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라떼 한 잔
1980년대 특히 그 후반부는 우리나라 역사상 아주 이질적인 시대 혹은 멋드러진 용어를 쓴다면 특이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역사의 특이점이라. 그 시대는 모든것이 0과 1의 코드로 분류되었다. 그러니 다가오는 디지털 시대를 선취했다고 할까?
당시 대학가는 정통과 사이비, 순수와 타락, 혁명과 개량, 노동자와 자본가, 전라도와 타지역 등등으로 뭐든지 갈라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이 각각에 1과 0의 비트값을 매겨서 1의 값이 많은 순서대로 일종의 골품제가 형성되었다. 정통, 순수, 혁명, 진보, 노동자, 전라도를 모두 충족시키는 학생이 캠퍼스의 주류였다. 적어도 충족시키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이른바 입시서열이 높은 대학일수록 더욱 그랬다. 여기에 따라 평균이 0.4-0.7 사이인 학생들은 일반학우, 학생대중 등등으로 불렸다. 0.7 이상인 학생들은 운동권이다. 그리고 0.4 이하는? 자기 공부만 하는 녀석들. 그런 학생들은 80년대 후반 이른바 입결이 높은 대학에서는 일종의 불가촉 천민이나 다름 없었고,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 경멸에 적극적인 부류는 운동권 학생보다 학생 대중 중에 더 많이 있었다.
즉 그 시대의 일반 학생이란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우며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라 적당히 학교공부 하면서 때로는 시위에도 참석하고, 좌파 사상가들에 대하 학습하는 모임에도 적당히 참석하고, 세상을 자본가, 제국주의의 거대한 음모의 망으로 바라볼 줄도 아는 그런 학생을 뜻하는 것이었다.
운동권은 그런 시위를 조직하거나 일반 학우를 동원하고, 적어도 자기 과 학회장 하나는 맡아서 후배를 양성하는 그런 학생들이다. 그런데 그 운동권 안에서도 또 골품이 갈린다. 말하자면 진골 위에 성골 있는 셈이다. 그건 바로 정파(NlL이니 PD니 하는 것)의 부름을 받아 정파의 언더 서클에 멤버로 포섭되어 있는 학생들이다. 하지만 말이 언더 서클이지 일반 학우들조차 아무개는 엔엘, 아무개는 피디 하며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 마치 오늘날 아무개는 민주당, 아무개는 국민의 힘 하는 식으로 일종의 학내 정당이나 다름 없었다. 어쩌면 그들 역시 자기네가 언더 서클의 멤버라는 사실을 학우들이 “알아주기를” 바랬을지도 모르겠다.
알려지기를 바라는 언더서클? 형용모순도 이런 형용모순이 없다.
어쨌든 이 언더 서클 멤버들은 당시 학생회든 뭐든 학교내 조직의 요직을 독점하고 있었다. 간혹 멤버가 아닌 학생에게 일부 자리를 맡기기도 했다. 주로 여성, 혹은 문화 관련 조직이 그랬다. 이 언더 서클들에 소속되지 않은 학생이 학생회장 선거라도 나올라 치면(이른바 비운동권 후보) 때로는 유세 현장에서 야유와 방해에 시달리다 연단에서 쫓겨 내려와야만 했다. "안녕하세요? 기호 3번 아무개..." 이러는데 이미 관중들 사이에서 "반전 반핵, 양키 고홈! 제국의 발톱이 이 강토 이 산하를~" 하고 노래소리가 나오면 수천명이 다 같이 팔뚝을 흔들면서 노래를 하는 것이다. "자 일어나세, 총칼을 들고. 착취와 억압을 뚫고~" 이런 노래도 단골로 터져 나왔다. 물론 그 관중들은 운동권이 아니다. 일반 학생들이다. 어쩌면 먼저 노래를 선창했던 사람들도 운동권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기억을 돌아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짓들이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는 행동들이다. 이런 기억이 살아날 때 마다 나의 청춘 시절에 대해 다시 물어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민주화 운동을 했는가?
만약 민주화 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면? 오 솔직하자. 우리는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도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혁명 투쟁을 하고 있었다. 엔엘이라면 반미 자주투쟁으로 북한을 중심으로 하는 조국통일 투쟁을 한 것이고(오, 제발 아니라고 말하지좀 마라), 피디라면 강철같은 노동자 학생 연대로 민중민주 혁명을 통해 자본가를 타도하고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투쟁을 하고 있었다. 민주주의는 다만 그 수단에 불과했다.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혹은 반미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해 필요한 선전선동의 자유를 얻기위한 수단. 민주주의라는 조건을 만들고, 그 기반을 활용하여 붉은 사상을 자유롭게 퍼뜨리자 대충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1989년 겨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텐안먼이 터졌다. 우리가 역사의 종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세계가 무너지거나 지옥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쟁은 계속 되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고집? 신념? 어쨌든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것은 다만 관성에 불과했다. 지적인 게으름의 소산에 불과했다.
나는 1990년을 내내 룸펜처럼 지냈다. 그럴수 밖에. 모든 목표가 허무하게 사라졌는데. 하지만 룸펜처럼 지낸 내가 1990년에도 열심히 투쟁했던 동지들보다 적어도 지적으로는 더 부지런했던 셈이다. "대체 내가 무엇을 한 것이지?" 라는 질문은 던졌으니까.
비가 내린다. 허전한 라떼 한 잔을 마시고 싶은 날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