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하고 싶었던 말

by 최예지

송하는 점을 빼러 도시로 나갔다. 재미로 본 사주가 마음에 걸려서 송하는 주말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흉터가 남지 않게 점을 뺀다는 곳을 찾아서 병원 리뷰 수십 개를 읽었다. 병원으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받아서 작성한 것이라는 문구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런 문구가 없이 자신이 직접 돈 내고 갔다는 리뷰가 하나도 없었기에 송하는 차선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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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는 동녘의 제안으로 송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러 갔다. 연인으로 구속되기 싫어하지만 혼자 있긴 외로워하는 동녘과 함께 주말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코미디 로맨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어색하게 살짝 떨어져 걸어가고 있었다. 송하는 동녘이 추천한 코미디 로맨스 영화였기에 마냥 재밌을 줄 알았는데 친구인 남녀가 보기엔 어색해지는 진한 키스신 장면이 나와서 민망함을 감출 수 없었다. “자전거가 세워져 있네, 날씨 좋네, 나무 많네.” 하고 동녘은 끊임없이 말을 내뱉었다. 그때마다 송하는 “그렇네, 정말이네.” 하며 호응했지만, 실상은 목소리에 아무것도 실려 있지 않은, 내뱉자마자 산산이 흩어질 말뿐이었다. 동녘은 송하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이번 영화를 택했다. 평소 동녘이 하자는 대로 군말 없이 잘 따르는 송하는 역시나 따로 영화 정보를 찾아보지 않고 동녘이 보내준 예고편만 보고 “오케이.” 하고 대답했다. 동녘은 송하가 한 달 뒤면 인천시청으로 출근을 한다기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송하에게 연인으로 발전될 여지를 주고 싶었고 어떠한 답변 정도를 듣고 싶었다. 당장 고백하기엔 제주의 관공서에 일하느라 발 묶여 있는 자신이 취할 행동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동녘은 연인이 되면 연락 문제로 자주 싸우던 지난 연애처럼 될까, 걱정되어 겁에 질려있었다. 동녘은 직구로 말하기보다는 돌려 말하거나 간접적인 행동으로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송하는 돌려 말하는 동녘의 말투를 좋아했고 배려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은 아니었다. 송하는 이번에도 동녘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구나 추측할 수 있었지만, 동녘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것은 다 모호해도 괜찮았다.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으면 “아무거나.”라고 답하며 정말 아무거나 먹어도 상관없을 송하였다. 그러나 사랑에서만큼은 확실함을 추구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라고. 송하는 동녘의 마음이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동녘이 자꾸만 의식되었는데 동녘이 아직 둘의 관계를 변화시킬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자신은 모른 척하고 있어도 되기 때문이었다.

“사주 보러 갈래?” 동녘이 영화를 보고 난 뒤로 처음으로 말 같은 말을 꺼냈다. 사실 송하는 동녘이 지나가는 말처럼 계속 혼잣말을 하기에 의미 없이 받아주기만 하고 있었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동녘답지 않게 힘이 없고 축 처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녘은 의기소침해 있었다. 영화 얘기를 하며 송하가 친구에서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고 싶었는데 송하의 표정이 영화를 보고 난 뒤로 영 좋지 않은 모양새였다. 자신이 생각했던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다음 코스로 넘어가서 이번 판을 바꿔보겠다는 마음으로 송하에게 말을 건 동녘이었다. 송하는 하품을 하며 “그래.” 대답하다가 “사주?” 하고 물었다. 동녘은 송하의 눈썹이 꿈틀 하는 걸 보고 기뻐했다.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해 3일 만에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그곳이 어떤 사주를 보는 곳인지, 사주 보는 사람이 얼마나 용한 사람인지에 관해 떠들었다. 송하는 흥미 있는 것을 들을 때마다 눈썹을 꿈틀거리곤 했는데 동녘은 그러한 송하의 모습을 좋아했다. 마치 강아지 꼬리가 자신이 의식하지 않고 흔들리는 것처럼 마음이 투명하게 비추는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송하는 어느새 동녘 가까이에 서서 사주를 보러 가고 있었다. 줄을 서느라 사람들이 직접 번호표를 만들어서 나눠준다는 얘기와는 달리 사주 현수막 주변은 한산했다. 현수막 안으로 들어갔을 땐 아무도 없어서 당황했는데 지나오면서 봤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삼선 슬리퍼를 질질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위아래 빨간색 츄리닝에 분홍색 발가락 양말을 신고 있어서 그 사람의 정체에 대해 얘길 나누며 지나왔었다. 다짜고짜 현수막으로 들어오더니 송하를 보고 점을 빼라며 빽 소리쳤다. 송하는 올해 가을까지 제주 관공서에서 민원 상담업무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기에 여러 인간의 유형에 익숙해진 터여서 다짜고짜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는 상황에도 아무렇지 않아 했다. 오히려 습관적으로 튀어나온 높은 솔의 목소리로 “그럴까요.” 하며 웃으며 대답했다. 빨간 츄리닝의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 달 뒤야, 시간 있어. 그러다 훅 가. 점을 빼고 가야 잘 가.” 동녘은 깜짝 놀라 “얘 한 달 뒤에 취직해요, 육지로 출근해요.” 하며 주절주절 말을 시작했다. 빨간 츄리닝의 남자는 사주를 보다 말고 책상 아래 서랍을 뒤적거리며 명함을 찾고 있었다. 송하는 혼자 신나서 떠드는 동녘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가만 듣고 보니까 처음 말고는 맞추는 게 전혀 없었고 처음의 말도 곱씹어 생각하니 뭔가를 맞췄다기보단 우연히 맞았다는 것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녘은 연신 “맞아요, 제 친구가 걔랑 가까워지고는 싶은데 관계가 오히려 안 좋아지면 어쩌나, 겁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하며 상담받고 있었다. 송하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돌려 하품하고 있었다. 동녘은 평소에도 말이 많아서 송하는 자신의 체력을 아끼기 위해 동녘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자신에게 묻는 말 말고는 죄다 흘려들었기에 동녘이 무엇을 상담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간혹 귀에 꽂히는 단어는 “제 친구가.”였다. 그 말이 계속 반복되어서 네 얘기인 거 안다고 핀잔을 주고 싶었지만,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여 모른 척했다. 빨간 츄리닝의 남자는 의자에서 일어나 동녘과 송하의 손 위에 명함을 올려주고 말없이 웃었다. 동녘은 무엇을 느꼈다는 듯이 감탄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괜히 유명한 게 아니군요, 오늘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일 같습니다.” 하고 말했고 송하는 멍한 눈빛으로 빨간 츄리닝의 남자를 쳐다봤다. 빨간 츄리닝의 남자는 동녘의 말을 흐뭇하게 듣고 있었다. 시간이 다 되었다며 서랍의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챙기고 둘을 밀어내며 자신도 현수막 밖으로 나와 현수막을 잠그고 나왔다. 언제 얘길 나눴냐는 듯이 발가락 양말을 꼼지락거리며 동녘과 송하를 지나쳐 빠르게 사라졌다. “꿈을 꾼 것 같아, 아주 좋은 꿈.” 동녘은 눈을 비비고 깜빡였다. 송하는 그런 동녘의 어깨를 살짝 토닥토닥했다. 동녘은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며 송하와 눈을 마주쳤고 송하는 기지개를 켜며 “난 아무거나 괜찮아.” 하고 말했다. 송하는 그때까지만 해도 점을 빼러 가야겠다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동녘은 자신이 점쟁이가 된 것처럼 빨간 츄리닝의 남자가 자신에게 해줬던 말을 얘기했는데 그중에 송하의 점 얘기가 나왔고 동녘은 점 얘기에 꽂혀서 관련된 얘기를 주절주절 떠들어댔다. 송하는 자신은 있는지도 몰랐던 자신의 점이 대화 주제라는 것이 거슬렸다. 동녘이 혼자 떠들어대는 모습은 귀엽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얘기를 하는 건 어딘가 불편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송하는 아직 동녘과 덜 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송하는 얼굴의 점을 콤플렉스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빼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송하와 아주 가까운 사이의 사람도, 심지어 부모님이나 언니마저도 송하의 얼굴에 점을 얘기한 적이 없었다. 송하의 점은 볼의 외곽에 있었는데 아주 작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았다. 사춘기 때 거울을 자주 봤던 송하는 조그마한 트러블에도 열을 내며 약을 바르곤 했는데 볼 외곽에 난 점은 별생각 없이 지나쳤다. 점 빼는 게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할 때도 송하에게 점을 빼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고 송하도 자신의 점을 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간혹 점을 잘못 빼서 흉터가 났다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왜 점을 뺐냐고 말하는 것 말곤 점 얘기를 한 적도 딱히 없었다. 거의 없는 존재처럼 같이 살아온 점을 왜 빼야 하는지 송하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동녘이 점 얘기를 자꾸만 반복해서 점점 짜증이 올라왔다. “그만 좀 해.” 가던 길을 우뚝 멈춰 서고 송하가 말했다. 송하의 목소리는 워낙 작아 자신만 들릴 작은 목소리여서 동녘은 듣지 못했다. 그러니 동녘은 혼자 떠들며 휴대폰의 내비게이션을 보고 가다가 송하가 따라오지 않자 “거의 다 왔어.” 하며 송하의 등 뒤에서 송하를 밀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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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는 무슨 밥을 먹었는지, 동녘이 무엇을 물어봤는지, 밥을 먹고 어디로 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다만 동녘이 모처럼 집까지 데려다줬고 잘 들어가라며 손 흔드는 모습만 떠올랐다. 그리고 점, 점이 오늘 하루에 점처럼 박혀 있었다. 송하는 한 번 신경 쓰면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성격이었고 송하는 집에 들어온 이후로 씻지도 않고 점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찾아보고 있었다. 점을 빼야 하나요, 점 빼기 부작용, 점 빼라는 사주 등 네이버와 다음 사이트를 오가며 여러 가지를 검색하고 있었다. 송하는 취직 선물로 받았지만, 아직 한 번도 켜지 않은 노트북을 처음으로 켰다. 창을 여러 개 틀어놓고 줄만 그어져 있는 A5 사이즈 노트에 빠르게 메모했다. 엄마가 방문을 두드리며 씻고 자야지, 하고 말한 뒤에야 송하는 씻으러 거실로 나올 수 있었다. 엄마는 무슨 일 있냐며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송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고 송하는 별일 없다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내일 아빠랑 언니가 오니까 공항으로 마중 나갈 거야.” 송하의 엄마인 영미는 화장실에 들어가는 송하를 향해 말했다. 송하는 “저는 일 있어요.” 하며 화장실 문을 잠갔다.


송하는 엄마랑 살고, 송하의 언니는 아빠랑 살고 있다. 영미는 유학생으로 미국에 갔다가 송하의 아빠인 제임스를 만나 결혼했었다. 제임스와 함께 한국에 들어와 살다가 송선이 태어나고 송선은 아빠의 미국 얘기를 들으며 미국을 동경했기에 대학 생활을 미국에서 보내고 싶다고 매번 졸랐다. 송하는 둘을 떠나보내며 왜 한국을 떠나는지, 미국을 그리워하는지, 언니는 가본 적도 없는 미국이 뭐가 좋다고 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잘 갔다 와.” 하며 배웅했다. 1년 뒤에 들어올 거라는 두 사람은 몇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미국 생활을 하고 있었다. 송하는 자신과 엄마를 떠난 기분이 들어 서운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다. 영미는 송하와 달리 두 사람이 분기별로 한국에 올 때마다 서운함을 토로하며 한국의 좋은 점을 줄줄 얘기하곤 했다. 송하는 이제 둘이 한국에 들어와 살거나 살지 않거나, 상관이 없어졌다. 송하에게 있어 제임스라는 이름을 가진 아빠와 송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언니는 흐릿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예전에 좋았던 추억도 다 까먹을 만큼. 영미는 여전히 제임스와의 첫 만남을 추억하며 그때의 사진을 냉장고에 이리 붙였다가 저리 붙였다 하곤 했다. 영미는 이제 때가 왔다고 생각했고, 냉장고에 붙어있던 사진을 만지작 거리다가 종량제 봉투 안에 하나씩 넣기 시작했다.


송하는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거울을 보며 점을 찾았다. “내 점이 어디 있더라.”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점에 이렇게 열을 내는 게 갑자기 바보처럼 느껴졌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동녘의 목소리에 진저리를 치며 천천히 얼굴을 살펴봤다. 동녘은 하나에 꽂히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얘기를 하곤 했는데 오늘의 주제는 송하의 점이었다. 송하의 점을 찾아보고, 주변에 점을 뺀 사람과 점을 빼지 않고 사는 사람의 얘기를 하고, 점을 뺀 사람이 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말하며 면접에도 붙었다고 말했다. 그때 송하는 “나는 점 있어도 면접에 붙었어” 하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이미 한참을 혼자 떠드는 동녘의 옆에서 기운이 쭉 빠져 대답이랄 것도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그래, 그래.” 하고 있었다. 송하는 볼 외곽에 있는 점을 보고 “이게 무슨 점이야.” 했지만 동그랗고 약간 갈색빛과 까만색이 섞여 있는 명백한 점이었다. 새끼손가락으로 점을 가리고서 얼굴을 보고 다시 손가락을 치우고서 얼굴을 보며 점을 뺐을 때의 얼굴을 상상했다. 큰 차이 없겠다고 생각하며 이제야 씻기 시작했다. 밤 10시였다.


송하는 어플을 이용해서 카카오택시 기사를 호출하고 아파트 현관문을 벗어나 근처 가게에 서 있었다. 버스를 타고 공항까지 갈 수 있었지만, 송하는 버스에 탄 사람들이 작게 조잘거리는 목소리에 금방 피곤해할 자신을 생각하며 주저 없이 택시를 선택했다. 다행히 택시 기사는 말이 없었고 송하는 평화롭게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표를 뽑으며 송하는 신발을 벗고 타야 한다며 신발을 벗던 고등학교 때의 동녘을 떠올렸다. 작게 웃음이 나왔다. 동녘은 지금 뭘 하나 궁금해서 카카오톡을 켰더니 동녘이 어제 본 사주 얘기로 카카오톡 대화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지막에 “너는 어땠어?”라는 물음에 송하는 “나 점 빼러 육지 가.” 하고 보내려다가 “글쎄.”라고 보내고선 휴대폰을 껐다. 비행기에 타자 처음 육지에 가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 동녘과 처음 인사를 나눴다. 같은 반이었지만 조용한 성격의 송하는 같이 다니는 친구가 없었고 비행기에는 순서대로 탔기에 다들 앉기 꺼려하는 어중간한 자리에 앉았다. 그때 별안간 투블록으로 머리를 깎은 눈이 동그란 남학생이 송하의 옆자리에 털썩 앉더니 “친구랑 싸웠어.” 하며 혼자 얘기를 시작했다. 송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는데 동녘은 “얘기 잘 들어줘서 고맙다.” 하며 인사를 했다. 그때 처음으로 송하가 남학생의 이름을 물어봤다. 남학생은 잇몸이 보일 것처럼 환하게 웃었고 그렇게 송하는 동녘을 알게 되었다. 송하는 깜빡 잠들었는데 꿈에 동녘이 나왔다. 잠들기 전 회상했던 고등학교 때의 동녘이 꿈에 나와 27살의 송하를 맞이했다. 송하는 고등학생 동녘과 재밌는 시간을 보냈고 일어나자마자 “동녘의 꿈, 오랜만이네.” 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비행기에 내려 캐리어를 찾고 나서 송하는 바로 택시승강장으로 향했다. “하나피부과요.”라는 말에 기사는 점 빼러 가냐고 물었고 송하는 여기서 대답하면 말이 길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하하.” 하며 웃었다. “제 점이 보이시나요, 점 빼는 걸로 유명한 피부과라 그러시는 건가요.” 송하는 말을 걸고 싶었으나 말을 걸기 시작하면 자신도 자신의 말을 막기가 힘들 것 같아서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았다. ‘그래, 점 빼기로 유명한 곳이라 그런 거야. 믿을 만하겠네, 잘 됐어.’ 기사는 송하에게 더 말을 걸지 않았고 조용한 택시는 하나피부과에 도착했다. 송하는 처음으로 피부과에 갔던 일을 떠올렸다. 20살, 대학교 오티 전 얼굴의 여드름을 치료하기 위해 동녘과 함께 갔었다. 동녘의 피부는 귤밭에서 귤을 많이 따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얼굴이 아주 뽀얗고 깨끗했다. 그에 반해 송하는 교내 상위권을 유지하기 위해 신경 쓰느라 공부스트레스로 얼굴이 울긋불긋 철아닌 가을단풍이 잔뜩 달렸다. 동녘은 피부과 할인권이 있는데 자신은 쓸 일이 없다며 송하에게 줬다. 송하는 동녘과 같이 가자고 말하고 싶었는데 동녘이 먼저 “같이 가자.”라고 했다. 송하는 “그러던지.” 하며 약간 툴툴거렸는데 기쁜 마음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피부과에 들어가니까 온통 하얀 벽이 송하와 동녘을 반겼다. 동녘은 피부과의 직원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동녘의 셋째 누나가 일하는 피부과였다. 동녘은 어느 한 사람을 보고 누나라 부르며 쪼르르 달려갔는데 누나라는 사람은 동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혼자 멀찌감치 서있는 송하를 보고 저 친구구나 하고 대답했다. 동녘은 그렇다며 송하를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떠들어댔고 누나는 머리를 쓰다듬다 말고 송하에게 가서 “손님, 이쪽으로 오세요.” 하고 송하를 데려갔다. 송하는 동녘에게 작게 손을 흔들며 송하의 셋째 누나를 따라갔다. 송하는 동녘에게 누나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동녘의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을 보며 ‘동녘의 누나겠구나.’ 생각했다. 셋째 누나는 먼저 자신이 동녘의 누나이며 자기가 송하를 불렀다고 말했다. “나도 송하처럼 그 나이 때 얼굴에 난 트러블로 고민이 많았어, 도와주고 싶었어.” 하고 말했다. 송하는 “감사합니다.” 라며 눈을 감았고 셋째 누나는 송하의 얼굴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송하는 그 뒤로 맨질맨질해졌던 자신의 피부를 만지며 예전의 우둘투둘했던 피부를 떠올렸다. 하나피부과의 원무과에 가서 접수를 하고 번호표를 뽑았다. 순서가 되자 피부과에 들어섰고 멀리서 동녘이 응원해 주는 듯했다. 점을 빼는 과정은 동녘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순간이었다. 송하는 얼굴을 치료한 후 따가워서 괴로워하는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피부에 좋은 것들을 사다 먹이던 동녘을 떠올렸다. 동녘은 왜 송하를 피부과로 데려갔을까, 그때도 아마 동녘은 송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돌려 말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온 추억이 하나하나 동녘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점을 빼고 난 뒤 흉터는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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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는 동녘의 손을 잡고 그때 사주를 봤던 현수막으로 향했다. 담배를 피우던 분홍색 발가락 양말의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현수막은 그 자리에 있었다. 송하는 동녘과 함께 얘길 하며 빨간색 츄리닝의 점쟁이를 기다리는데 간혹 검은색 아디다스 츄리닝을 입은 여자가 지나가는 걸 봤다. “아무렴 상관없어” 송하는 동녘의 뒤에 서서 동녘을 앞으로 밀었다. 송하 손이 동녘의 등에 맞닿았다. 동녘도 송하와 같이 말했다. "아무렴."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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