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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Sep 12. 2021

교육계 대표들은 이재명 지지선언을 철회하라

이른바 교육계를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130인이 이지명 후보를 지지한다며 현수막을 들었다. 일단 웃음부터 나온다. 차라리 대학교육계, 사교육계 등 앞에 관형어를 붙였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교육계라고 하면 100이면 99명 유초중등 교육을 떠올린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괴랄한 법률에 의하여 유초중등 교육자는 물론 그 교육자들을 '대표'하는 단체도 어떤 정치인에게 지지를 선언할 수 없으며, 심지어 "마치 지지하는 듯한 뉘앙스"도 비추이면 안된다. 그러니 이 130인이 도대체 무슨 근거로 교육계를 대표한다며 나섰는지도 우습고, 그렇게 나섰으면서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떠드는 것도 우습다.

둘 중 하나다. 법을 어기고 있거나, 교육계를 대표하지 않거나. 


그런데 보아하니 법을 어기고 있는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저 130인 중에 최근 10년 이내에 유초중등학교 교육에 종사한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교육계 대표가 아니란 뜻 아닌가?


뭐, 좋다. 교사에게 정치적으로 재갈이 물려있는 상황이 너무 애석하고 불쌍해 보여서 대신 나섰다고 봐주자. 세상에나 학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정치적 자유가 보장된 건 공무직들 뿐이다. 파업할 수 있는 것도 공무직 뿐이다. 그래서 지자체고 뭐고 다들 교사는 뒷전이고 공무직 눈치나 보며 이리저리 휘둘린다. 우리나라 학교는 공무직>정치인>교육관료>학부모>학생> 교사의 카스트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불쌍한 불가촉 천민 교노(교사라는 말도 민망하다. 그냥 교노라고 하자. 하긴 페다고지라는 말 자체가 고대 아테네에서 아이들 돌보는 노예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대신 교육계를 대표해 준 셈 치자. 고맙다. 눈물이 난다.


그런데 말이다, 대표한다고 나선건 그렇다고 치지만, 교노들이 언제 이재명을 지지해달라고 했나? 교직사회 여론이 이재명 지지인데, 교노가 그걸 직접 말하면 짤리니까 불쌍해서 대신 말해주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런데 저 130명 중 교노들을 꾸준히 만나면서 어떤 대선 후보를 원하는지 물어본 사람은 단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교노가 지지하고 싶은 후보는 이재명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교육 업자에게 휘둘리지 않고, 정치적 목적으로 교육과정 누더기 되는 거 막고, 행정이 교육을 휘두르는 목적전치 현상을 바로잡고, 교노를 해방하여 교육 전문가로서 교사로 존중해줄 "그 누군가"이지 처음부터 "이재명"은 아닌 것이다. 그 누군가가 반드시 여권에서 나올 이유도 없고, 야권을 처음부터 배제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근거로 콕 짚어서 이재명인가?


130명 교육계 대표들께 고한다. 이재명 지지선언을 철회하라. 이재명을 반대하라는 것이 아니다. 어떤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거나 미리 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신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후보들을 차례로 초청하여 그들의 교육비전과 정책을 검증하는 토론회를 열어라. 그 토론회를 열기 위해 필요한 질문과 내용을 교노들과 오손도손 준비하라. 전교조, 실천교사 등의 단체하고만 이야기 해서도 안된다. 누가 진보교육은 선이고 보수교육은 악이라고 했나? 가능하면 교노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그런 준비단을 모셔서 질문과 토론내용을 만들어라. 여기까지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공무원법,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130인 대표, 당신들도 교육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에 치열하고 심도있는 토론회를 이쪽 저쪽 모든 후보들을 상대로 펼치라. 누구를 지지할지는 당신들이 아니라 그 토론 결과를 본 교육자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그래봐야 교노들은 "아 누구를 지지하기로 결정했어."라고 공표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정할 수 있다.


참고로 저 토론회 준비하려고 마음 먹었다면 나는 찾지 말라. 나는 이미 명퇴날짜 세고 있는 퇴물이다. 젊은 교노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그리고 저 대표단 중에서도 연세가 심히 많은 분들, 20년째 그밥에 그나물 하고 계신 분들은 부끄러움을 알고 제발 좀 물러나라.


세줄 요약:

1. 대표라는 말 쓰지 말아라. 

2. 이재명 지지 철회하고 모든 후보들을 초청하는 중립적인 교육 토론회를 열어라.

3. 그 토론회는 젊은 현장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준비하도록 하라. 


이 글 다 쓰는데 딱 12분 걸렸다. 이는 내가 천재라서일까 아니면 분노의 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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