에는 힘든 기색이 없었다. 이를 읽어내기엔 너무 어렸던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께서 티를 내지 않으셨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아버지께서 퇴근길에 유독 먹을 것을 많이 사 오시던 날이 있었는데, 그날이 가장 힘든 날이었음을 이제는 알겠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집 앞 가게에 들러 가족들이 좋아하는 것을 한가득 사신 날이 아마 아버지의 힘든 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지나, 아버지는 어느새 마지막 퇴근길을 앞두고 계신다.

그간의 시간 속, 얼마나 많은 힘든 하루들을 묵묵히 살아내셨을까. 그때의 퇴근길을 추억하며, 이 짧은 글을 빌려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고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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