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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Feb 15. 2022

나의 전교조 25년 (2)

내 인생의 거의 절반을 함께 했던 전교조를 돌아보는 시리즈를 쓰겠다고 공언한지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났다. 첫번째 글만 쓰고 변죽만 울린 뒤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그만큼 삶이 번잡했는지, 아니면 그 시절을 끄집어 내는 것이 고통스러웠는지는 딱 부러지게 말하기 어렵다. 어쨌든 지난번에 쓴 도입글이 몇 달 전의 것이라 미리 읽어보는것이 그 다음 이야기를 같이 이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https://brunch.co.kr/@hagi814/22#comment

내가 전교조에 소속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1989년 전교조가 처음 설립되던 해 부터다. 내가 전교조를 탈퇴한 것이 2014년이니 그때부터 계산해서 25년이다. 그런데 내가 처음 교사생활을 시작한 것이 1992년이다. 그러니까 나는 교사가 되기 전, 대학교 3학년 때 부터 스스로를 전교조 구성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1989년이 전교조 설립 원년이니, 나 역시 원년멤버라 할 수 있다.


나는 운동권 학생이었다. 그 중에서도 민족주의 성향의 NL이 아니라 좀더 좌파성향이 강했던 PD였다. 즉 우리의 당면과제가 반미와 통일을 통한 외세로부터의 자주독립이 아니라 독점자본의 타도와 노동자 계급에 의한 인민민주주의 혁명(사회주의의 전단계)이라고 본 것이다. (여러번 강조하지만 19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은 절대, 절대 민주화 운동을 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존재적 기반이 노동자 계급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NL은 이런 고민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무슨 직업에 종사하든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나름의 실천을 하면 되니까. 하지만 PD는 국립서울대학생이라는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자가 되거나, 고차원의 혁명이론을 주창하는 혁명지도부가 되거나 외에는 딱히 답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 회사원으로 덜컥덜컥 취직 잘 하고(총학생회 회장 선거에 나왔던 선배도, 노동자 학생 연대투쟁 총책임자였던 선배도 그냥 대기업에 취업하여 독점자본의 개가 되는 모습), 변호사, 판사 덜컥 덜컥 잘 되는 PD선배들을 보면 놀랍기도 하고 역겹기도 했다.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심지어 노사관계법 위반 등으로 옥고를 치르고 온 노동운동가도 복학하고 졸업하더니 무려 KB에 입사했다. 아니 자본주의의 핵심에 침투하여 체제를 뒤엎겠다는 뜻일까? (물론 아니다. 그 노동운동가는 훗날 지점장도 하고 아주 잘 살았다고 한다. )


사범대학생으로서 나의 자괴감도 엄청났다. PD이론에 따르면 공교육기관인 학교는 계급재생산, 이데올로기재생산 기계에 불과했다. 교사란 어린 학생들에게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지배체제의 일개 나사못, 톱니바퀴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대기업 사원이 되는 것 보다는 조금은 존재를 낮추는 것이긴 했지만(당시엔 그랬다), 노동자 계급의 혁명을 외치던 입장에서 그건 계급에 대한 배신이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중에 전교조가 결성되었고 정권의 모진 탄압을 받았다. 모진 탄압은 곧 지배 체제에 큰 위협이 된다는 증거로 보였다. 즉 교사는 경우에 따라 지배 체제를 위협하는 혁명적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거야 말로 '유레카'였다. 교사가 되더라도 지배체제의 일개 부품이 아니라 혁명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그 가능성을 세 글자로 줄이면 '전교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진로 고민에 교사는 선택지에 들어있지 않았다. 독일로 유학을 가서 본바닥 좌파 사상을 공부할 것인가(요즘 김누리, 진중권 같은 사람들이 하는 짓), 다 집어 치우고 다시 강남 도련님으로 돌아가 대기업에 들어가던가, 정말 존재론적인 탈피를 감행하여 학교 집어 치우고 위장 취업하여 생산직 노동자가 되어 노동운동가가 될 것인가, 이 셋이 내가 고려하던 선택지였고, 그 중 첫번째로 상당히 기울고 있었다. 그런데 생산직 노동자가 되지 않고도, 지식노동자로서 적절한 품위와 안락한 삶을 누리면서도 지배계급을 흔들 수 있는 혁명적 실천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전교조'!


이때부터 나의 진로는 교사가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전교조 조합원이 되었다. 교사는 전교조 조합원이 되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 교육 그 자체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야, 너희 사회책에 나오는 내용 다 거짓말이야. 그건 자본주의의 착취와 억압을 감추기 위한 허위의식이야. 지금부터 진짜 사회공부를 시켜줄게." 그러면서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사회현상을, 역사를 설명하면 그것이 '참교육'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부끄럽기 짝이없다. 부끄럽지만 일단 기록해 둔다. 부끄러운 과거 역시 엄연한 역사이며, 역사는 아무리 사소한 사람의 사소한 행적이라도 공공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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