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없어도 되는 세상이 와도

내게 꿈은 습관이다.

by 최예지

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 없을 리가 있나 싶었다. 그런데 까마득하게 잊고 살다 보니 벌써 마감일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글을 썼고 글을 좋아했고 여전한 모습으로 글과 재밌게 놀고 있다. 글은 나를 절망에 빠트리기도 했지만 좋은 기회를 가져다주기도 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나는 코로나가 터지면서 불안장애를 진단받았다. 공황이 심했다. 내가 안전하다고 여기는 장소는, 오직 나의 방뿐이었다. 모든 것은 날아가버렸고 나에게 남은 것은 엄마와 강아지 두 마리 그리고 침대 하나였다. 나는 크게 좌절했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오직 엄마만을 찾는 것뿐이었다. 엄마가 없으면 극도의 불안에 시달려 나 자신을 몇 번이고 포기하곤 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글도 내 것이 아니었다. 연필은 낯설었고 지우개는 이상해 보였고 종이는 촉감이 소름 끼쳤다. 내가 글을 쓰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그 물건들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다. 나도 모르는 사이, 글 저항이 생겨버렸다. 슬펐다. 내가 유일하게 존재감을 인정받기 시작했던 건 '글을 쓰는 순간'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착한 아이로 통했다. 그게 참 싫었던 건, "걔 이름이 뭐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착한 아이야." 나는 버젓이 최예지라는 이름이 있는데도 내 이름보단 내 특성이 먼저 타인의 기억에 남는 게 싫었지만 착한 아이로 키워진 나는 나의 기질을 바꿀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기 숙제를 낼 때 일기 쓰기 귀찮아서 쓴 시가 선생님께 큰 칭찬을 받았고 그 이후로 나는 '글 잘 쓰는 착한 아이'가 되었다. 글 잘 쓴다는 얘기는, 이상하게도 최예지에 묻혀도 상관없었다. 이 줄거리상 나는 문예창작 쪽이나 국문학 쪽을 가고 당연히 문과를 가고 인문대생이 되어 작가지망생으로 흘러갈 것 같았지만, 인생엔 답이 없고 나는 유별났다. 나는 이과로 졸업해 공과대학을 나왔다. 그동안에도 공모전을 도전했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글'은 나에게 그런 것이었다. 좋아는 하는데, 나를 다 맡기진 못하겠어. 나도 모르게 선을 두고 있었다. 공황이 온 때로 다시 돌아가자면, 나는 얼만지도 모를 시간 동안 방에 있었고 자연스레 연필을 잡아 종이에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나 딴에는 일기라고 썼는데, 그저 생각나는 대로. 그냥 쓰고 싶을 때마다 썼다. 무슨 이야기든 썼고 무슨 그림이든 그렸다. 내게 있어 유일한 나의 것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당시 20대 후반이었고 경제 활동을 해야 했다. 한 플랫폼에서 맞춤형 시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다시 긴 시간 동안 글을 쓰게 되었다. 여기까지 흘러온 것은, 난 이제 30대 초반이고 불안장애 대신 우울증 재발 진단을 받아 보통의 경제 활동이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난 오히려 이런 예측 불가의 인생에 즐거움을 느꼈고 괴로워했으며 그만큼 또 짜릿했다. 내게 브런치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공황이 왔을 당시에 나를 갓난아기 다루듯이 옆에서 지켜준 그 사람의 연금 복권으로 살아가고 싶다,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요새는 꿈이 없는 사람이 많다. 세상은 말한다. "굳이 꿈이 있어야 해?" 한심한 모습이 되기 싫어 찾았던 꿈, 나의 존재감이 되어준 꿈, 그런 꿈이 이젠 필요 없다고들 한다. 그런데도 나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나를 향한 꿈을 꾼다. 내게 꿈은 습관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꿈을 만들어나가는 나는, 참 별종이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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