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값 때문에 국민멘탈붕괴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수도권, 그리고 어떻게든 수도권에 연결이 가능한 지역에 남아있기 위한 눈물겨운 집구하기 전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럴때 가장 나쁜 정치 지도자는 당장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다. 이런 것.
수도권에 너무 집중되었으니 문제다. 수도권을 분산하여 지방 소멸을 막으면 다 해결될 문제다.
물론 우리나라 수도권은 엄청난 밀집지역이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인 타이완이나 일본에 가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골목여행의 성지"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나라 수도권 주민들이다. 나라 전체로는 타이완의 인구밀도가 우리나라 1.5배지만, 타이완의 1/3 도 안되는 수도권에 타이완 인구 전체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말 다했다.
이미 역사적 배경부터 다르다. 일본이나 타이완이나 모두 지방의 독자성이 강한 나라들이다. 일본이야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는 쇼군이 여러 번의 영주들이 참군교대를 통해 간신히 통제할 뿐이었고, 각 번의 내정은 영주 소관인 지방연합국가였다. 도쿄는 물론 후쿠오카, 오사카, 나고야, 센다이, 카나자와 같은 도시들은 각자 자기네 지역에서 작은 서울 역할을 했다. 되는 중앙집권국가라기 보다는 일종의 국가연합에 가까웠다. 1990년대 까지도 일본에서 후쿠오카, 오사카가 차지하는 위상은 우리나라 광주, 부산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타이완 역시 정씨왕조때 부터 이 섬의 중심지였던 본성인의 중심지 타이난, 원주민 인구가 많은 타이둥, 하카인이 많이 사는 신주, 중국에서 건너온 외성인이 많이 사는 타이페이, 식민지 시기 일본인이 많이 살았던 타이중 등 각 지역마다 성격이 분명했고 심지어 쓰는 언어도 통역이 필요할 정도로 달랐다.
따라서 일본이나 타이완에서는 서울:지방이라는 분류가 익숙하지 않다. 그냥 각 지역들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이 나라들에서도 이촌향도 현상은 있지만 그 지역 안에서 중심도시와 시골간의 인구이동을 표시하는 것이다. 규슈 농촌에서는 후쿠오카나 기타 큐슈로, 나가노 산골에서는 나고야로. 각 지역은 그 자체로 완결적인 경제구조를 이루고 있었고, 특별히 큰 성공을 바라지 않는다면 1990년대까지도 고향에 그냥 살거나 지역 중심도시에 나가 공부하고 일자리를 구하면 적당히 살아갈 수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조선시대부터 철저한 중앙집권국가였다. 16세기 기준으로 전국 구석구석까지 왕이 임명한 관리가 파견되고, 이 관리가 그 지역의 영주가 되는 게 아니라 몇년마다 인사이동으로 교체될 정도로 철저히 통제되었다. 이렇게 전국이 중앙정부에게 철저히 통제된 나라는 당대에는 조선 말고 달리 찾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다. 이렇게 중앙정부가 전국을 철저히 통치하는 나라였기에 서울과 부산, 광주의 관계는 도쿄와 오사카, 후쿠오카, 타이페이와 타이중, 타이난의 관계와 같지 않다. 오사카나 타이난은 도쿄나 타이페이에 대해 솔직히 좀 꿀리긴 하지만 그래도 자존심을 세워볼만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지방인 시대가 오래동안 계속되었다. 물론 부산 사람들은 나름 자존심도 세워보며 "우리 부산" 이런 마인드들이 좀 있지만, 음, 그냥 정신승리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서 이촌향도에서 촌은 농어촌이 아니라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며, 도는 도시가 아니라 서울, 그리고 수도권이다.
조선시대의 유배형은 다른나라와 달리 살기 어려운 오지나 극한지역에 보내지 않는다. 수용소도 없다. 그냥 지방에 가서 현지 주택 구해서 서당질 하며 살면된다. 위리안치나 섬으로 유배 보내는 경우는 상당히 중형에 속한다. 심지어 정약용은 외가가 있는 강진에서 경치좋은 집 짓고 잘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오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사대부들에게 충분한 형벌이 되었다. 은퇴한 관료들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서울 근처에 집을 얻는 경우가 많아 남양주, 양평 일대가 양반 시니어타운이 되기도 했다.
산업화, 근대화와 더불어 일본, 타이완 같은 나라에서도 수도와 지방의 격차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21세기 들어 서비스, 첨단산업 중심으로 산업이 다시 개편되고 인적자원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대기업들이 다른 입지조건보다는 인적자원 중심으로 회사를 배치하면서 수도권의 비중이 더 높아졌고, 결국 오사카, 타이중 같은 도시에서도 인구가 유출되어 도쿄도, 타이베이, 신베이로 이동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수백년동안 서울: 지방의 전통을 가진 우리나라는 어떨까? 이미 지방이 자족적 경제단위가 아니게 된지 오래였는데, 그나마 수도권에서 분양되었던 일자리마저 사라지거나 도로 수도권으로 회귀하고 있다면?
지방소멸은 일본에서 먼저 나온 말이다. 그런데 일본의 지방소멸은 저출산 고령화를 가장 중요한 변인으로 두고 설명하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지방소멸은 저출산 고령화에 보태어 일자리, 그리고 거기 따라가는 경제활동 인구의 빠른 유출까지 결합되는 현상이다. 이 흐름을 역행하여 과연 서울을 지방으로 분산시킬 수 있을까? 안 그래도 거미줄 같은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통해 서울과 지방의 심리적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데? 20년 전 강서구 화곡동에서 강남까지 대중교통수단으로 이동하던 시간이면 지금 광주, 대구에서 강남까지 이동할 수 있다. 이미 서울에서 "먼 데서 힘들게 오셨네요?" 라는 인사를 들을 정도의 지방은 남해안 지역 정도만 남아있다.
(여기까지만 쓰고 다음에 이어 쓰겠다. 표지에 일본 성 사진을 올려 놓은 이유는 일본 이야기를 할 것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