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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May 03. 2020

교육 선진국 교육행정 후진국

젊은이들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기성세대들은 여전히 우리나라를 개발도상국으로 여긴다. 그래서 입만 열면 “선진국에서 배우자”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 중 가장 황당한 말이 “교육 선진국”을 운운하는 것이다.


선진국이 대체 무엇일까? OECD회원국? 혹은 OECD 미가입국인 싱가포르, 타이완을  포함하여 인간개발지수 0.9 이상인 나라? 그 어느 경우에도 우리나라는 당연히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여러 사회지표에서 대체로 OECD하위권을 달린다. 겨우 선진국인 것이다. 오직 OECD 탑을 달리는 지표는 교육과 보건이다. 그러니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교육에서는 딱히 우리보다 더 “선진국”을 찾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교육 뒤에 두 글자를 더 붙인다면 말이 된다. 그 두글자는 바로 “행정”이다. 우리나라 공교육체제는 확실히 충분히 선진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 이유는 교육이 아니리 교육행정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교육행정 후진국이다. 왜 그런지 따져보자.


사전적 의미에서 교육행정이란 


1) 교육활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2) 그 목표달성에 필요한 인적(人的)·물적(物的) 조건을 정비·확립하고 

3) 목표달성을 위한 활동을 지도·감독하는 것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교육행정은 대부분  3)에만 집중되어 있다. 


1)은 입시교육과 대중주의의  광풍 앞에 제 몫을 못하고 있고, 이른바 수요자 중심이라는 빌미로 학부모 여론에 끌려다니고 있다. 분명 공교육의 목표가 국가교육과정에 고시되어 있지만, 교육행정은 그것을 제대로 시행하려는 교사를 지켜주는 역할을 전혀하지 못하고 한편에서는 학부모의 요구라면서 교육과정의 이탈을, 다른 한편에서는 교육과정 준수를 요구하며 교사를 괴롭힌다. 교육개혁을 하라고 했더니 온통 대입타령만 하더니, 그마저 여론조사로 정해버리는 교육행정 당국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2)는 더 말할것도 없다. 1)이 불분명한데 이게 제대로 될 턱이 없다. 더구나 기재부의 서슬 앞에 당당하게 교육적 당위를 내세우며 인적, 물적 조건의 확립을 요구할 배짱도 능력도 없다. 앞으로 인구가 감소하니 교사가 남아 돌것에 대비하여 미리 학급 수를 감축하라는 기재부의 요구앞에 서울 기준 20명 미만으로 줄어들던 학급당 인원을 도로 25명 이상으로 늘려놓는 어이없는 짓을 교육행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교육기관이라는 특수성을 망각하고 다른 관공서에 적용되는 정보보안수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ICT강국이라는 이름에 부끄럽게 와이파이 하나 안되는 학교를 10년째 유지하면서 문제성을 느끼지도 못하는 것을 교육행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러면서 미래학교, 미래교육 어쩌구 하는 보고서, 계획서만 번지르하게 만드는 것을 교육행정이라 부를 수 있을까? 


결국 세우지도 않은 목표, 분명하지도 않은 목표, 실제 달성이 불가능한 모순적인 목표들을 공문으로 던져놓고 어떻게든 그것을 빌미로 지도, 감독이라는 권력만 행사하려는 게 우리나라의 교육행정이다. 본인들도 그게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는제 요즘은 그걸 빙글빙글 돌려서 지원행정이라고 부른다. 각 시군구 교육청도 교육 지원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공문도 지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온다. 그럼 지원을 해야 할텐데, 이들이 말하는 지원은 오직 연수와 컨설팅, 즉 자기들 잔소리를 들으라는 것 뿐이다. 학교가 원하는 지원은 일을 도와주는 것이지, 평가질이나 훈수를 두라는 것이 아니다. 그 정도는 이미 그들이 말 안해도 다 할 수 있는 인력들이기 때문이다. 와서 훈수질 할 시간에 차라리 엑셀이나 문서작업을 대신해주는 것, 그게 지원이다.


당장 스포츠 분야를 보라. 스포츠가 있고 스포츠 행정이 있다. 스포츠는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한다. 선수는 경기를 하고, 코칭 스태프는 작전을 짜고 선수들의 경기력을 관리한다.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관중을 어떻게 동원할지, 경기장 시설은 어떻게 할지, 경기 장비는 어떻게 조달할지, 경기 일정은 어떻게 짤지 따위를 놓고 고민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직 경기 잘 할 걱정만 한다.  이때 경기 이외의 것들, 이게 바로 지원이고 행정이다. 그리고 그런 업무를 구단 프론트가 담당한다. 만약 선수가 경기뿐 아니라 이런 것들까지 신경쓰고, 그 중 일부를 직접 담당해서 수행하기까지 해야 하는 팀이 있다면, 필경 아마츄어 팀이거나 동호회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우리나라 공교육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선수에 해당되는 교사들이 경기에 해당되는 수업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장 관리에 해당되는 학교 시설물 관리, 경기 일정 관리에 해당되는 학사일정, 수업 시간표 관리, 대체선수 임금 지불, 장비 구입 및 관리, 심지어 감독에 해당되는 교장, 교감이 해야 할 각종 계획서 및 평가서 작성 업무까지 나누어서 하고 있다. 심지어 구단 프론트에 해당되는 교육청, 교육부는 오직 지시를 하고 보고만 받는다. 

가령 언론에 "학습꾸러미를 제공할 것이다."라고 발표했다면, 이는 학습꾸러미를 만들어 배부한다는 뜻이 아니라 "교사들에게 학습꾸러미를 만들어 배부하라고 시키겠다.", 그리고 얼마나 만들어 배부했는지 보고받겠다는 뜻이다. 그걸로 자기들 할 일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렵던 시절 일손이 모자라 서로 도와가며 학교를 운영해야 했던 개도국 방식, 일제강점기 식민지 통치를 위해 이루어지던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이던 지시 보고 방식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이러고도 리그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오직 선수들의 역량과 헌신 덕분인데, 구단 프론트는 이게 자기들 덕분이라고 생색을 낸다. 그러면서 꺼내는 말이 "선진교육을 도입하여" "선진국 교육을 따라잡기 위하여" 등등의 것들이다. 


그런 말 집어 치워라. 선진화되어야 할 개도국 사람들은 바로 당신들이니까. 우리나라는 "교육행정" 후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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