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오늘도 안영희 (1)

by 최예지

화장실은 나의 안식처, 내가 숨죽여 울 수 있는 유일한 공간. 안영희는 화장실 변기 뚜껑 위에 앉아 구겨진 메모지 위에 글을 적었다. 안영희는 돈이 사람을 움직인다는 말과 사람이 돈을 움직인다는 말을 좋아했다. 안영희의 부모가 늘 하던 얘기였다. 안영희는 이제 그 말을 싫어하게 되었다.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졌고, 돈 하나로 울고 웃는 하루살이 인생이 지겨워졌다. 안영희는 구겨진 메모지를 잘 펴서 회색 조끼에 넣고 휴지를 꺼내 코를 풀었다. 휴지를 꺼낸다는 게 방금 적었던 메모지를 꺼내버렸고, 메모지는 더러워졌다. 안영희는 반대쪽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메모지를 싸서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진동이 울렸다. 안영희는 전화를 받으며 급히 나갔다. 대충 넣은 메모지는 바지 주머니에서 빠져나왔다. 안영희가 남긴 메모지를 다른 누군가가 주웠다.


안영희는 집에 와서 메모지를 버리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메모지가 없었다. 안영희는 당황했다. 자신의 속마음을 툭 꺼낸 메모지였는데, 사라지다니. 안영희는 자신의 신체 일부를 뚝 떼어낸 기분으로 바들바들 떨며 천천히 바닥에 손을 짚으며 주저앉았다. 그때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김 과장이었다. 김 과장의 연락이 와 있었다. ‘안영희 씨, 힘든 일 있어요?’ 안영희는 김 과장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안영희가 보기에 그는 기회주의자였다. 무미건조한 벨소리가 울렸다. 이 대리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안영희는 받지 않고 핸드폰을 봤다. 몇 차례 벨소리가 반복되다가 이내 핸드폰의 조명이 꺼지면서 전화는 끊겼다. 부재중 알람이 뜨면서 핸드폰이 다시 반짝거렸다. 어둑해진 방안에 존재한 유일한 빛이었다. 안영희는 “하필, 금요일이야.” 라며 달력의 오늘 날짜에 대각선을 그었다. 안영희는 평일 근무조여서 주말에는 출근하지 않았다. 이대리 또한 그랬고, 김 과장은 주말에도 출근해서 주말 출근조를 관리했다.


이대리는 토요일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아침의 빛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안영희는 눈을 가리며 일어났다. 달력을 보니 전혀 엉뚱한 곳에 쳐진 대각선 표시가 있었다. 안영희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때 김 과장의 연락이 왔다. ‘오늘 점심에 잠깐 만날까요?’ 안영희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던 하루에 자신이 만든 변수 하나, 메모지가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킬 줄 몰랐다. 안영희는 월요일에 다시 출근해야 했고 김 과장을 만나야 회사를 다니기 편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안영희는 사람을 싫어했다. 변수가 가득한 사람은 특히나, 지나가던 소문 하나 집어다가 들어보면, 김 과장의 얘기가 가득했고 안영희는 그 자체를 회사의 ‘변수’로 봤다. 안영희는 표정을 숨기기 위해 마스크를 끼고 김 과장을 기다리고 있다.


안영희는 김 과장의 기나긴 얘길 들었다. 3년 전의 안영희라면, 참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데일 대로 데인 채로 다른 회사로 이직하면서 안영희는 사람과의 교류를 극히 꺼려했다. 그렇기에 김 과장의 ”안쓰러워서 하는 얘기야. “ 따위의 말은 정말 ‘따위의’ 말로 듣고 있었다. 안영희는 여러 사회생활을 통해 학습한 예의 있는 인사를 하며, 자리를 떠났다. ‘김 과장은 이걸로 된 건가, 이대리는 어쩌지.’ 안영희는 집에 오자마자 마스크를 벗고 세수했다. 5번. 김 과장의 아른 거리는 따듯한 눈빛을 지우고 싶었다. 기회주의자라고 여긴 그의 복잡한 면모까진 알고 싶지 않았다. 안영희는 피곤함을 느꼈다. 흑과 백의 논리를 좋아하는 안영희는 단순한 것을 좋아했다.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복잡한 모습을 보이면 거부하기 일쑤였다. 저항했다. 안영희는 이미 충분히 자신 안에서 복잡했기에 더는 복잡한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살고자 했다. 살기 위해, 저항했다.


이대리는 월요일 안영희를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대리는 누구에게나 싱글벙글 잘 웃는 사람이었다. 안영희는 이대리를 대충이라도 정의해 본 적이 없었다. 이대리와 겹치는 업무가 거의 없었다. 안영희는 이대리가 다른 사람과 인사를 하는 모습을 봤다. “이대리님, 잠시 시간 좀.” 안영희는 무슨 용기로 자신이 입을 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지금 보이는 건 집에 널브러진 옷과 먹다마신 맥주캔과 말라비틀어진 멸치 대가리 몇 개였다. 안영희는 이대리를 불러 무슨 말을 했고, 이대리는 안영희를 보며 김 과장과 같은 따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안영희는 최대한 부탁한다는 눈빛으로 이대리를 바라봤다. 안영희는 그제야 무슨 말이었는지 생각났다. “내가 변수네, 내가 변수야.” 안영희는 먼저 승부사를 걸었다. 이대리가 다른 사람에게 퍼뜨려 예기치 못한 동정 혹은 원치 않는 이해를 방지하기 위해 이대리에게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며 먼저 화장실에서 적었던 메모 얘기를 꺼냈다. 이대리는 “김 과장님이 혼잣말하시는 걸 듣게 되어서 알게 되었어요. 걱정 마요, 안영희 씨 비밀은 꼭 지켜 줄게요.” 안영희는 비밀이라는 표현을 쓴 이대리를 떠올리자 머리가 지끈했다. 웃었다. “비밀씩이나.” 안영희는 어쩌면, 이 지겨운 인생도 끝날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안영희는 퇴사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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