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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Apr 21. 2020

유럽은 없다

코로나가 드러낸 아시아의 힘

신종코로나가 온 세계에 창궐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을 마치 불이라도 난것처럼 덮치고 있다. 명색이  G7 이라는 이탈리아, 그리고 G10에 들어가는 스페인, 심지어 영국과 프랑스, 스웨덴 조차 의료 시스템이 패닉 상태에 빠지면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많은 희생자가 나오고 있다.


이 와중에 1990년대 아시아의 드래곤이라 불렸던(혹은 호랑이) 대한민국, 타이완, 싱가포르, 홍콩은 미국, 유럽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싱가포르가 방심하다 확진자가 크게 늘어나는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아직 사망률이 1%에도 미치지 않아, 10%씩 죽어 나가는 영국, 프랑스 등과 비교 불가다.


이 역병이  중국, 이란, 이탈리아의 문제일 때만 해도 서방 선진국들은 이 드래곤들에게 그리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들이 이 역병앞에 속수무책이 되자 그제서야 다시 드래곤들을 주목하면서 갖가지 분석기사들을 내고 있다. 이들, 특히 유럽은 큰 충격을 받았으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이 아시아 드래곤들의 성공에 대해 보도하면서 항상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논지를 압축한다.  


1) 신속한 행동, 2)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의 정보통신기술의 활용, 3)중앙통제, 4)투명한 정보공개와 소통


이들이 언급하지 않는 것은? 이 나라들의 높은 의료수준, 위생상태, 교육수준,  경제수준, 한 마디로 삶의 질이다.  유럽인들은 일관되게 2)와 3)을 강조한다. 정부가 강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게 뛰어난 정보통신기술과 결합함으로써 "자유를 사랑하는" 자기네 국민보다 훨씬 용이한 방역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방역은 잘 했는지 몰라도, 자유를 포기한 댓가에 불과하다는 어느 프랑스 변호사의 엉뚱한 비난 역시 이런 기조에서 나온 것이다.


https://m.khan.co.kr/view.html?art_id=202004121616001&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_share


너희는 효율과 안전을 추구하지만 우리는 "자유 아니면 죽음을!" 뭐 이런 말인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극단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나라들은 아시아 4룡이 아니라 유럽의 선진국들이다. 4룡에서는 어디에도 강제적인 이동제한 같은 정책은 실시되지 않고 있으며, 대만의 경우는 프로야구가 개막되었고, 학생들도 정상 등교중이다. 게다가 유럽 선진국들의 자유는 시민들이 스스로 공익을 지키는 자율로 나아가지 못했다. 사재기가 거의 약탈수준으로 이루어졌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정부만 목놓아 외칠뿐, 강제로 이동을 제한하기 전까지는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3월 20일 흥미로운 사건이 일어났다. 확진자가 두 자리수에 불과하던 대만에 해외 유입 확진자가 늘어나자 불안한 시민들이 사재기를 시작했다. 유럽인들은 "거 봐라." 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차이잉원 총통이 나서서 엉뚱한 말을 했다. "사재기를 권장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032014221894526


사실 일리 있는 말이긴 하다. 사재기는 단기간에 상품 수요를 폭증시키기 때문에 코로나로 인해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가 있다. 사재기의 문제는 그렇게 폭증하는 수요를 공급이 감당하지 못하면서 사회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이다.  그런데 차이 총통이 이렇게 말한 배경에는 아무리 사재기를 해도 일시적인 숏티지는 있을지언정, 일단 수요가 확인되면 빈 매장을 바로 채울만큼 생산력에 자신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역시 사재기가 한창이다. 다만 직접 매장에 가지 않아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택배가 밀리고 택배기사가 과로로 쓰러질 정도니 온라인 사재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택배기사가 과로로 쓰러질지언정 상품이 끊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로 무시무시한 생산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은 지금 정부의 신속한대처, 기발한 방역 시스템과 기술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실제 이들이 눈여겨 봐야 할 것은 한국과 대만이 보여주고 있는, 스타크래프트 식으로 말하면 거의 무한 팩토리 수준의 물량전이다. 하긴  한국과 대만은 원래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수출길이 막혔으니, 그까짓 내수야 사재기를 아무리 해도 넙죽넙죽 들이 댈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할수는 있다.


그렇다. 바로 이 말을 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나라, 국민들의 사재기조차 너끈히 감당할 만큼 높은 생산력을 보유한 나라, 그리고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아도 시민의 자유를 일정정도 제한하는 일이 잘 이루어지는 나라, 이런 나라를 뭐라고 부를까? 뭐긴 뭔가, 선진국이지.


그 동안 미국과 유럽은 이 점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시아 4룡은 1960-1990년 까지 신흥산업국(NICs)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지금 신흥산업국 항목을 찾아보면  중국,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럼 과거의 신흥산업국들은 어디로 갔나? 미국과 유럽은 내심, 그들이 자기들 수준 혹은 그 이상의 수준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 등 새로운 신흥국이 등장한 이후 벌써 30년이며, 그 사이에 4룡은 놀고 있지 않았다. 서방세계가 4룡을 마지못해 선진국 클럽에 구석자리를 마련해 준지도 벌써 20년이다. 그렇다면 지금쯤 사실상의 역전이 일어났다 한들 딱히 신기할 것도 없는 것이다.


한국과 대만은 인류 역사상 30년 연속 성장률 5% 이상을 기록한 단 둘뿐인 나라들이다. 이 기록은 이후 그 어느 나라도 깨지 못했다.  30년 전에 이미 지금의 중국 레벨을 넘었던 나라들이 이후 제자리 걸음을 하지도 않았는데, 2000년대 들어 거의 20년을 제자리 걸음을 한 유럽을 넘어서는 것은 당연한 결과 아닌가?

유럽은 이제 100년 넘게 지켜오던, 심지어 미국에 대해서조차 그렇게 바라보던 유로센트리즘의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 유로센트리즘의 눈으로 바라보면 대만에서 뉴욕 타임즈에 게재한 이 광고는 무엄하기 짝이 없을 것이며, 심지어 놀리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게 냉정한 현실이다. 그리고 여기서 드러난 차이는 단지 방역이라는 제한된 영역에 그치지 않는다. 생산력과 시민의 수준에서도 차이가 드러났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선진국들이 아시아 앞에 코가 납작해졌다는 식으로 쓰고 있는, 이런 기사 역시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0041496167

유럽을 선진국의 상징처럼 생각하며 우리와 비교하던 시대는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지나가 버렸다. 이제 유럽은 우리에게 일종의 도서관이나 박물관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탈아입구가 아니라 탈아월구의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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