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둥지

by 혜윰

어렸을 때 엄마에게 꾸중을 듣고나면 몰래 숨어 들어가던 곳이 있었는데 이불이 가득 쌓인 장농 안이었다. 그 곳에 들어가 혼자 실컷 울고 있노라면 장농 속 이불들은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고, 그 보드랍고 따스한 품이 너무 좋아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엄마는 대개 이삼십분 후면 나를 꺼내다가 기분 좋게 달래주셨지만, 어쩔땐 내가 정말로 미웠는지 저녁때가 다 되도록 모른척 냅둘 때도 있었다.


좀 더 자라 청소년이 된 후에도 나는 몇번을 더 장농속에 들어갔었다 친한 친구랑 다퉜을 때, 좋아하던 오빠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때 등등. 그때마다 장농 속 이불들은 다정하게 나를 맞아주며 따뜻한 위로를 아끼지 않았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러서 훌쩍 커버리다못해 반백년을 살고 있는 지금, 이제는 더이상 장농속에 들어갈 수도, 들어가서도 안되는 나이가 돼버렸지만. 어쩌다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 왔다거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괴로움에 빠졌을 때.


습관처럼, 장농문을 열고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


by 혜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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