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쉽게 클릭질 유발하는 기사거리 뭐 없을까 유혹을 느끼는 기자에게 일본은 언제나 좋은 소재다. 언제나 일정 수준 이상의 클릭질을 보장할 뿐 아니라기사쓰기도 쉽다. 일본에 대한 기사는 모로 가든 바로 가든 다음 둘 중 하나로 결론을 유도하기만 하면 기본적인 흥행은 보장받으며 운 좋으면 대박도 기대할 수 있다.
1.일본은 한국을 혐오한다. 반성하지 않는다. 용서할 수 없다.
2. 일본은 후졌다. 우리보다 뒤떨어졌다. 얼레리 꼴레리 으쓱으쓱.
2019년 까지는 1번 기사가 많았는데,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국뽕이 팽창하자 2번 기사가 부쩍 늘어났다. 심지어 2번 기사는 일본 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까지 확대되었다. 희한하게 중국에 대해서는 사드 국면에서도 코로나 국면에서도 별로 나오지 않는다.
최근 닛산 자동차가 한국시장에서 철수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이런 식의 기사가 난무한다. 심지어 “불매운동 우습게 봤다 큰 코 다쳤지 이놈들아!” 이런 식의 기사까지 있다. 실제로 르노-닛산-미쓰비시가 우리나라 현대-기아차 처럼 기업 연맹을 이루고 있고, 최근 코로나 국면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척 한다.
일본 관련한 가장 어이없는 기사는 아마 다음의 기사일 것이다. 시간이 좀 지났지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서 중요하게 사용될 수 있는 사례이기 때문에 공유해 본다. 내용보다 제목이 문제다.
https://www.google.co.kr/amp/s/amp.seoul.co.kr/www/20200417500189
제목이 풍기는 뉘앙스 대로라면 마치 일본은 인터넷 환경이 워낙 열악해서 온라인 수업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나라처럼 보인다. 학생들은 학교에 모아 놓고, 수업을 모니터로 단체 관람하며 이걸 ‘온라인 수업’이라고 부르다니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 기사가 나올 무렵 한창 우리나라 교사들을 갈아넣어 기적적으로 온라인 수업을 정착시켰기 때문에 일본과 비교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대중 정서에도 들어맞는 그런 아이템이다.
실제 내용은 제목과 전혀 다르다. 코로나가 확산되어 원래 계획했던 학교가 교과서 분배와원격 수업 안내를 위해 약식으로 개학식만 하고아이들을 집으로 돌려 보냈다는 것이 전부다. 그 개학식을 강당에 모여서 하는 대신 각자 교실에서 방송으로 진행했는데, 여기서 학교장의 훈화가 이어진 모양이다. 일본 언론은 그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온라인 개학"이라고 불렀지만,정확히 말하면 "온라인 개학식"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사 내용은 보지 않는다. 제목과 사진만 본다. 그게 바로 이 사진이다. 그런데 이 사진속 모니터에 나오는 사람은 교사가 아니라 교장이다. 하지만 슬쩍 보는 사람들에게는 이게 교장 훈화가 아니라 마치 수업을 하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독자들의 반응은 우스워 죽겠다, 황당하다는 등이었다. 아니 이런 신박한 온라인 개학이라니, 이걸 온라인 수업이라고 하냐, 그러며 일본을 비웃고 조롱하는 용도로 널리 공유되었다. 심지어 일본은 선생들은 코로나가 무서워서 피하고 애들만 한 군데 모아 놓고 저따위 온라인 수업을 한다.비겁하다, 역시 쪽바리다 이런 식의 반응도 줄을 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상황이다. 아이들만 모아놓고 선생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싣지 않은 또 다른 사진이 있다. 교실 뒤에서 정면의 모니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교실 측면에서 찍은 사진.
사진의 각도를 바꾸자,앞의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던 사람이 보인다. 바로 선생님의 모습이. 그제서야 이 장면이 우리에게도 그렇게 낯설지 않은 상황이라는 걸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교장 훈화라거나 혹은 성폭력 예방 교육, 흡연 예방 교육, 이런거 할때 방송실에서 강사가 수업 진행하고 학생들은 그걸 방송으로 보면서 선생님이 임장지도하는 모습. 정상적으로 학교 다닌 사람이라면 수없이 경험했을 바로 그 장면이다. 결국 일본이나 우리나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여기서 얻어야 할 교훈은 딱 한줄이다.
뭔가 상식적으로 이상하다는 느낌이 드는 언론 기사가 있으면 반드시 크로스 체크 해라. 각도를 달리 해서 봐라. 특히 그 기사가 일본에 대한 것이라면.
만약 80년대였다면 북한과 관련된 기사를 여러번 크로스 체크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2010년 이후에는 일본이 80년대의 북한을 대신하고 있는 것 같다. 돌려 보라. 다시 보라. 그리고 사이다를 조심하라.
그런데 왜 일본에 대해서만, -일본 못지 않게 우리에게 해악을 많이 끼치고 모욕도 많이 가한 중국에 대해서는 거의 없는데- 이런 종류의 기사가 양산되는 것일까? 역설적으로 그만큼 우리가 일본의 시선을 신경쓰기 때문이 아닐까? 중국에 대한 기사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 역시중국을 좋아하거나 두려워해서가 아니다. 중국인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을 비난하는 기사, 조롱하는 기사가 계속 나오는 것, 그리고 그런 기사를 꼼꼼히 살펴보는 대신 조건반사처럼 반응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일본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반증이 되는 셈이다.
일본이든, 미국이든, 유럽이든, 외부의 시선과 평가를 통해 우리의 현실과 역량을 가늠하려는 무의식적인 성향을 직면하고 극복할 필요가 있다. 우리 나라의 여러 사회 지표를 평가하는 주체는 우리 자신이며, 오직 우리 스스로의 행복과 불행을 통해 평가해야 한다. 일본, 미국, 유럽과의 비교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