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봄이 왔습니다.

by 혜윰

대출 상환일이 5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바빠서 관련 서류를 하나도 준비 못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연장 신청을 하려고 아침부터 분주히 외출 준비를 했다. 우선 동네 행정복지센터부터 들러서 세금완납증명서와 등기부등본을 떼고 세무서에 들러서 사업자증명원과 소득증명서를 뗀 다음 은행으로 갈 계획을 잡았다. 문제는 행정복지센터에 주차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거리가 좀 있지만 산책 삼아 운동 삼아 걸어가기로 했다. 십 분 여 정도 걷고 있었는데 산책중인 강아지를 만났다. 귀엽고 사랑스러워 눈길이 갔는데 강아지가 인도 한 편에 있던 화단 쪽으로 가더니 똥을 눈다. 그런데 주인이 그걸 치우지도 않고 휙 가버린다. 짜증이 났다. 자기 개는 안 문다는 것처럼, 자기 개가 싼 똥은 안 더럽다는 건가. 근데 그걸 본 사람은, 혹은 실수로 밟게 된 사람은 기분이 어떨지 생각 해봤나?괜히 강아지까지 미워 보였다. 에휴 지저분한 동물 같으니.


기분이 언짢아진 채로 복지센터에 들어가 서류 신청 하는데, 신분증을 놓고 온 걸 깨달았다. 너무 속상했지만 하는 수 없어 투덜투덜 다시 집으로 걸어갔고, 다시 또 씩씩 거리며 돌아와 겨우 서류를 챙길 수 있었다. 그 다음 세무서는 버스를 타서 가기로 했다. 승용차만 가지고 다니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니 왜 이렇게 귀찮고 시간이 아까운지. 버스는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것인지. 다들 이걸 어떻게 참고 기다리는 것인지.


십 분 정도 지나니 버스가 왔고, 차례를 지키며 버스에 오르려는데 한 아주머니가 후다닥 오시더니 내 앞으로 새치기를 하신다. 짜증이 났다. 누군 편하게 앉아가기 싫어서 줄을 서나. 아니나 다를까 차에 빈 좌석은 없었고 얌체 같은 새치기 아주머니는 용케도 한 자리 잘 꿰차고 있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버스를 타서 그런지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창 밖 풍경을 보는 것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그 때 내 앞에 앉아있던 분이 하차 벨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띵동. 나는 운이 좋았다고 느끼며 얼른 그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으니 갑자기 나른해졌다. 세무서까지 약 15분 걸리니까 잠시 눈을 붙여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살며시 눈을 감고 편안함을 만끽하려는 순간 삐이익 하는 마이크 에코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 승객 여러분, 바쁘시지요? 피곤하시지요? 하지만 잠시만 제 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이제 곧 신호가 바뀌어 버스가 출발을 하면 모두들 왼쪽 창밖을 바라봐주십시오. 지금 개나리꽃이 만발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이 꽃은 안타깝게도 볼 수 있는 날이 길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 졸고 계셨던 분들도, 업무에 집중하셨던 분들도 잠시만 짬을 내어 저 꽃을 바라봐주십시오. 차암 아름답습니다. 저는 하루에 몇 번씩 이곳을 지나며 보는데 볼 때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러자 마루인형처럼 멈춰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왼쪽 창문을 응시하며 감탄하기 시작했다. 우아~ 우아~ 몇 몇 사람들은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과연 노란 꽃동산이 장관이었다. 그 아름다운 풍경 아래로 지나는 어느 귀여운 강아지와 그 강아지의 주인은 한 폭의 그림처럼 평화로웠다.


봄이었다. 바야흐로 따사롭고 싱그러운 봄이었다. 나는 왜 이제야 그걸 알아챘을까? 봄이 이렇게도 아름다운 것을, 봄이 이렇게도 가까이 온 것을 방금 전까지 모르고 있었다. 내가 몰라주는 게 서운하다는 듯 봄은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스스로 알릴 방도가 없으니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의 입을 빌려 알려준다.


따뜻한 사람들은 모두가 봄의 전령사다.


by 혜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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