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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Apr 09. 2024

TMI1  황제 폐하의 비밀

고려거란 전쟁 이야기 (3)

고려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상당히 낯설은 호칭이 있다면 바로 황제폐하일 것이다. 황제 폐하라니? 이게 자뻑일까 아니면 실제일까? 확인할 길이 없다.고려의 실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려 역사를 기록한 가장 오래된 정본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인데, 이 책들은 모두 조선 시대에 나왔다. 모두 알다시피 조선은 철저한 모화사대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고려 왕실의 호칭을 스스로 제후국 수준으로 순화해서 기술했을 것이다.

다만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단서는 몇 가지 있다.

일단 왕자들을 태자라 불렀던 것은 기록에 남아있다. 그렇다면 고려 왕은 황제를 자처했을 가능성이 크다. 태자는 황제의 아들이지 왕의 아들을 일컫는 호칭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조선은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자조차 태자보다 하나 아래인 세자라 불렀다.그런데 고려는 왕위 계승권자가 아닌 왕자들도 태자라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 왕위계승권자는 뭐라고 했을까? 태자 정윤이다. 계승권자가 아닌 왕자는 사는 집 이름을 따서 OO원군이다. 현종이 대량원군이라 불렸던 것이 바로 그 사례다.

그러다 문종 이후에는 정윤, OO원군의 호칭이 사라지고 왕권계승권자만 태자라 부르고 다른 왕자들은 왕과의 촌수에 따라 작위를 받았는데 그게 바로 공작, 후작, 백작이다. 왕족이 아닌 경우에는 잘 해봐야 자작, 남작 정도의 작위를 받았다. 가령 현종 시절의 실세였던 채충순이 개국남으로 봉해졌다 나중에 개국자로 승진한 것이 그 예다. 채충순 정도가 자작이다.


그럼 공작, 후작, 백작 등등이 왜 조선시대에는 사라졌을까? 조선은 스스로 제후국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제후가 제후를 임명할수는 없다. 제후는 대부만 임명할 수 있다. 따라서 왕족들에게 공, 후, 백의 작위를, 신하에게 자남의 작위를 내린 고려왕은 왕이 아니라 황제라 칭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고려의 왕자들 중에는 심지어 OO왕, OO군왕 이렇게 봉해진 사례들도 기록에 남아있다. 왕을 책봉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군주라면 황제일수 밖에 없다.

또 신하들이 임금을 부를때 폐하라 불렀음은 기록상 명백하며, 임금의 어머니를 대비가 아니라 태후라 칭했음 역시 기록상 명백하다. 또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명령서를 교지라 하지 않고 조칙이라 했고, 관직체제 역시 중국과 대등한 3성6부(조선은 의정부와 6조)제였다. 고려의 사신은 송, 요, 금 등을 방문했을때 제후의 사신이 아니라 임금의 사신으로 대접받았고, 고려 역시 이들의 사신을 맞이할때 황명을 받드는 형식이 아니라 이웃나라의 사절로 맞이했다. 그랬다고 저 나라들이 건방지다고 부르르 했던 기록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황제를 칭하는 것이 고려만의 특징도 아니었다. 고구려도, 신라도, 발해도 모두 황제의 나라였다. 신라는 멸망하는 그날까지 당나라가 아닌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다. 이건 광종이후 고려도 안하던 짓이다. 신라가 독자적인 연호를 쓰고 황제를 칭했다고 당나라가 분노의 응징을 하거나 하지 않았(못했)다.

하지만 고려거란 1차전쟁 이후 서희가 소손녕과 딜을 한 이후에는 명목상 거란의 책봉을 받는 것으로 했다. 그리하여 성종 이후 경종, 목종은 모두 거란의 책봉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사후 추인에 가깝다. 군신관계를 맺지도 않았고 다만 서열 정리만 했을 뿐이다. 말하자면 형님 나라 수준으로.

고려가 황제나라에서 왕의 나라로 격하된 것은 사실상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운 이후부터다. 고려가 제국을 자처할 수 있었던 것은 명목상의 번국이 있었기 때문인데 여진의 여러 부족들이 바로 고려를 섬기는 번국의 위상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여진이 통일해서 나라를 세워버렸으니 고려는 번국없는 제국, 사실상 제국 아닌 나라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탐라국이 번국으로 남아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워 황제를 자처하고 심지어 송나라까지 무너뜨리면서 고려는 어제의 번국을 오히려 대국으로 섬겨야할 처지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황제국의 지위는 사실상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몽골에게 지배당하면서 이후 기나긴 제후국의 역사가 시작된다. 폐하가 전하로, 태자가 세자로, 상서가 판서로, 줄줄이 줄줄이 호칭이 깎여 내려갔고, 공작, 후작, 백작은 사라졌고 대군, 부원군, 군으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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