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남는 장사 하겠습니다.

by 혜윰

매장을 오픈함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오시는 손님. 지난달에 사 가셨던 만 원짜리 바지가 몇 번 빨았더니 보풀이 생겼다며 새것으로 바꿔 달라신다. “손님, 사가신지 한 달이나 지난 옷을 어떻게 바꿔 드려요. 백화점 옷도 교환반품은 2주인데 동네에서 이러시면 안 되죠.” 라고 정색을 하며 쏘아붙이고 싶었으나, 숨 한번 크게 내쉬고는 웃으며 그렇게 해드리겠다고 말씀 드렸다.


“아이구 보풀이 정말 심하게 일었네요. 저렴한 상품이긴 하지만 옷감이 이 정도로 나쁠 줄은 몰랐어요. 다음부터는 품질 체크 잘해서 가져올게요. 죄송합니다.” 그랬더니 손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홧김에 가져오기 했지만 쉽게 상해 줄거라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뭐 사장님이 죄송할 것 까지는 없고요, 제가 사실 이 바지를 아주 편하게 잘 입었는데 몇 번 세탁했더니 이렇게 돼 버려서 아쉽더라고요. 달리 입을 옷도 마땅찮고, 또 사러 가기도 귀찮고. 어떻게 옷을 한철도 못 입게 만들었나 싶으니까 화딱지가 나더라구요.”


“아 그러셨군요. 저도 예전에 좋아했던 티셔츠에 락스가 튀어서 못 입게 되니까 속상하더라고요. 다른 상품으로 교환해 드릴 테니까 기분 풀어주세요.”


“아 정말요? 그러면 저도 염치가 있는데, 그냥은 못 가져가고 조금만 깎아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요즘 옷들은 원단이 예민해서요. 특히 여름철 원단 특징이 가볍고 시원한 반면, 세탁이나 마찰력에 취약해요. 그러니까 가급적 손세탁을 하시는 게 좋고, 세탁기에 돌리시더라도 망에 넣어서 울 코스로 살살 돌려주시면 좋아요.”


손님은 차분히 내 얘기를 듣더니, 바로 마트에 들러 세탁망부터 사야겠다고 하셨다. 나가시면서 다음에 또 들르겠다고, 앞으로는 절대 진상 안 부리겠다는 기분 좋은 약속까지 해주시고 가셨다. 그렇게 첫 손님을 웃으면서 보내드린 덕분인지 나는 하루 종일 마음 편하게 장사 할 수 있었고 오시는 손님마다 밝고 친절하게 맞아드릴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첫 손님과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였더라면 싸움의 승패와 상관없이 하루 종일 짜증나고 불쾌했을 것이고, 그것은 다른 손님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심어주었을 것이다.


장사를 오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는 그 어떤 불미스러운 상황에서도 최대한 긍정적 마인드로 대처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좋더라는 점이다. 손님은 손님대로 불만이 해소되어 좋고, 나는 나대로 굳이 화내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마감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오전에 오셨던 그분이 다시 오셨다.


“아직 퇴근 안 하셨네요. 제가 오늘 카레라이스를 했는데 제법 맛있게 되어서 가져왔어요. 아침부터 진상 부린 게 종일 맘에 걸려서요.”


감동이었다. 생각해보면 대한민국 아줌마들은 다들 비슷하다. 손해 보는 걸 못 참고 싸워야 할 때는 악착 같지만, 막상 마음을 열면 한 업이 정을 주고 나눔을 베푼다. 이 분들의 마음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마음이다. 써도 써도 닳지 않고 얼룩지지 않는 마음. 일 년이 지나도 십년이 지나도 교환이나 반품이 필요 없는 마음.


그러니까 상품으로 따지자면 명품 중에 명품. 나는 비록 싸구려 상품을 팔지만, 귀하고 귀한 명품의 마음을 받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장사가 어디 있을까 싶다. 오늘도 남는 장사 잘했습니다. ^^


by 혜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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