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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Apr 11. 2021

14년 전에 전교조에 제안했던 글

새로운 시대의 교육운동, 교사운동에 대하여

유물 하나 찾아서 공유합니다. 지금 보면 낡은 문제의식일수도 있고, 아직 유효한 문제의식일수도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것은 14년 전 전교조가 소화하기에는 좀 벅찼다고 생각됩니다.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실천교육교사모임이 여기 더 가깝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실천교육교사모임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시대가 그 모임을 만든 것입니다. 그것이 진보진영이 그토록 좋아하는 말인 역사의 필연이었을 것입니다. 


나도 14년 전에는 패션좌파의 최 첨단이라 온갖 좌파 용어와 관념적 용어들이 글에서 난무합니다. 



I. 새로운 시대새로운 노동
 
1. 정보화와 낡은 생산관계(조직)의 모순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상부구조에 결정적인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우리는 생산수단의 놀라운 변화를 목도하였다. 바로 정보 통신 혁명, 추상적이었던 지식과 정보가 그 자체 부의 원천이 되어버리는 변화가 그것이다. 당연히 이런 생산력의 변화는 생산관계를 바꿀 것이고, 상부구조인 교육 에도 엄청난 변화를 던져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히 이 변화는 낡은 생산관계, 낡은 상부구조와 모순을 일으킬 것이고, 이 모순은 구체적으로 사람들의 고통으로 현상할 것이다. 누가 이 고통의 목소리를 잡아내는가 하는 것이 바로 운동의 결정 적 동력이 될 것이다.1) 


그런데 한국의 진보진영은 이 기본을 잊고 있었고, 이 변화로 인한 고통의 지점 을 잡아내는데 실패하였다. 오히려 자본이 한 발 앞섰다. 이들은 케인즈주의에 기반 한 국가자본주의를 새로운 생산력의 걸림돌이 되는 낡은 생산관계로 공격하면서, 고통의 지점으로 지식과 정보에 기반한 창의적인 노동자와 그를 얽어매는 각종 관 료제적 규제와 통제, 획일화를 잡아내었다. 이 흐름을 흔히 신자유주의라고 하고 네 그리는 보다 폭넓게 제국이라고도 부른다. 


반면 진보진영은 케인즈국가(앙시엥 레짐)의 옹호자로 나서면서 오히려 진보성을 잃어버렸다. 신자유주의가 낡은 생산관계의 파열구인 비대해진 공공영역의 비효율 과 사회전반을 옭죄는 답답한 관료제를 공격할 때, 진보진영은 오히려 각종 규제와 관료제, 국민국가를 옹호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진보에 대한 재앙에 가까운 지지 율과 영향력을 조중동의 농간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옳건 그르건 간에 신자유 주의는 21세기의 모순점을 두드렸다. 진보진영은 거기에 구시대적으로 저항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타격점에 대해 더욱 강력한 공격을 가함으로써 신자유주의의 위선을 만천하에 드러나게 해야 하며, 획일성과 최악의 관료제를 해소시킬 진정한 힘이 왼 쪽에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즉 운동의 주체성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이것 역시 자본이 더 빨랐다. 드러커는 “산업 프롤레타리아는 사라지고 이제는 지식노동자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한다. 이제 대규모 공장에서 치열하게 대립하던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의 모습은 점차 소수의 지식노동자와 다수의 분산적 인 맥잡으로 대체되고 있다. 전통적 진보진영의 세력기반인 산업노동조합들은 그 재료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드러커나 벨의 주장처럼 정말 노동자들은 사라지고 자유로운 지식 소생산자들의 세계가 온 것인가? 아니다. 노동자들은 사라 지지 않았다. 다만 공장 밖으로 나갔을 뿐이다. 


2. 비물질 노동의 시대 


중세에는 농업이, 근대에는 산업이 중심이었다면 정보화 시대에는 무엇이 생산의 중심인가? 흔히 지식·정보 산업, 서비스 산업이라고 말한다. 혹은 정신노동이라고 말 한다. 그러나 이는 모두 근대의 용어다. 산업혁명 이후의 농업이 농업이라기 보 다 식량산업이듯, 정보혁명 이후의 산업은 설사 육체노동이라 할지라도 이전과 다 른 그 무엇이다. 그것은 바로 비물질 노동이다. 


비물질 노동은 지식·정보노동, 상징노동, 그리고 정동(情動)노동을 통칭하는 말이 다. 지식·정보는 오늘날 그 자체 생산물이며 가치의 원천이 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지식·정보의 흐름을 관리하는 상징노동의 위상도 매우 중요해지며 그 자체 가치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노동은 지식·정보 기계의 발달과 함께 사라지고 축소된다. 오늘날 가장 인간적인 노동으로 남는 것이 바로 정서노동이다. 과거에는 정서가 매 상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으나 이제는 정서 그 자체가 상품이다. 여기에는 감정노 동,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그리고 care노동 등이 포괄된다. 심지어 물질을 생산하 는 노동조차 궁극적으로는 정동이다. 오늘날 지식·정보·정동을 생산하지 않는 그야 말로 물질노동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점점 주변화, 최소화되고 있다. 물질은 기계 가 다루고 인간은 지식과 정동을 다룬다. .....


(이하 첨부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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