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그래도 찜찜한 게, 예진은 결국 38억 자산가잖아요? 꼼꼼한 성격상 아무래도 좀 줄여서 말하는 느낌이라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거예요. 위례 신도시 아파트로 반지하 살던 가족들을 옮기고, 은퇴 후에도 연간 3~4억씩 광고료 받고, 그 중에 수천만원을 뷰티에 쓰죠. 반면 세상에는 진짜 가난해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부유한 피해자의 고통을 이렇게 강조하는 게 다른 피해를 희석시키는 건 아닐까요?
작가: (진지하게) 정말 중요한 윤리적 질문이고, 쓰는 내내 고민했던 지점이에요.
먼저 명확히 하고 싶은 건, 저는 절대로 경제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등가로 놓지 않았어요. 예진이 벌어들인 돈은 분명 특권이고, 그 돈 덕분에 심리 치료도 받고 회복할 수 있었죠. 가난한 피해자는 치료받을 돈조차 없어요.
하지만 동시에, "돈 많이 벌었으니 닥쳐"라는 논리는 또 다른 폭력이에요. 이건 마치 “명문대 나왔으니까 우울증 걸릴 자격 없어”, “예쁘니까 성폭력 피해자 코스프레 하지 마” 같은 논리와 같아요.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그렇게 많이 번 사람조차 인간 취급 못 받았다는 게 시스템의 잔혹함을 증명하는 거죠.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 돈이 결코 많은 돈이 아니에요. 6년간 하루 16시간 일하고, 몸과 정신을 갈아 넣고, 평생 남을 트라우마를 안고, 청춘 전체를 바친 대가로요. 시급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게다가 회사가 가져간 몫까지 생각하면, 예진이 창출한 실제 가치는 수백억대예요.
마지막으로, 예진은 자기 특권을 인지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니 아트’를 세워 후배들을 보호하잖아요. 자신이 번 돈과 얻은 권력을 다시 구조 변화에 쓰는 거죠. 이게 제가 바라는 특권자의 윤리적 책임이에요.
� 질문 21: 권오석과 예니도 엘리트 아닌가요?
독자: 유노이아만이 아니라 권오석 선생님도 서울대 출신에, 박사에, 작가에, 33년 교직 경력에 명예퇴직하면 연금 받고, 보아하니 자산도 수십억이고, 부인은 약사, 딸 예니는 첼로 신동에 '클래식 아이돌’이고. 솔직히 등장인물 전부가 사회경제적 상위층이에요. 이게 보편적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작가: (웃으며) 정곡을 찌르셨네요. 네, 맞아요. 이 소설의 모든 주요 인물은 어떤 형태로든 엘리트예요. 그리고 이건 의도이기도 하고 제 한계이기도 해요.
저는 두 가지를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첫째, 엘리트주의의 허구성. 권오석은 "클래식은 고급 예술, K-pop은 저급 오락"이라는 위계를 믿어요. 예니의 첼로는 예술이고 예진의 춤은 장사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소설이 진행되면서 그 경계가 무너져요.
예니는 클래식의 틀에 갇혀 숨도 못 쉬어요. 예진은 K-pop으로 세월호를 추모하고 사회를 비판해요. '도나 노비스 파쳄’에서 두 장르가 만나 진짜 예술이 탄생하죠.
엘리트 문화 vs 대중문화, 순수예술 vs 상업예술이라는 위계 자체가 허구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둘째, 엘리트라고 착취 안 당하지 않는다. 예진이 S외고 출신 서강대생이라고 해서 덜 착취당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엘리트돌’이라는 이미지가 또 다른 감옥이 됐죠. “너는 머리 좋으니까 이해하겠지”, “너는 계약서 읽었으니까 동의한 거지” 같은 논리로요. 예니 역시 첼로 신동이라는 타이틀이 족쇄가 됐어요. "디누의 딸들은 이래야 한다"는 기대가 그녀를 옭아맸죠.
계급이 높다고 고통이 면제되는 건 아니에요. 다만 고통의 양상이 다를 뿐이죠.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 소설의 일차적 타깃 독자는 바로 이 계층이에요. 자녀를 명문대 보내고, 클래식 교육시키고, “아이돌 따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중산층 부모들. 권오석 같은 기성세대 교육자들.
그들의 편견을 깨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로 말해야 해요. 그래서 권오석을 화자로, 예니를 거울로, 예진을 교량으로 삼은 거죠.
� 질문 22: 진짜 밑바닥 이야기는 왜 없나요?
독자: 그래도 아쉬운 게, 소설에는 10년째 연습생인데 데뷔 못하는 아이, 빚만 수천만 원 쌓인 무명 아이돌, 지방에서 올라와 사기 기획사에 속은 소녀 같은 진짜 밑바닥 이야기가 없어요. 세라가 유일하게 그런 캐릭터였는데, 이미 죽어서 등장하잖아요. 왜 생생한 하층 서사는 배제하셨나요?
작가: (깊게 숨을 들이쉬며) 이 질문이 제일 아프네요. 왜냐면 제가 의도적으로 배제했거든요.
이유는 세 가지예요:
첫째, 재현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 무명 연습생의 처참한 삶을 세밀하게 그리는 건, 그들의 고통을 또다시 소비하는 행위가 될 수 있어요. 특히 작가인 제가 그 경험을 직접 해본 적이 없다면요.
세라를 이미 죽은 존재로 등장시킨 건 바로 이 때문이에요. 그녀의 죽음을 통해 구조의 잔혹함을 보여주되, 그녀의 고통 자체를 '재현’하지는 않는 거죠. 부재를 통한 증언이라고 할까요.
둘째, 독자의 방어 기제를 무력화하기 위해. 솔직히 말씀드리면, 무명 아이돌의 이야기는 독자가 쉽게 외면해요. “재능이 없었나 보지”, “노력이 부족했겠지”, “운이 없었네” 같은 개인 책임론으로 넘어가기 쉽거든요. 재미도 없고요.
하지만 모든 걸 다 이룬 유노이아조차 불행했다면? 그럼 더 이상 개인 탓을 할 수 없어요. 문제가 시스템에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죠.
셋째, 생존자의 증언이 더 강력하니까. 데뷔 못 한 연습생은 증언할 플랫폼이 없어요. 무명 아이돌의 목소리는 묻혀요. 하지만 탑 아이돌의 증언은 뉴스가 되고, 법이 바뀌고, 구조가 흔들려요.
예진이 '지니 아트’를 세우고 루미나를 만들 수 있는 건 그녀가 권력(돈, 명성, 인맥)을 얻었기 때문이에요. 변화는 위에서부터 시작되기도 해요. 그렇다고 제가 하층의 이야기가 덜 중요하다는 건 절대 아니에요. 다만 이 소설의 전략이 위에서부터 무너뜨리기였던 거죠. 다음 작품에서는 다른 접근을 시도할 계획이에요.
� 질문 23: 엘리트 서사가 연대를 가로막지 않나요?
독자: 제 우려는 이거예요. 이 소설을 읽은 중산층 독자들이 “아, 성공한 아이돌도 불쌍하구나” 하고 동정하다가, 정작 진짜 위기에 처한 무명 아이돌, 연습생, 성착취 피해자들에게는 관심을 접어버리는 것. 엘리트의 고통이 약자의 고통을 가려버리는 거 아닐까요?
작가: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맞아요. 엘리트 페미니즘의 함정이라고 하죠. 유리천장 깬 여성 CEO 이야기는 많이 나오는데, 정작 최저임금도 못 받는 여성 노동자 이야기는 안 나오는 것처럼요.
그래서 저는 소설 안에 계급적 균열을 의도적으로 넣었어요:
예진과 가족의 갈등 예진이 38억을 모았다는 걸 가족이 알면서도 "네 명의로만 돼 있다"며 불만을 품는 장면이 나와요. 예진은 가족을 가난에서 구했지만, 그 돈은 예진 혼자 몸과 정신을 갈아 넣어 번 것이에요. 이 갈등은 바로 “누가 피해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요. 가족 입장에서는 예진이 부자고 자기들은 가난해요. 하지만 예진 입장에서는 자기가 번 돈을 당연히 요구받는 게 억울하죠.
'지니 아트’는 내가 번 특권을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예요. 그녀는 돈을 쌓아두거나 사치에 쓰거나 혹은 가족을 위해 쓰는 대신, 후배들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만들죠.
이게 제가 제시하는 답이에요: 엘리트의 연대 책임. 성공한 사람이 사다리를 걷어차는 게 아니라, 그 사다리를 더 튼튼하게 만들고 더 많은 사람을 끌어올리는 것.
� 질문 24: 그렇다면 보통 사람은 어떻게 하나요?
독자: 예진은 38억이 있으니까 기획사를 차리죠. 예니는 클래식 신동이니까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고요. 그런데 돈도 없고 재능도 평범한 보통 사람이 이 소설에서 뭘 배울 수 있나요? 엘리트만의 자기계발서 같다는 느낌도 드는데요.
작가: (잠시 멈칫하다가) 솔직히… 제일 아픈 질문이네요.
맞아요. 예진은 돈이 있어서, 예니는 재능이 있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요. 보통 사람에게는 그런 자원이 없죠. 하지만 이 소설이 진짜 말하고 싶은 건 개인의 구원이 아니에요. 오히려 “아무리 성공해도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 이 말입니다.
예진이 루미나를 만들었다고 해서 K-pop 산업 전체가 바뀌나요? 아니에요. 여전히 수많은 기획사가 연습생을 착취하고, 팬들은 악플을 달고, 투자자들은 소녀들을 품평하죠. 개인의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집단적 행동의 필요성을 말하고 싶었어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것까지는 고민 못해봤어요. 이 작품은 사회고발물이 아니거든요. 이 작품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여성 아이돌의 고통과 그것을 극복하는 내면의 이야기입니다.
� 질문 25: 권오석의 계급적 시선
독자: 권오석 선생님이 처음에 아이돌을 "기생"이라고 생각한 것도 결국 계급적 편견 아닌가요? 자기 딸은 ‘고급 예술’ 첼리스트고, 제자는 '천한 연예인’이라는. 그런데 소설은 그 편견을 비판하면서도, 결국 예진도 S외고 출신 엘리트라는 걸 강조하잖아요. 이게 모순 아닌가요?
작가: (진지하게) 정말 예리한 독해세요. 권오석의 편견은 분명 계급적이에요. 그는 클래식 > K-pop, 대학 > 연예계, 교육 > 오락이라는 위계를 믿죠.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가 예진을 다시 보게 되는 순간이 S외고 출신 서강대생이라는 걸 상기할 때라는 거예요. 즉, “너도 우리 편이었잖아”라는 계급적 동질감이 그녀를 '구제 가능한 피해자’로 만드는 거죠.
이건 명백히 문제예요. 하지만 현실이기도 해요. 솔직히 말하면, 학력이나 집안 배경 없는 아이돌이 똑같은 증언을 하면 권오석 같은 사람들은 안 들어요. “공부 안 하고 쉬운 길 택하더니”, “노는 거 좋아하더니 그럴 줄 알았다” 같은 반응이 나오죠.
하지만 “S외고 나온 애가 왜 아이돌을?”이라는 질문이 생기면, 비로소 듣기 시작해요. “재능도 머리도 있는 애가 그쪽을 택했다면 뭔가 이유가 있겠지”, “그런 애도 저렇게 당했다면 문제가 심각하구나” 하고요.
저는 이 계급적 편견을 활용해서 편견을 깨뜨리는 전략을 택한 거예요. 일종의 트로이 목마죠. 궁극적으로는 학력이나 배경과 무관하게 모든 아이돌이 존중받아야 해요. 하지만 그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일단 권오석(그리고 그와 유사한 독자들)의 문을 여는 열쇠로 예진의 엘리트 배경을 썼어요.
이게 이상적인가요? 아니에요. 하지만 현실에서 작동하는 방식이에요. 그리고 일단 문이 열리면, 그다음부터는 진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 질문 26: 성공의 기준 - 돈 vs 존엄
독자: 예진의 딜레마를 이해는 하는데요, 솔직히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6년 일하고 그 정도 벌었으면, 그 정도 착취는 감수할 만한 거 아냐?” 실제로 청춘을 파는 직업은 많잖아요. 운동선수, 모델, 군인… 왜 유독 아이돌만 문제인가요?
작가: 일단 명확히 할 게, 저는 “청춘을 파는 직업”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에요. 문제는 선택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가?와 대가가 정당한가입니다.
운동선수도 비슷한 문제가 있지만, 적어도 다른 길(일반 대학, 직업)을 택할 선택지가 더 넓어요. 아이돌은 10대 초반에 선택해야 하고,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어려운 구조예요.
대가도 그래요. 25억이 많다고요? 소설 속에서 유노이아가 창출한 실제 가치를 계산해 보세요:
음원, 콘서트, 광고, 굿즈 매출 합치면 수백억이에요
정산 비율이 순이익의6:4에요. 매출을 기준으로 계산하면9:1도 넘을 겁니다. 게다가 유노이아의 살인적인 스케쥴은 어떻고요? 거의 잠자는 시간 외에는 모두 통제당하고 있죠. 그러니 6년 = 2,190일 × 16시간 = 35,040시간 노동입니다. 이걸 25억에 나누면 시급 약 7만 원 정도입니다. 그나마 탑 아이돌이 이 정도예요. 중하위권은 최저임금도 안 돼요.
게다가 운동선수는 경기 끝나면 사생활이 있어요. 군인은 전역하면 끝이에요. 하지만 아이돌은 24시간 감시당하고 은퇴 후에도 과거 영상이 디지털 성범죄에 이용돼고 악플과 루머가 평생 따라다녀요. 돈과 존엄은 교환 불가능해요. 아무리 많이 줘도 인간을 상품으로 취급할 권리는 없는 거죠.
� 질문 27: 작가의 계급적 위치
독자: 좀 불편한 질문인데요. 작가님 본인은 어떤 배경이신가요? 이렇게 엘리트 서사를 쓰신 걸 보면, 작가님 자신도 비슷한 계층 아닌가요? 그렇다면 이건 결국 특권층이 특권층 이야기를 쓴 것 아닌가요?
작가: (긴 침묵 후) 네, 맞아요. 저도 특권층이에요. 초중 고등학교를 모두 강남에서 다녔고 서울대에서 학부, 석박사 모두 마쳤고, 결혼할 때 부터 세를 살아 본 적 없고, 대출을 받을 필요도 없이 살았어요.
가난 때문은 물론 능력 때문에도 시달려 본 적이 없어요. 재수없게 들리지만 서울대 들어가고 박사학위 딸 때까지 공부를 열심히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이 소설은 한계투성이예요. 제가 세라의 이야기를 직접 쓰지 않은 이유, 무명 연습생 서사를 배제한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내가 경험하지 않은 고통을 함부로 재현하면 그게 폭력이 되니까요.
대신 제가 할 수 있는 건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권오석이라는 중년 남성 교사의 시점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에요. 저와 비슷한 위치(소설 속의 권오석은 저보다 좀 더 잘 살고, 좀 더 머리가 좋아요)에서 배워가는 과정을 쓰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정직한 글쓰기라고 생각했어요.
완벽한 글쓰기란 없어요. 어떤 선택을 해도 누군가는 배제되고, 어떤 시선은 특권적이고, 어떤 서사는 왜곡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쓸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제 한계를 인정하고, 비판에 열려 있고, 끊임없이 배우려 해요.
특권층이 쓴 글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에요. 하지만 특권을 인정하지 않고 쓴 글은 문제죠. 저는 최소한 정직하려고 노력했어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 질문 28: 실존 모델에 대하여
독자: (단호하게) 작가님, 아무리 봐도 예진(지니)의 이미지가 오마이걸 유아랑 너무 겹쳐요. 고백하시죠. 참고했죠? 아주 작은 얼굴에 통통한 볼살, 도톰한 입술, 이거 유아의 대표적 특징이잖아요? 메인 댄서, 센터 포지션, 이것도 유아가 오마이걸 메인댄서면서 늘 비주얼 중심이예요. 춤 스타일도 섬세한 춤선, 손끝 발끝까지 디테일, 컨템포러리 댄스 자주 활용, 이거 딱 유아의 춤 스타일이죠. 특히 샤오룽바오 표정이요! 유아가 볼 부풀리는 걸로 유명하잖아요!
그리고 학력 배경도요. 유아는 해성국제컨벤션고등학교 출신이죠. 그 시절 해성은 내신 상위 30% 이내만 갈 수 있는 학교였어요.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단 뜻이죠.
작가: (웃음) 숨길 수가 없네요. 유아의 이미지가 예진을 구상할 때 영향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명확히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예진은 유아가 아니에요. 여러 아이돌의 이미지와 이야기, 그리고 허구적 요소가 섞인 복합적 캐릭터예요. 외모와 춤 스타일은 확실히 참고 했습니다. 하지만 유아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긍정적이고 밝은 여성이죠. 자살 시도까지 한 깊은 트라우마를 가진 예진과는 다른 캐릭터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돌을 소설 캐릭터로 만들 때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필요해요.
추상적으로 "예쁘고 춤 잘 추는 아이돌"이라고만 하면 독자마다 전혀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잖아요. 그래서 작은 얼굴에 통통한 볼살, 도톰한 입술, 큰 눈 이런 식으로 형상화 하죠. 건 '베이비페이스’라는 하나의 유형이에요. 유아만의 특징이 아니라, 많은 아이돌이 공유하는 이미지예요.
완전히 새로운 외모를 창조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리얼리티를 위해서예요. 만약 예진을 "180cm에 카리스마 넘치는 걸크러쉬 래퍼"로 설정했다면, 독자들이 실감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 이런 아이돌 있을 법하네”라는 느낌을 주려면, 실제 존재하는 유형들을 조합해야 해요.
� 질문 29: 루미는 누구를 모델로 했나요?
독자: 루미라는 캐릭터가… 너무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에서 소름이 돋았어요. 칸나의 센터, 한국과 일본의 여신, 남자친구의 폭력 영상 유출, 클럽 마약 사건에 연루, 고위층 접대 사진 유출로 비난받음, 내부 고발자였다는 사실이 사후에 밝혀짐. 결국 자살
이거 구하라 아닌가요? 버닝썬 사건의 구조(클럽, 경찰 유착, 고위층 성접대)까지 그대로인데요?
작가: …이 질문을 정말 피하고 싶었는데, 역시 피할 수 없네요. . 루미는 설리이자 구하라이자, 그 누구도 아닙니다. 루미를 구상할 때 제 머릿속에는 설리의 악플과 사이버 폭력 구하라의 데이트 폭력과 버닝썬 제보 버닝썬 사건의 구조적 범죄, 이 모든 것들이 겹쳐 있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루미는 그들이 아닙니다. 구체적 사건의 디테일은 허구예요
하지만… 그 허구가 현실에서 너무나 자주 반복되는 패턴을 따르고 있다는 게 문제죠.
왜 이렇게 구체적으로 썼나요?
독자님이 "소름 돋았다"고 하신 게 정확히 제 의도였어요.
만약 루미를 "선배 아이돌이 힘들어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만 썼다면, 독자들은 “흔한 스토리네” 하고 넘어갔을 거예요.
하지만 폭행 영상이 유출되는 구체적 장면, 무릎 꿇은 여신의 이미지, 고발자였다는 사실이 사후에 밝혀지는 아이러니, 그녀를 지키지 못한 사회의 죄책감. 이런 디테일들이 독자의 가슴을 찌르게 만들죠.
저는 독자가 불편해지길 바랐어요. "아, 이거 실제로 있었던 일 같은데?"라는 느낌이 들게요. 왜냐하면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니까요.
설리와 구하라에게 -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이 부분을 쓸 때 정말 오래 망설였어요. “내가 그들의 죽음을 소재로 쓰는 게 맞나?” “이게 그들의 고통을 또 한 번 소비하는 거 아닌가?” “유족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하지만 결국 쓴 이유는 들이 목숨을 걸고 세상에 던진 메시지를 묻히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싸웠어요. 그리고 졌어요. 아니, 우리 사회가 그들을 져버렸어요. 루미라는 캐릭터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추도이자 증언이에요.
� 질문 30: 루미의 죽음, 너무 잔인하지 않나요?
독자: 루미 에피소드가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묘사해야 했나요? 오독될 위험도 있고, 유족들 상처받을 수도 있는데요.
작가: (무거운 한숨) 네, 이 비판도 예상했고, 받아들입니다.
저는 독자가 편안하게 읽길 원하지 않았어요. 만약 "루미 언니는 힘든 일을 겪고 세상을 떠났어요"라고만 썼다면? 독자는 “아, 안타깝네” 하고 한 쪽 넘기고 잊어버렸을 거예요.
하지만 머리채 잡혀 무릎 꿇은 여신이라는 이미지는 지워지지 않아요. “그녀는 고발자였다”는 반전은 독자에게 죄책감을 줘요
예진이 욕조에서 피 흘리는 장면은 루미의 죽음이 또 다른 죽음을 낳는다는 걸 보여줘요. 편안하게 소비하고 넘어갈 수 없게 만드는 게 제 전략이었어요.
� 질문 31: 루미는 왜 굳이 죽어야 했나요?
독자: 루미를 살려둘 수도 있었잖아요. 예를 들어, 재판에서 이기고 컴백하는 설정, 예진과 함께 지니 아트를 만드는 설정, 해외로 가서 새 삶을 사는 설정. 왜 굳이 죽음이라는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택하셨나요? 이게 “여성 아이돌은 결국 희생양”이라는 클리셰를 강화하는 거 아닌가요?
작가: (깊이 고개 끄덕이며) 정말 날카로운 지적이에요. 쓰면서도 고민했던 부분이고요.
솔직하게 말하면, 루미를 살리는 게 더 쉬웠을 거예요. 해피엔딩이 독자에게도 편하고, 작가에게도 편해요. 하지만 저는 현실의 무게를 외면하고 싶지 않았어요.
만약 루미가 살아남아 컴백했다면, 그건 위로는 되지만 거짓말이 되는 거죠. "열심히 싸우면 이길 수 있어"라는 메시지는 때로는 더 잔인해요. 왜냐하면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독자님 말씀처럼, “dead girl” 트로프는 문제가 있어요.
하지만 루미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루미는 능동적으로 싸웠어요 그녀는 피해자로 머물지 않고, 목숨을 걸고 고발했어요. 죽음은 그녀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가 그녀를 죽인 거예요. 루미의 죽음은 끝이 아니에요 그녀의 죽음 때문에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고 예진이 '지니 아트’를 만들게 됐고 루미나라는 새 그룹이 탄생했어요.
죽음의 책임은 가해자에게 소설은 명확히 해요. 루미를 죽인 건, 폭력을 휘두른 남자친구, 고발자를 보호하지 못한 시스템,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간 미디어와 대중이지 루미의 "나약함"이 아니에요.
� 질문 32: '아이돌의 사회적 기능’이란 정확히 무엇인가요?
독자: 소설에서 예진이 뒤르켐과 마르크스를 인용하며 "아이돌의 사회적 기능"을 이야기하는데요, 이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요? 그냥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나요?
작가: 아주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소설에서 예진이 말하는 '아이돌의 사회적 기능’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선 사회학적 개념이에요.
1. 뒤르켐의 ‘긴장 완화’ (Tension Reduction)
예진이 인용한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의 관점: 아이돌은 사회적 긴장을 완화하는 ‘안전 밸브’ 역할을 합니다.
현대 사회는 경쟁이 치열하고 미래가 불안하고 격차가 심화되고 개인은 고립되어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아이돌은 집단적 환희의 순간을 제공해요 (콘서트, 음악방송 1위). 소속감과 공동체를 만들어줘요 (팬덤 문화). 예측 가능한 긍정을 줘요 (컴백 주기, 팬미팅)
아이돌은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을 '우리’로 묶어주는 사회적 접착제예요.
2. 마르크스의 ‘쇠사슬의 장미꽃’
예진이 인용한 칼 마르크스의 비판적 관점 아이돌은 억압적 현실을 가리는 '환상’일 수도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자 "쇠사슬을 장식하는 장미꽃"이라고 했죠. 예진은 아이돌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고 봐요.
청년들이 취업난에 시달리는데, 아이돌 콘서트에서는 그 고통을 잊어요. 사회 불평등이 심화되는데, 아이돌의 화려함은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을 줘요. 진짜 문제(구조)를 외면하게 만드는 거죠
하지만 예진은 이렇게 반박해요
“아이돌을 착취하고 팔아먹을 궁리 하는 자본이 문제지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문제가 아니잖아요?”
문제는 아이돌 자체가 아니라, 아이돌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시스템이라는 거죠.
3. ‘이데아의 인격화’ - 불가능한 이상의 구현
예진의 가장 중요한 통찰이죠.
“아이돌의 어원이 이데아잖아요? 그러니 모든 아이돌은 뭐가 되었건 어떤 형상을 표현하는 거에요. 현실에 존재할 리 없지만 그래도 존재했으면 싶은 하는 대중의 열망을 읽어서 실재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주는 거죠.”
이게 핵심이에요. 아이돌은 '현실에는 없지만 있었으면 하는 것’을 보여주는 존재예요. 예를 들어
청순돌: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소녀 (현실에는 없어요, 모두 복잡한 내면이 있죠)
걸크러쉬: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 (현실은 여전히 성차별적이죠)
국민 남동생: 착하고 밝은 소년 (현실의 남자는 군대 가고 취업 걱정해요)
아이돌은 대중이 갈망하는 '이상향’을 육체로 구현한 존재예요.
그래서 사람들은 아이돌을 보며 "이런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위안받고 아이돌을 응원하며 "이상이 실현될 수 있다"고 믿고 아이돌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꿈꿔요
제 개인적 견해로는:
아이돌의 사회적 기능은 '희망의 유지’예요. 절망적인 현실에서 아이돌의 성공 스토리는 "노력하면 된다"는 믿음을 줘요. 아이돌의 밝은 이미지는 "세상은 살 만하다"는 착각을 줘요. 아이돌의 팬덤은 "나는 혼자가 아니다"는 소속감을 줘요.
이게 마르크스가 말한 '아편’일 수도 있어요. 진짜 문제를 가리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뒤르켐이 말한 '필수 기능’이기도 해요. 이게 없으면 사회가 붕괴하니까요.
저는 둘 다 맞다고 봐요. 그래서 소설에서 예진이 두 관점을 모두 언급하는 거죠.
� 질문 33: 요즘 4세대, 5세대는 그 기능을 못하고 있나요?
독자: 작가님 말씀대로라면, 요즘 4세대, 5세대 아이돌은 그 '사회적 기능’에 충실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청순 컨셉이 거의 사라졌고, 다들 걸크러쉬나 Y2K 복고 아니면 하이틴. “국민 여동생” 같은 개념 자체가 구시대 유물 취급 팬덤도 극도로 파편화되어 공동체 느낌이 없고 그래서 오히려 **러블리즈(2024년 재결합), 에이핑크(2025년 컴백)처럼 2세대, 3세대가 다시 돌아오는 거 아닐까요? 그 빈 공간을 노리는 거죠?
작가: 와, 정말 예리한 관찰이에요. 제가 쓰고 싶었지만 소설에 못 넣은 이야기예요!
4·5세대의 ‘기능 약화’ - 맞는 지적입니다 독자님 말씀이 상당 부분 맞아요. 최근 아이돌은 청순 컨셉은 소멸했고 팬덤은 파편화 되어 각자 자기 최애만 팔로우 하죠. 그 결과 그룹마다 각자 극렬 팬덤만 소유하고 일반 대중은 무관심하죠. 이게 음방의 처참한 시청률로 확인되고요. 분명 아이돌이 담당했던 사회적 기능이 있었는데 최근 기획사들이 내놓은 팀들은 전혀 그런 기능을 못하고 있어요.
러블리즈·에이핑크가 돌아오는 배경에는 분명 그 공백이 있어요. 하지만 여기도 함정이 있어요.
청순돌은 안전한 판타지죠. 복잡한 현실에서 순수한 이미지는 쉼표예요. 그리고 이들은 철저히 남성 소비자 타겟이에요(같은 청순3대장 여자친구와는 많이 달라요). 그리고 이들은 지금 30대죠. 지금 30대 경제 핵심 활동층은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자기들의 청춘을 그리워하죠. 꿈과 희망이 있던 2010년대를 말이죠. 그래서 그 향수를 위해 비싼 티켓과 굿즈를 소비할 의사가 있는 겁니다. 러블리즈·에이핑크는 바로 그들의 지갑을 노리는 거예요.
이들의 귀환은 새로운 팬덤을 창출하기 보다는 팬덤의 동창회 같은 느낌, "우리가 함께했던 시절"로 돌아가는 집단 경험, 공동체의 재발견이에요.
하지만 이건 '퇴행’일 수도 있어요. 우선 청순 컨셉 자체가 남성 시선의 판타지이며 여성을 수동적·순결한 존재로 규정하는 성적 대상화의 한 형태죠. "그때가 좋았지"는 태도 역시 현재의 도전을 외면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성이 될수 있어요. 20-30대 남성의 보수화와 돌아오는 청순돌을 연결 짓는 것은 좀 억지일까요?
그래서 이건 답이 아닌 것 같아요. 그럼 어떻게 하냐고요? 그걸 알면 제가 여기서 이런 글을 쓰는 대신 기획사 차려서 큰 돈을 벌었겠죠(웃음)
다만 2, 3세대 아이돌의 긴 생명력은 그들이 팬덤들에게 “우리들의 이야기”를 노래했기 때문이에요. 지금 30대 중반들에게는 소녀시대의 ‘다함께 만드는 세상’에 자기들의 청춘서사가 담겨 있죠. 아이돌 황금기때 청소년기를 보낸 지금의 2말3초들은 여자친구의 ‘시간을 달려서’를 비롯해 자기들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들이 있었어요. 밈으로 소비되는 짧은 동작들과 의미없는 영어가사로 일관하는 4, 5세대 아이돌에게는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아요. 요즘 젊은이들의 이야기, 우리 이야기를 노래하지 않아요.
� 질문 34: 결국 지니는 예뻐서 성공한 거죠? 이게 진짜 문제 아닌가요?
독자: (단도직입적으로) 지니는 예뻐서 성공한 거죠? 그것도 아주 두드러지게? 소설에서 권오석이 “33년 교직 생활 중 그렇게 예쁜 학생은 전에도 후에도 만나지 못했다”고 하잖아요. 이주란의 보고서에서도 예진은 최고 등급이었고요.
춤을 잘 춰서? 노래를 잘해서? 아니죠. 얼굴이 예뻐서 선택받은 거예요. 결국 아이돌 산업의 근본적 문제는 외모지상주의 아닌가요? 작가님이 아무리 "시스템이 문제"라고 해도, 그 시스템이 작동하는 연료가 바로 "예쁜 여자를 보고 싶다"는 욕망이잖아요. 이건 어떻게 해결할 건가요?
작가: (긴 침묵, 불편한 표정) 피할 수 없는 질문이네요.
네, 예진은 예뻐서 성공했습니다. 예진이 만약 똑같이 춤 잘 추고, 노래 잘하고, 머리 좋고, 가난했지만, 얼굴이 평범했다면 절대로 유노이아의 센터가 되지 못했을 거예요. 데뷔 자체도 불투명하죠.
소설은 이걸 숨기지 않아요. 오히려 노골적으로 드러내요. 예진도 이를 알고 있어요.
“결국 외모를 기준으로 저랑 소이를 비교하고, 둘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잘 섞어 팔 것인가 궁리한 문서에요.”
“괜찮아요. 저도 ‘가진 것 중 제일 값진 게 외모라면 그거라도 팔자.’ 그런 기분으로 계약하고 데뷔한 거니까.”
독자님 지적대로, 이건 아이돌 산업의 근본 모순이에요. 예쁨 = 입장권이에요. 무대에 서려면 먼저 예뻐야 해요. 그런데 이게 지옥문을 열어요. 예진은 은퇴 후에도:
매달 수백만 원을 외모 관리에 써요. 체중 1kg 늘면 공포를 느껴요. 거울 볼 때마다 “아직도 팔릴까?” 걱정해요. 외모는 소멸하는 자산이에요. 그래서 더 잔인해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예진을 예쁘게 만들었어요. 만약 제가 예진을 "평범한 외모의 실력파 댄서"로 설정했다면? 독자들이 덜 공감했을 거예요. "그래도 예쁜 애가 고생하니까 안타깝다"는 감정이 약했을 거예요. 저도 외모지상주의를 이용한 거예요.
이게 제가 가장 부끄러운 부분이에요. 저는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외모지상주의에 기대어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이중적이죠. 위선적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현실의 아이돌 산업이 그래요. 평범한 얼굴로는 데뷔 자체가 불가능해요.
만약 제가 "평범한 외모의 아이돌이 실력으로 성공했다"고 쓴다면?그건 거짓말이에요. 판타지에요.
저는 불편한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예진은 예쁘기 때문에 더 많이 착취당했고, 더 많이 대상화됐고, 더 깊이 고통받았어요 (자아 상실, 자살 시도). 예쁨이 무기가 아니라 족쇄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예진은 38억을 벌었어요. 외모로 성공한 거죠. 하지만 행복했나요? 아니요. 자유로웠나요? 아니요. 자기 자신이었나요? 아니요.
외모 특권도 결국 특권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해결책은? 저는 모르겠어요.
정말로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외모 선호는 생물학적이니까요. "예쁜 사람 보고 싶다"는 건 억압할 수 없는 욕망이에요. 그 욕망 자체를 금지하면 그게 더 큰 억압이에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할 방법은 있어요
미성년자 외모 착취는 막아야 해요. “외모까지 능력이라 쳐도. 그래서 정말 예뻐서 예쁜 건지 어려서 예뻐 보이는 건지 구별되지 않는 나이에는 절대 데뷔시키지 않으려는 거고요.” 예진의 이 말이 중요해요.
외모를 팔지 말고, 외모로 표현하도록 해요. 예쁨을 '미끼’로 쓰지 말고, 예쁨을 '언어’로 쓰는 거죠.
외모 등급 매기는 내부 보고서 같은 건 불법으로 해야 해요. 소설은 많이 완화해서 표현한거고요, 실제 내부에서는 인격 말살적인 표현이 난무해요.
과도한 체중 관리, 성형 강요는 처벌해야 해요. 외모 상품화를 하더라도 인권 안에서 해야 해요
어쨌든 이 질문이 불편한 이유는 우리 모두가 공범이기 때문이에요.
예쁜 아이돌을 보고 싶어 하는 팬, 외모로 클릭을 유도하는 미디어, 비주얼을 상품화하는 기획사, 그리고 그걸 소재로 소설 쓰는 작가. 우리 모두 외모지상주의 시스템의 일부예요.
저는 이 소설로 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려 한 게 아니에요. 다만 직면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예진은 예뻐서 성공했다. 그리고 그 예쁨 때문에 착취당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불편한 질문을 계속 안고 가는 것. 정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계속하는 것.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예진의 외모를 묘사할 때 즐거웠어요. “백자 달항아리 같은 피부”, “별을 품은 듯한 눈”, “도톰한 입술”… 이런 표현을 쓰면서 미적 쾌감을 느꼈어요.
동시에 죄책감도 들었어요.
이 모순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게 나쁜 건가요?
선이 어디인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확실한 건 강요되면 폭력이 되고, 착취하면 범죄가 되고, 인격을 지우면 학대가 돼요. 그 선을 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요?
� 질문 35: 자본주의 비판자들이 명품 부티크를 아지트로? 위선 아닌가요?
독자: (냉소적으로) 지니나 세이는 소설 내내 사회적으로 비판적인 성향으로 보여요.
그런데 이들이 은퇴 후 명품 부티크 ‘유노이아 뷰티 뮤지엄’을 아지트로 삼아 자주 모이고, 그곳을 운영하는 소이에게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않아요.
“착취는 나쁘지만 내가 하는 명품 장사는 괜찮다”? 위선 아닌가요?
작가: (움찔하며, 긴 한숨) 네, 모순입니다. 예진과 세이가 이주란의 착취를 비판하면서
소이의 VVIP 전용 부티크에서 모임을 갖는 건 명백한 모순이에요.
더 나아가 예진은 그 부티크의 모델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광고로 돈 벌어요.
세이와 하린은 거기서 프라이빗 공연을 해요 (극소수 부자들 상대로).다들 소이가 만드는 이 부르주아 놀이터를 편하게 이용해요. 이건 분명 위선적이에요.
동시에 이건 현실을 반영한 거이기도 해요.
현실에서 페미니스트 셀럽이 명품 광고 찍고 환경운동가가 프라이빗 제트 타고 불평등 비판자가 강남 부동산 보유해요.완벽하게 일관된 삶은 불가능해요. 우리 모두 모순 속에 살아요. 예진과 세이도 마찬가지예요. 그들도 시스템 안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소이는 무대에 서고 싶어요 (아이돌의 본능). 하지만 대중이 무서워요 (트라우마)
검증된 소수에게만 보여주는 게 타협점이에요. 이게 착취인가요, 아니면 상처받은 사람의 생존 전략인가요?
철저한 회원제, 고가 정책은 계급적 배타성, 엘리트주의가 분명하지만 소이의 안전 확보, 사생활 보호에는 꼭 필요했어요.
예진도 이걸 알아요. “이주란은 김옥균, 다엘 언니는 박영효, 저는 딱 유길준 신세더군요. 하지만 순진한 소이는? 그 기이한 혁명의 부적, 토템? 정말 보기에 딱했어요.”
예진은 소이가 이주란의 ‘여성 제국’ 프로젝트의 토템으로 이용당한다고 봐요. 그럼에도 막지 않는 이유는?
소이가 행복해 보이니까. 대안이 없으니까. 자기들도 그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예진만 해도 38억 자산가예요. 세이, 하린도 수십억 벌었어요. 그들에게 "100억 매출 부티크"는 이상하지 않은 거예요. 자신들도 이미 상위 1%니까요.
게다가 이주란은 아이돌을 가축처럼 착취했지만 소이는 부자들에게 명품 팔고 컨설팅 해서 돈을 벌죠. 예진의 기준에서 소이는 '착취자’가 아니에요. 그저 비즈니스를 하는 거죠.
� 질문 36: “그녀” 없는 소설 - 의도적 선택인가요?
독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이건 정말 놀라운 점인데요. "그녀"라는 3인칭 대명사요. "왜 남자는 그, 여자는 그녀냐"고 페미니즘 관점에서 비판도 많았죠. 그래서 성구분 없이 "그"라고 하기도 하는데, 작가님은 아예 3인칭 대명사 자체를 안 쓰셨더라고요. 1000매가 넘는 장편에서 3인칭 대명사를 거의 안 쓰고 문장들을 구성하는 게 보통일이 아닐 텐데요? 이게 의도적인 선택인가요?
작가: 네. 맞습니다. 의도적 선택이었어요.
독자님이 정확히 지적하셨듯이, 한국어에서:
남성 = “그” (기본형, 무표)
여성 = “그녀” (파생형, 유표)
이건 언어적 불평등이에요.
마치 남성이 '기준’이고 여성은 '특수한 경우’인 것처럼 보이죠. 일부 페미니스트 작가들은 "그"로 통일하기도 하지만, 이것도 문제예요. "그"는 이미 남성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굳어졌어요
그래서 저는 아예 안 쓰기로 했어요.
대명사 대신 “예진이” (이름) “우리 반 에이스” (관계) “가장 사랑했던 제자” (감정) “매혹적인 지니” (정체성) “첼로 요정 예니” (역할). 사람을 성별이 아니라 관계와 정체성으로 부르는 거예요. 이게 훨씬 인간적이고 구체적이에요.
쉽지 않았어요. "그녀"를 안 쓰면 글쓰기가 어려워요.
예를 들어
“예진이 방에 들어왔다. 그녀는 마스크를 벗었다. 그녀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나는 그녀를 알아봤다.” 여기서 그녀를 쓰지 않는다면?
“예진이 방에 들어왔다. 예진이 마스크를 벗었다. 예진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나는 예진을 알아봤다.”
이름 반복이 어색하죠?.
그래서 제가 쓴 방식은 “검정 캡을 깊게 눌러쓴 젊은 여성이 방에 들어왔다. 마스크를 벗었다. 얼굴은 아름다웠다. 나는 이 여성을 알아봤다. 너 예진이잖아?”
① 주어 생략 (한국어 특성 활용)
“마스크를 벗었다” (주어 생략)
“얼굴은 아름다웠다” (누구 얼굴인지 문맥상 명확)
② 지시어 활용
“이 여성”, “그 아이”, “이 아이”
③ 관계어 삽입
“가장 사랑했던 제자”, “우리 반 에이스”
④ 역할명 사용
“비주얼 센터”, “메인 댄서”, “첼로 요정”
이렇게 쓰려면 문장 구조를 끊임없이 재구성해야 해요.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가치가 있었어요.
독자님이 여성 인물에만 주목하셨는데, 사실:
남성 인물도 "그"를 거의 안 썼어요.
“그” 대신 → “정우”, “녀석”, “천재 음악가”, “내 자랑”.
“그” 대신 → “그 자식”, “그 남자”, “하찮은 남자”
"그"도 비인격적이에요.
특히 폭력 가해자를 "그"라고 부르면, 마치 일반 남성 중 하나인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그 자식”, "하찮은 남자"라고 부르면 판단과 감정이 담겨요.
제가 시도한 건 대명사 없이도 문장이 되는가? 성별이 아닌 다른 정보로 인물을 특정할 수 있는가? 이것을 실험한 것입니다.
물론 대명사 없는 문장은 가끔 어색해요. 이름 반복이 과할 때도 있어요
독자님, 이걸 발견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작가도 무의식적으로 한 선택을 독자가 의식해줄 때, 그게 비로소 의미 있는 실험이 되는 것 같아요.
언어를 바꾸면, 세계가 바뀝니다.
조금씩, 천천히요.
� 질문 37: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독자: 마지막으로,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나요?
작가: (잠시 침묵하다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불편하셨을 거예요. 죄책감을 느꼈을 수도 있고요. “나도 악플을 달았나?”, “나도 소비했나?”, “나도 외면했나?” 하고 자문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죄책감에 머물지 말아 주세요. 중요한 건 다음 선택이에요.
앞으로 아이돌을, 아니 모든 아티스트를 볼 때:
그들도 나처럼 아프고 웃고 우는 인간임을 기억해 주세요.
완벽한 이미지 뒤의 땀과 눈물을 존중해 주세요.
악플 대신 응원을, 소비 대신 연대를 선택해 주세요.
딸이나 아들이, 학생이, 후배가 "나 아이돌 하고 싶어"라고 한다면:
무조건 말리지 말아 주세요.
하지만 무조건 응원만 하지도 말아 주세요.
그 꿈 뒤의 구조를 함께 보고,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꿈꿀 수 있을지 고민해 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권오석처럼 들어주세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서툴러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끝까지 듣고, 인정하고, 함께 변하려 한다는 것이니까요.
이 소설이 끝이 아니라 대화의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여러분의 관계에서, 이 이야기가 작은 씨앗이 되어 싹트길.
별들이 더 이상 바다에 잠들지 않는 세상, 우리 함께 만들어 가요.
� 질문 38: 다음 작품 계획
독자: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쓰실 계획인가요?
작가: (웃으며) 사실 이미 힌트가 나와 있어요. 독자분이 보시기에 아, 이 사람 이야기가 따로 있으면 재미있겠다 싶은 캐릭터를 꼽아 보세요.
독자: 아무래도 이주란.
작가: 그렇죠? 도대체 이주란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가 궁금하죠? 사실 저도 궁금해요. 그래서 만들어야겠어요. 말하자면 유노이아의 프리퀼이 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