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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Apr 18. 2024

 너무 어려운 고려 황실의 족보

고려 거란 전쟁 이야기 (4)

고려 역사, 특히 고려 초기 역사를 볼때 머리에 쥐가 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너무도 복잡한 왕실의 족보다. 이 복잡한 왕실 족보는 중기 이후에는 좀 진정이 된다. 고려 초기 왕실 족보를 복잡하게 만든 원인인 너무 많은 왕자들이 광종 덕분에(?) 정리 되었기 때문이다. 

고려 왕실 계보를 엉망으로 만든 원인은 둘이다. 

1) 태조 왕건의 엄청난 자녀들. 왕건은 호족들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여러 유력 가문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무려 29명이나 되는 부인을 두었고, 그들 사이에서 25남 9녀라는 어마어마한 자녀를 낳았다. 

2) 당시 신분 높은 집안에서 널리 행해지던 근친혼. 오늘날 기준으로 보지 말자. 당시 고귀한 집안에서는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족내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라시대에 이미 사촌간의 결혼은 흔한 일이었고 이복 남매간의 결혼도 가능했다. 4촌 이내의 근친혼이 금지된 것은 고려 후기로 한참 넘어가 성리학에 심취한 선비 군주인 충선왕때의 일이다.  

1)과 2)가 만나면? 왕건의 자녀들은 다 나름 유력한 호족가문을 외가로 두고 있다. 따라서 이 자녀들끼리의 혼인은 호족가문들간의 강력한 동맹을 의미한다. 따라서 비정상적이지만 이복남매간은 물론 숙질간에도 혼인이 이루어졌다.

이복 남매가 황제와 황후가 된 사례는 4대 광종때 현실이 되었다. 광종이 누이인 대목황후와 혼인하여 5대 경종을 낳은 것이다. 그러니까 경종에게는 대목황후가 어머니인 동시에 고모가 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족보가 엉킨다. 정신 바짝 차리자. 

왕건의 7번째인지 8번째인지 아들인 왕자가 왕욱이다. 광종의 부인인 대목황후와 친남매로 성종의 아버지가 되기 때문에 나중에 대종으로 추존되었다. 그 왕욱과 사이에서 성종과 두 공주(훗날 헌애황후, 헌정황후가 됨)를 낳은 부인은 어머니가 다른 누이인 선의황후다. 아무리 근친혼의 나라 고려지만 이렇게 이복 남매간에 결혼하는 것은 껄끄러웠는지 이런 경우에는 공주가 외가의 성을 따르면서 눈가리고 아웅했다. 광종의 부인은 성을 왕씨에서 황보로 바꾸었고, 대종의 부인은 왕씨에서 류씨로 바꾸었지만, 그런다고 왕씨 남매간의 근친혼이 어디 가나?

성종의 전임자이자 대종의 배다른 형이 경종이다. 그런데 경종은 성종의 두 누이와 혼인하였고 이들을 황후로 책봉하였다. 이들이 헌애황후, 헌정황후다. 그런데 이들은 황후 3호 4호다. 그럼 1호 2호는? 각각 외사촌과 친사촌이다. 이렇게 경종은 4촌 넷을 아내로 삼았고 이 중 헌애황후(바로 천추태후)와의 사이에서 아들이자 조카가 되는(ㅋㅋ) 목종을 낳은 뒤 스물 여섯에 요절했다. 

목종이 너무 어렸기 때문에 결국 왕위는 사촌인 성종에게 넘어갔다. 성종 역시 근친혼을 했는데 광종의 딸을 아내로 취하여 문덕황후로 책봉했다. 이 정도는 사촌간의 혼인이니 그냥 넘어가자. 그리고 성종과 그 사촌 사이에서 태어난 두 딸은 나중에 당숙이자 사촌인(?) 현종의 부인이 된다. 

간단히 말하면 왕건이 워낙 많은 어머니가 서로 다른 아들과 딸들을 낳았고, 그래서 이 이복 남매들끼리 서로 혼인하여 손자, 손녀들을 낳았고, 그런데 이 손자 손녀들끼리 막 혼인하고, 이런 상황이다. 그러니 서로 형제자매간인지 사촌간인지 뭔지 족보 따지기도 곤란하다. 

이 무렵 고려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일어났다. 죽은 경종의 두 부인 중 하나인 헌정황후, 즉 성종의 누이가 왕건의 아들 중 하나, 즉 헌정황후와 성종에게는 숙부인 왕옥과 불륜 관계를 맺고 사생아까지 임신한 것이다. 아무리 족내 근친혼이 허용되는 사회라 해도 족내 근친 불륜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왕옥은 유배가는 신세가 되고, 헌정황후는 일단 근신한 상태에서 출산하는데, 산후 후유증으로 그만 사망하고 만다. 유배간 왕옥도 결국 사망하였기 때문에 태어난 아기는 그만 고아가 되는데, 이 사람이 바로 부계로는 왕건의 손자이면서 모계로는 증손자이기도 한(커헉! 이게 뭐냐?), 또 성종과 천추태후에게는 조카이면서 동시에 사촌이기도 한(어허!), 또 목종에게는 사촌이면서 동시에 당숙이 되는  대량원군이다. 

성종은 아들 없이 딸만 셋 남기고 죽었고, 그리하여 왕위는 경종의 아들인 목종에게 넘어간다. 목종은 성종의 딸 신정황후와 결혼하여 족내혼을 더 든든하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스캔들이 터진다. 목종의 어머니인 헌애황후(천추태후)는 상서우복야(요즘으로 치면 부총리 쯤 된다. 고려의 총리는 문하시중과 상서령이지만 상서령은 실제로 임명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 차석인 좌우복야 문하시중과 함께 3재상 체제를 이루었다) 김치양과 아주 대 놓고 열애를 즐기면서 아들까지 덜컥 낳았다. 당시에는 모계의 성을 따르는 일도 흔했기 때문에 이 아들을 김현이 아니라 왕현이라 명명했는데, 이게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이렇게 근친혼을 마구 하다보니 번식력이 매우 취약해지고, 또 광종이 왕족을 여럿 숙청하며 때려 잡은 바람에  왕건이 왕자를 25명이나 남겼지만 왕건의 직계 후손이라고는 증손자대에 이르러서는 꼴랑 목종, 그리고 저 증손자이자 손자인 대량원군, 그리고 어쨋든 모계로 증손자인 왕현만 남은 것이다. 

더구나 목종은 동성애자로 추정되며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 따라서 목종 다음의 왕위는 왕건의 손자이자 증손자, 목종의 사촌동생이자 어이없게도 5촌 당숙이 되는 대량원군 외에는 이을 사람이 없게 되었다. 

김치양은 대량원군만 사라지면 자기 아들이 어거지로라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다고 믿고 천추태후를 부추겨 계속 대량원군의 암살을 기도하지만,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 그런지 대량원군은 쉽게 죽지 않고 결국 살아남아 고려에서 가장 오래 재위한 임금인 현종이 된다.  이 과정에서 일이 복잡하게 꼬이면서 일어난 사건이 강조의 쿠데타인데 이건 다음 편에서 따로 다루기로 한다.

황제가 된 현종은 성종의 두 딸을 황후로 취하는데 성종은 현종에게 외삼촌이 되니 이 황후들은 사촌이지만 동시에 성종은 현종의 사촌이기도 하니 이 황후들은 조카이기도 하다. 아이고 머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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