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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1987년 2부 여름 5화 성진1

by 권재원

성진은 교문을 나와 도림천을 따라 15분 정도 걸었다. 이름만 들으면 강남구에 있는 학교로 착각하기 쉬운 삼성고등학교가 나왔다. 그 옆을 지나면 녹두거리로 이어지는 골목길이 있다.

골목길에서 다시 10분쯤 걸어가자 목판화를 본딴 유치한 그림이 그려진 간판이 하나 나타났다. 간판에 적힌 글자 역시 그림 못지 않게 유치했다.

‘학사주점,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름 한 번 고약했다. 이름만 보면 마치 얼마 안가 폐업 예정인 주점 같았다. 혹은 이런데 다니면서 술을 퍼마시면 네 몸뚱이가 오래 못 갈 것이라는 경고처럼 보이기도 했다. 담배갑에 써 있는 폐암 경고문구처럼.

물론 진은 이게 박노해의 시 ‘노동의 새벽’에 나오는 한 토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은 마음 속으로 그 처절한 시를 조용히 읊어 보았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줏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진은 이 시를 좋아했다. 메시지가 너무 애매하고 마무리가 작위적이라는 느낌은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진의 생각에 이 시를 지배하는 정서는 슬픔과 분노라는 두 단어에 압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모호했다. 무엇에 대한 슬픔이며 누구에 대한 분노일까? 지옥 같은 노동에 대한 슬픔과 분노? 지옥 같은 노동을 하게 만드는 가난에 대한 슬픔과 분노? 이도 저도 아니면 노동이라는 중요한 행위가 이렇게 지옥같이 되어버린 조건에 대한 슬픔과 분노?

희망과 단결도 그렇다. 무엇에 대한 희망과 단결일까? 노동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대한 희망과 단결? 노동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런 세상에 대한 희망과 단결? 노동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희망과 단결?

소주의 비유도 모호했다. 소주는 시의 앞 부분에서는 쓰라린 가슴을 달래지만 실제로는 더 쓰라리게 만드는 필요악이었다. 그렇다면 희망과 단결을 위해서는 소줏잔을 집어 던져야 마땅하다. 소주를 마시면 마실수록 자본을 살찌우고, 스스로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어 희망과 단결을 어렵게 만들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노동자의 새벽이 밝아 올때 까지 계속 소주를 마시겠단다. 제 정신인가?

진은 그만 따지기로 했다. 어쨌거나 시라고 할 만한 것이 드문 한국에서 그래도 읊을 가치가 있는 몇 안되는 작품 중 하니니까.

시는 그렇다 쳐도 주점만큼은 문제가 심각했다. 이 훌륭한 시에서 하필 골라잡은 문구가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였으니 말이다. ‘설은 세 그릇 짬밥’이라거나 ‘노동의 새벽’이라거나 하여간 적당한 구절들이 있었을텐데 왜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이름만 문제가 아니었다. 여러 이유로 이 주점은 이름 그대로 정말 오래 못 갈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위치부터 틀려 먹었다. 학생들 동선을 교묘하게 비켜가는 외진 곳이다. 그렇다면 간판이라도 사람을 끌어야 할텐데 저렇게 유치 찬란하다. 심지어 직원은 불친절하고, 안주는 맛이 없다. 한 마디로 도무지 갈 마음이 안 생기는 그런 주점이다.

이미 학생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경찰 프락치가 정보 수집을 위해 운영하는 주점이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안 그래도 손님 없는데 프락치 소문까지 나니 손님이 더 줄어들고, 이렇게 손님이 없는데도 안 망하고 있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공작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라는 소문이 강화되고, 그래서 손님이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성진도 웬만하면 발을 들이지 않는 곳이었다. 하필 왜 이런 곳이 약속장소인지 모르겠다. 학생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이니 오히려 비밀 모임 하기에 더 좋은 곳이라 그랬을 가능성이 컸다.

일단 장소는 확인했고, 시간은? 시계를 보니 약속 시간까지 두 시간 가량 남아 있었다. 뭘 하며 이 시간을 죽일까?

저렴한 비용으로 가장 긴 시간을 죽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하나는 만화가게. 상호가 무려 ‘집현전’이었다.

다른 하나는 전자오락실. 상호는 ‘컴퓨터 휴게실-두뇌계발’이었다.

진은 전자오락실을 선택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요란한 전자음향과 자욱한 담배연기로 가득한 공간이 펼쳐졌다. 이곳에 오래 머물다간 두뇌계발이 아니라 두뇌마비 나아가 두뇌부패가 일어날 것 같은 그런 공간이었다. 하지만 진의 목적은 시간 죽이기지 두뇌계발이 아니니 어차피 상관 없는 일이었다.

진은 고등학교시절, 아니 검정고시생 시절 장기 종목이었던 ‘1943’ 기기 앞에 앉았다. NL 운동권 학생들이 ‘항일 무장투쟁’이라 부르며 즐기는 게임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일본회사에서 만들어 배포한 게임이다.

진은 이 게임과 관련한 일본인의 마인드를 이해할수 없었다. 아무리 미국 시장을 노리고 만든 게임이라도, 자기 나라 비행기를 마구 격추시키는 게임을 만들다니. 더구나 그냥 게임이 아니라 걸작이기 까지 했다. 좌우로만 움직이던 비행슈팅 게임을 2차원 공간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플레이 하게 만들고 부분부분 3차원 이동까지 할 수 있게 만든 것은 참으로 놀라운 혁신이었다.

대체 무엇이 일본 개발자들로 하여금 이렇게 자기네 비행기를 격추하는 게임에 온 힘을 다 하게 만들었을까? 이런 식으로 군국주의 시절에 대한 강렬한 반대를 표시한 것일까? 아니면 그야말로 경제적 동물이라 돈만 된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서일까?

독일 같으면 아무리 나치 시절에 대한 반감이 강하더라도 미군 시점에서 독일군을 마구 살상하는 슈팅게임, 영국군 시점에서 독일 공군을 마구 격추하는 비행게임 같은 것은 발매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한국인 입장에서는 단 돈 50원으로 일본 제국주의 전투기를 마구 격추하고 군함들을 침몰시키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니 대 환영이었다.

진은 50원을 투입하고 즉시 강력한 항일 무장투쟁에 나섰다. 전장은 미드웨이. 마침내 기함 야마토까지 격침시키고 나니 무려 370만점이라는 엄청난 점수가 나왔다. 아깝게 이 기기의 최고 득점은 갱신하지 못했지만 두번째 고득점자에 랭크 되었다. 한 시간 넘도록 플레이 했다는 뜻이다.

자리에서 일어서자 눈알이 뱅글뱅글 돌고 뒷골이 띵했다. 시간은 많이 죽였지만 시간과 함께 진의 신체도 일부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죽은 신체의 일부 중에는 재생이 안되는 대뇌의 뉴런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전자오락이라는 것이 그렇다. 하고 나면 늘 후회하지만, 시간 남으면 꼭 하게 된다. 진은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인간은 이렇게 유한한 시간을 허비하고, 그것에 대해 후회하며 시간을 더 허비하고, 이런 일을 반복하며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존재다.

죽음은 무엇일까? 시간을 0으로 만들거나 무한대로 만드는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언제나 인간을 불안에 떨게 만들며, 인간은 시간이 0이 될 것이라는 불안 때문에 엉뚱하게도 유한한 시간을 낭비하는 행동에 빠져 든다. 인생 자체가 이런 파라덕스다.

진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전자오락 따위 하면서 인생의 패러덕스라니.

학생운동도 그랬다. 진은 학생운동에 대해 별로 기대하는 것이 없었다. 대학 들어오기 전에 충분히 했다. 고등학생때 대학교 운동권 학생들과 연결망을 만들었고, 당시 다니던 J고등학교는 물론 가톨릭 학생회를 중심으로 많은 고등학생들과 연대하여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목소리를 퍼뜨리는 활동을 했다.

어른들은 고등학생이 운동권이 되었다고 하면 누군가의 영향을 받거나 포섭되거나 배후조종 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진은 독일에서 귀국할 때 이미 학생운동을 하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진은 고등학교에 배우러 들어간 것이 아니라 알리러 들어갔다. 대학 입시에 필요한 공부 따위는 굳이 배울 필요도 없었다. 자습서, 문제집 사다 놓고 혼자 해도 충분했다. 이는 자퇴한 이후 결국 검정고시와 자습을 통해 서울대학에 들어온 것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서울대학을 목표로 공부했던 이유 역시 학생운동 때문이었다. 서울대학은 학생운동의 중심일 뿐 아니라 장차 여론을 주도할 사람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판단했다. 서울대학생 한 명을 깨우치면 노력 대비 성과가 아주 크다. 진은 학생이라서 학생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하기 위해 학생이 되었다. 이미 국제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했기에 음악대학을 굳이 다닐 이유가 없는 정우도 뜻을 같이했다. 그런 점에서 이 역시 엄청난 패러덕스다.

진은 목적전치라는 비난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어차피 물구나무 선 세상이다. 물구나무 선 세상에서 거꾸로 서지 않으면 바로 볼 수 없다. 그러니 이 전치현상은 전치가 아니다. 거꾸로가 똑바로인 세상. 그야말로 패러덕스로 가득한 세상이다. 학생운동은 이 뒤집힌 세상이 만들어낸 일종의 패러덕스다.

패러덕스에 빠진 사람은 영혼을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장소를 찾기 마련이다. 당장 갈 수 없더라도 그곳에만 가면 안전해 질 것이라 믿고 꿈꾸는 곳, 그곳이 바로 고향이다.

성진의 고향은 독일, 정확히 말하면 독일 연방공화국, 즉 서독에 있는 트리어라는 작은 도시다. 인구 10만명 정도 되는 도시니 한국으로 치면 정읍 정도 되는 시골 겨우 면한 도시다.

진은 이 곳에서 김나지움 5학년, 한국 식으로 계산하면 중학교 3학년 때 까지 공부했다. 하지만 진의 아버지, 어머니는 모두 민족 정체성에 대해 큰 의미를 두었기 때문에 한국어를 먼저 독일어를 나중에 가르쳤다.

덕분에 진은 교포 출신이라는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한국어 보다는 독일어를 더 잘 구사하며, 덤으로 영어, 프랑스어도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었다. 한자를 많이 아는 덕분에 일본어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트리어에서 룩셈부르크 국경 까지는 불과 13킬로미터. 자전거를 사방사방 달려도 한시간이면 충분했다. 시간은 언제나 넉넉했다. 진은 매주 금요일이면 집에서 점심 도시락을 싸서 룩셈부르크의 작은 도시 바서빌리히 까지 자전거로 달렸다.

사실 외국이라 해도 독일이나 룩셈부르크나, 트리어나 바서빌리히나 다 거기서 거기였기 때문에 실감은 나지 않았다. 어디나 평화롭고 느긋했고 공기에는 자유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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