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소설 별이 잠드는 바다 (가상)작가와의 대화1

by 권재원


『별이 잠드는 바다』 독자와의 만남 - Q&A

� 질문 1: 제목의 의미

독자: "별이 잠드는 바다"라는 제목이 매우 시적인데요, 어떤 의미를 담고 계신가요?

작가: 좋은 질문입니다. 이 제목은 여러 층위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우선 '별’은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돌 스타들을 상징합니다. 화려하게 빛나지만, 동시에 너무 높이 떠 있어 닿을 수 없고,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꺼진 빛일 수도 있는 존재들이죠. '바다’는 대중이라는 거대한 무의식의 바다이자, 동시에 그들을 삼켜버리는 냉혹한 자본과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예진이가 "지니는 바다에 잠들어 있고, 김예진이 깨어났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죠. 별(지니)이 바다(대중)에 잠든다는 것은 화려한 외피를 내려놓고 본래의 자아를 되찾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잠듦’은 죽음과도 가까워요. 세라와 루미가 그랬듯이요. 그래서 이 제목은 회복의 은유이자 추모의 의미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 질문 2: 권오석 선생님을 화자로 선택한 이유

독자: 왜 예진이가 아닌 권오석 선생님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셨나요?

작가: 처음에는 예진이의 1인칭 시점도 고려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아이돌 폭로 수기’가 될 위험이 있었죠. 저는 단순히 연예계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젊은 여성들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 그리고 기성세대가 그들의 고통을 얼마나 외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권오석은 선한 교육자지만, 동시에 편견도 가지고 있어요. 아이돌을 "기생"이라 여기고, 클래식은 고급 예술, K-pop은 저급 문화라는 위계를 당연시합니다. 이런 인물이 예진의 이야기를 듣고 변화하는 과정이야말로 독자들, 특히 부모 세대나 교육자들에게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권오석의 시각은 '불완전한 이해자’의 시선이에요. 예진의 고백을 듣지만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해요.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현실적이고, 독자들도 그와 함께 배워나가는 느낌을 받게 되죠.


� 질문 3: 가장 쓰기 힘들었던 장면

독자: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 가슴이 아팠는데요, 작가님께서 가장 쓰기 힘드셨던 장면은 무엇인가요?

작가: (잠시 침묵) 세 장면이 특히 힘들었어요.

첫째는 예진이가 자살 흉터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지니, 너에게 자결을 명한다"는 문장을 쓸 때 정말 오래 키보드 앞에 앉아 있었어요. 이건 단순한 자살 시도가 아니라, 한 인격이 다른 인격에게 내리는 명령이잖아요. 그 분열의 깊이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둘째는 세라의 죽음에 대한 고백 장면이에요. “세라는 죽었어. 네가 우리 팀 오기 얼마 전에” 이 사실을 예진이 어떻게 짊어지고 살아왔을까를 생각하면… 실존했던 수많은 '세라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셋째는 이주란의 보고서 장면이요. 소녀들을 가축처럼 등급 매기는 그 차갑고 비인간적인 언어들. 그걸 쓰면서 제 손이 떨렸어요. 하지만 이게 현실이라는 걸 알기에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 질문 4: 이주란이라는 캐릭터

독자: 이주란 전무는 악인인가요, 아니면 시스템의 희생자인가요?

작가: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주란은 전형적인 ‘배니스터’(banal evil, 악의 평범성)의 화신이에요. 그녀는 개인적으로 악의를 가지고 소녀들을 괴롭히지 않아요. 오히려 “이게 업계 표준이야”, “이렇게 해야 성공해” 같은 논리로 자신을 정당화하죠.

그녀는 천재적 기획자예요. 유노이아를 만들어낸 건 부정할 수 없는 그녀의 능력이고요.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인간을 자산으로, 소녀를 상품으로 대했다는 거예요. 소설 속에서 그녀가 보는 보고서에는 소녀들의 얼굴에 품종명을 붙이고 가격을 매기죠.

저는 이주란을 완전한 악인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녀 역시 남성 중심적 자본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논리를 내면화한 여성일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게 면죄부는 될 수 없어요. 가해의 구조에 참여하고 이익을 본 순간, 그녀는 공범이 되는 거니까요.


� 질문 5: 딸 예니의 역할

독자: 예니라는 캐릭터가 예진과 대비되면서도 비슷한데요, 예니를 통해 말하고 싶으셨던 건 무엇인가요?

작가: 예니는 "클래식=고급, 아이돌=저급"이라는 문화적 위계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보여주는 캐릭터예요. 권오석은 딸이 첼리스트가 된 걸 자랑스러워하지만, 예니는 아버지의 기대와 디누의 유산에 짓눌려 숨도 못 쉬는 상황이에요.

흥미롭게도 예니를 구원하는 건 바로 ‘저급하다’ 여겨진 K-pop과 예진이에요. 예진은 예니에게 "넌 네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야 해"라고 말해주고, 예니는 비로소 클래식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음악을 찾아갑니다.

두 예(藝)의 대비는 이렇게도 읽힐 수 있어요: 예니: 제도권 예술, 아버지의 승인, ‘고급’ 문화의 무게. 예진(지니): 대중 예술, 시장의 폭력, ‘저급’ 문화의 낙인

하지만 둘 다 결국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갇혀 자아를 잃어가는 아티스트라는 점에서 동일해요. 그래서 예니와 예진이 서로를 구원하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 질문 6: '유노이아’라는 그룹명의 의미

독자: 'EUNOIA’라는 그룹명이 그리스어로 '아름다운 생각’을 의미한다고 하던데, 어떤 의도로 지으신 건가요?

작가: 정확히 아시네요! EUNOIA(εὔνοια)는 고대 그리스어로 “beautiful thinking” 또는 "well mind"를 의미합니다. 수사학에서는 '연사가 청중에게 품는 호의’를 뜻하기도 하고요.

이 이름을 선택한 이유는 아이러니 때문이에요. 겉으로는 아름다운 생각, 순수한 호의를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철저한 계산과 통제가 있다는 거죠. 이주란이 지은 이름이잖아요? 그녀는 "대중이 원하는 완벽한 이미지"를 팔기 위해 소녀들을 훈련시켰어요.

하지만 동시에, 멤버들 사이의 진짜 유노이아, 즉 서로를 향한 진심 어린 호의와 연대는 실존했어요. 세라를 잃은 슬픔을 함께 견디고, 예진이 무너질 때 붙들어준 건 바로 이 유노이아였죠. 그래서 이 이름은 자본의 기만이자 동시에 소녀들의 진짜 구원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닙니다.

여담으로, EUNOIA는 영어에서 모든 모음(a, e, i, o, u)을 한 번씩만 쓴 가장 짧은 단어이기도 해요. 완벽한 균형과 조화를 상징하죠. 마치 아이돌의 이미지처럼요.


� 질문 7: 실제 K-pop 산업과의 연관성

독자: 이 소설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건가요? 너무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서요.

작가: (신중하게) 이건 픽션입니다. 특정 그룹이나 사건을 모델로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완전히 허구라고도 할 수 없죠.

소설을 쓰면서 수많은 자료를 봤어요. 전현직 아이돌들의 인터뷰, 고발 기사, 법정 증언, 그리고 팬들이 남긴 기록들. 소설 속 개별 사건은 제가 만들었지만, 그 사건들이 가능한 구조는 현실에서 가져왔습니다.

예를 들어 피임약으로 생리 주기 맞추기: 여러 전직 아이돌이 증언한 실제 관행입니다.

극단적 체중 관리와 폭식증: 너무나 흔한 일이죠.

성희롱성 악플과 대상화: 모든 여성 아이돌이 겪는 일입니다.

멤버의 죽음: 우리는 너무 많은 젊은 스타를 잃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이 고발이 아닌 애도이기를 바랐어요. 동시에, 이런 구조를 외면하고 소비만 하는 우리 모두를 돌아보는 거울이기를요. 권오석이 변하듯, 독자들도 변했으면 합니다.


� 질문 8: “샤오룽바오” 장면의 의미

독자: 예진이가 볼을 부풀리는 샤오룽바오 표정 장면이 반복되는데, 이게 왜 그렇게 중요한 모티프인가요?

작가: 예리하게 보셨네요! 샤오룽바오 표정은 진짜 예진이와 페르소나 지니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을 상징합니다.

처음 권오석 앞에서 저 표정을 지을 때, 예진은 그걸 "애교"로 활용해요. 중학교 때는 절대 하지 않았던 행동이죠. 이건 아이돌로서 습득한 ‘귀여운 여자애’ 페르소나예요. 권오석은 이게 낯설면서도 묘하게 자연스럽다고 느끼고, 불현듯 유튜브 영상 '유노이아 지니 삐치니까 샤오룽바오’를 떠올려요.

그 영상에는 악플이 수천 개 달렸죠. “저 샤오룽바오 먹고 싶다”, “못생김” 같은 성적 대상화와 외모 비하가 뒤섞인. 즉, 샤오룽바오 표정은 대중의 소비 욕망이 각인된 상흔이에요.

하지만 동시에, 예진은 이 표정을 자기 방어의 무기로도 쓰죠. 상처받았을 때 저 표정을 짓고 상황을 넘어가요. "귀엽게 삐지기"로 진짜 분노와 슬픔을 감추는 거예요.

결국 샤오룽바오는 상처의 기호이자 생존 전략입니다. 권오석이 그 이중성을 이해하는 순간, 비로소 예진의 고통에 다가갈 수 있게 되죠.


� 질문 9: 세월호와 ‘도나 노비스 파쳄’

독자: 세월호 추모 영상 ‘도나 노비스 파쳄’ 에피소드가 인상 깊었는데, 왜 이 소재를 넣으셨나요?

작가: (목소리 낮춰) 이 부분은 정말 신중하게 다뤘습니다. 세월호는 우리 사회의 가장 깊은 상처 중 하나니까요.

소설 속에서 권오석은 처음에 유노이아의 추모 영상을 "회사의 이미지 메이킹"이라고 폄하합니다. 전형적인 어른의 냉소죠. 하지만 예진이 밝히죠. 그건 회사 몰래 멤버들끼리 만든, 그들 나름의 반란이었다고.

"우리도 애도할 자격이 있어요"라는 예진의 말이 핵심입니다. 아이돌은 늘 ‘가볍고’, ‘상업적이고’, ‘진정성 없는’ 존재로 치부되잖아요. 하지만 그들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이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저항할 권리가 있어요.

'도나 노비스 파쳄(Dona nobis pacem)'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라는 뜻의 라틴어 미사 기도문이에요. 예니가 첼로로 연주하고 유노이아가 노래하는 이 곡은 클래식과 K-pop, 엘리트와 대중, 죽은 자와 산 자를 연결하는 다리가 됩니다.

저는 이 장면을 통해,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장르나 형식이 아니라 그것이 누구의 고통을 대변하는가에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 질문 10: 예진의 자살 시도와 정체성 분열

독자: "지니, 너에게 자결을 명한다"는 구절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이런 극단적 설정을 한 이유는요?

작가: (깊은 한숨) 이건 과장이 아닙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까지는 아니더라도, 페르소나와 자아 사이의 극심한 분열은 많은 연예인이 겪는 실제 문제예요.

예진에게 '지니’는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또 다른 인격이에요. 완벽하고, 귀엽고, 섹시하고, 논란 없고, 회사가 원하고 대중이 사랑하는 이미지. 하지만 그 이미지를 유지하는 건 김예진이라는 인간에게 너무나 큰 고통이었죠.

"지니를 죽여야 김예진이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도달했을 때, 예진은 스스로에게 자결 명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손목에 칼을 댄 순간 죽는 건 지니가 아니라 김예진이 될 뻔했어요. 왜냐면 김예진은 지니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으니까요.

흉터는 그 실패의 증거이자, 동시에 두 정체성이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의 표지입니다. 소설 마지막에 예진이 '지니 아트’를 세우고 새로운 그룹을 만드는 건, 지니를 죽이는 대신 주체적으로 재정의하는 과정이에요.


� 질문 11: 루미나(LUMINA)와 희망의 의미

독자: 소설 마지막에 나오는 새 그룹 '루미나’는 어떤 의미인가요?

작가: 루미나(LUMINA)는 라틴어로 ‘빛들’을 의미합니다. 단수 lumen(빛)의 복수형이죠.

소설은 ‘별이 잠드는’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빛들이 깨어나는’ 이야기로 끝나요. 루미나는 죽은 루미를 추모하며, 동시에 다른 방식으로 빛나는 것이 가능함을 선언합니다.

중요한 건, 루미나는 예진(지니)이 아닌 후배들이 주인공인 그룹이라는 거예요. 예진은 이제 아티스트가 아니라 기획자예요. 자신이 겪은 고통을 후배들이 겪지 않도록 ‘구조선’ 역할을 자처하죠.

"이번엔 제대로 해보려고요. 애들이 진짜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있게"라는 예진의 말이 핵심입니다. 루미나는 단순한 새 그룹이 아니라, 아이돌 산업의 구조를 내부에서 바꾸려는 실험이에요.

유노이아(아름다운 생각)가 이주란의 기만이었다면, 루미나(빛들)는 예진의 진심입니다. 그리고 그 빛들은 하나가 아니라 복수예요.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색깔로 빛나는 여러 별들. 그게 제가 꿈꾸는 미래입니다.


� 질문 12: 권오석의 변화가 진정성 있나요?

독자: 권오석 선생님이 처음엔 아이돌을 “기생” 취급하다가 갑자기 이해하는 게 너무 급격한 변화 아닌가요?

작가: 아주 예리한 지적입니다. 실제로 이 부분이 쓰면서 가장 고민했던 지점이에요.

권오석의 변화를 갑작스러운 개과천선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몇 가지 장치를 두었습니다:

첫째, 변화는 점진적이에요. 권오석은 예진의 이야기를 듣고도 계속 판단하고, 의심하고, 자기 합리화를 해요. 예니의 첼로는 예술이고 예진의 춤은 상품이라는 위계를 쉽게 놓지 않죠.

둘째, 변화는 불완전해요. 권오석은 끝까지 예진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요. 그가 할 수 있는 건 들어주고, 인정하고, 미안해하는 것 뿐이에요. 이게 오히려 현실적이지 않나요?

셋째, 변화의 동력은 사랑입니다. 권오석은 이념이나 논리 때문이 아니라, 예진과 예니라는 구체적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변해요. 추상적 정의감이 아니라 구체적 관계가 사람을 바꾸는 거죠.

마지막으로, 그는 여전히 한계투성이예요. 소설 마지막에도 권오석은 여전히 어색하고, 서툴고, 가끔 실수해요. 하지만 중요한 건 계속 배우려 한다는 거예요. "나 같은 꼰대도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질문 13: 왜 '상담’이라는 형식을 택했나요?

독자: 소설이 여러 차례의 ‘상담’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런 구조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작가: '상담’이라는 형식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어요.

첫째, 고백의 안전 공간입니다. 예진은 권오석을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중학교 때 그랬듯이요. 상담실은 판단받지 않고 자신의 어두운 면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죠.

둘째, 경청의 윤리를 강조합니다. 권오석이 하는 건 결국 듣는 거예요. 조언하거나 가르치는 게 아니라요. 트라우마는 조언으로 치유되지 않아요. 누군가 끝까지 들어준다는 것, 그 자체가 치유예요.

셋째, 교사-학생 관계의 재구성입니다. 이건 더 이상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는” 관계가 아니에요. 오히려 예진이 권오석을 가르치죠. 아이돌의 세계를, 젊은 여성의 고통을, 자신이 몰랐던 세상을. 상담은 배움의 방향이 역전되는 공간이에요.

넷째, 독자와의 동행 구조입니다. 권오석이 예진의 이야기를 듣듯, 독자도 함께 듣게 되죠. 권오석이 충격받고, 분노하고, 미안해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독자도 같은 여정을 거쳐요.

그래서 상담은 단순한 서사 장치가 아니라, 이 소설의 핵심 윤리이자 방법론입니다.


� 질문 14: 가장 애착 가는 캐릭터

독자: 작가님께서 가장 애정하는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작가: (미소 지으며) 예상 밖의 답일 수도 있는데, 세이예요.

세이는 유노이아의 래퍼이자 작곡가예요. 말수가 적고, 눈빛이 날카롭고, 언제나 멤버들을 지키려 들죠. 예진이 무너질 때 제일 먼저 달려온 것도 세이고, 이주란과 싸운 것도 세이예요.

세이는 말하지 않지만 모든 걸 이해하는 캐릭터예요. 예진의 고통을, 예니의 갈등을, 루미의 분노를. 그리고 자신의 방식(음악)으로 그걸 표현해요.

저는 쓰면서 세이가 퀴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힌트를 곳곳에 남겼죠. 그녀의 중성적인 스타일, 연애 스캔들 제로, 예진을 향한 보호 본능.

세이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아이돌 시스템이 억압하는 건 섹슈얼리티만이 아니라 정체성 자체라는 거예요. 이성애 규범적이고, 여성스러워야 하고, 순결해야 하고, 하지만 동시에 섹시해야 하는 그 모순된 요구들. 세이는 그 틈새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남는 인물이에요.

소설을 다시 쓴다면, 세이의 시점을 더 많이 넣고 싶어요. 그녀의 침묵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탐구하고 싶습니다.


� 질문 15: 악플과 대중의 폭력

독자: 악플 묘사가 너무 끔찍했는데, 실제로 이 정도인가요?

작가: (단호하게) 네. 오히려 순화한 겁니다.

소설을 쓰면서 실제 악플들을 조사했어요. 여성 아이돌들이 받는 댓글들을요. 정말… 인간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끔찍했어요. 성적 대상화, 외모 비하, 죽음을 바라는 저주, 신상 털기, 합성 사진.

샤오룽바오 영상 댓글로 나온 "저거 먹고 싶다"는 실제로 수없이 달리는 류의 댓글이에요. 여성 아이돌의 몸을 음식에 비유하며 소비하는 거죠. “못생김”, “성형 실패”, “저 얼굴에 센터?” 같은 외모 비하도 일상이고요.

악플은 단순한 나쁜 댓글이 아니에요. 집단적 폭력이자 테러예요. 한 명 한 명은 익명이지만, 그 수천 개의 악플이 모이면 한 사람의 정신을 파괴할 수 있어요. 실제로 많은 아이돌이 악플 때문에 공황장애, 우울증, 심지어 극단적 선택까지 하잖아요.

제가 이 장면들을 구체적으로 쓴 이유는, 우리 모두가 공범일 수 있다는 걸 상기시키고 싶어서예요. 악플을 달지 않았어도, 웃으며 리트윗했다면? ‘재밌네’ 하고 공유했다면? 무심코 소비했다면? 우리도 그 폭력의 일부예요.


� 질문 16: 가난과 계급의 문제

독자: 예진이 아이돌이 된 근본적 이유가 ‘가난’ 때문이라는 게 가슴 아팠어요. 이 부분을 강조한 이유는요?

작가: 정말 중요한 질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아이돌을 "스타의 꿈을 꾸는 소녀들"로만 보지만, 실상은 경제적 계급 문제와 깊이 연결돼 있어요.

예진은 S외고에 갈 수 있었고, 공부도 잘했어요. 하지만 집이 가난했죠. 외고를 가려면 학비가 필요하고, 대학을 가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해요. 장학금만으로는 부족해요. 책, 과외, 학원, 생활비… 가난한 집 아이에게 대학은 너무 먼 곳이에요.

반면 연예 기획사는 계약금을 줘요. 숙소를 제공하고, 밥을 주고, 학비도 대주죠. 물론 나중에 다 갚아야 하지만, 당장 굶주린 사람에게는 미래의 빚보다 오늘의 밥이 중요해요.

"예진이가 아이돌이 된 건 춤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가난해서예요"라는 구절이 있죠. 물론 예진은 춤도 좋아했어요. 하지만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는 게 핵심이에요.

이건 비단 예진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많은 아이돌 지망생이 지방 저소득층 출신이에요. 서울의 부유한 집 아이들은 아이돌 안 해요. 유학 가거나 다른 진로를 택하죠. K-pop 산업은 가난한 소녀들의 꿈과 몸을 원료로 돌아갑니다.


� 질문 17: 피해자성과 주체성 사이

독자: 예진이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강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이 균형을 어떻게 잡으셨나요?

작가: 이게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이었어요. 피해자를 '약자’로만 그리면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되거든요.

예진은 분명 피해자예요. 착취당했고, 대상화됐고, 트라우마를 겪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무력한 존재는 아니에요. 예진은 계약서를 철저히 분석하고, 멤버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자살 시도 후 스스로 치유하고, 결국 자신의 기획사를 세워요

피해와 주체성은 양립 가능합니다. 오히려 많은 생존자가 피해 경험을 통해 더 강해지고, 다른 이를 돕는 주체가 되죠.

저는 예진을 "불쌍한 전직 아이돌"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과 싸워 이긴 생존자이자 변혁가로 그리고 싶었어요. 그녀의 상처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그녀의 힘을 드러내는 거죠. 이건 페미니즘 서사의 핵심이기도 해요. 여성을 구원받아야 할 공주가 아니라, 스스로 용을 무찌르고 나라를 세우는 주인공으로 그리는 거요.


� 질문 18: 남성 캐릭터의 부재

독자: 소설에 남성 캐릭터가 거의 없는데, 의도적인 선택인가요?

작가: 예리하게 보셨네요. 네, 매우 의도적입니다.

물론 권오석이라는 남성 화자가 있어요. 하지만 그를 제외하면, 남성 캐릭터는 거의 등장하지 않죠. 이주란, 유노이아 멤버들, 예니, 악플러들까지 대부분 여성이에요.

이유는 두 가지예요:

첫째, 여성의 이야기를 여성들끼리 나누게 하고 싶었어요. 흔히 여성 서사는 남성 캐릭터(연인, 아버지, 구원자)를 중심으로 전개되잖아요. 하지만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예진과 멤버들의 유대, 예진과 예니의 자매애, 예진과 권오석의 부녀 관계예요. 남성의 승인이나 사랑 없이도 이야기는 완결됩니다.

둘째, K-pop 산업의 구조를 드러내기 위해서예요. 물론 현실에서는 기획사 대표, 프로듀서, 투자자 대부분이 남성이죠. 하지만 이주란이라는 여성 악역을 둔 건, 여성도 가부장제의 공범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예요. 성별이 아니라 구조가 문제라는 거죠.

그렇다고 이게 ‘남성 혐오’ 소설은 아니에요. 권오석이 변화하는 과정은 남성도 페미니즘의 동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니까요.


� 질문 19: 엘리트만의 비극? - 성공한 아이돌을 선택한 이유

독자: 솔직히 의문이 드는 게요, 유노이아는 업계 탑이잖아요. 6년간 멤버당 수십억을 정산 받고, 아시아6개 도시, 미국 22개 도시 투어하고, 말 그대로 최상위 0.1%예요. 메모리아도 데뷔하자마자 1위 하는 '국민 걸그룹’이고. 보통 아이돌의 어두운 면을 다룬다고 하면 데뷔도 못하고 빚만 쌓이는, 지하 연습실에서 10년째 연습생 하는 그런 이야기를 생각하잖아요. 왜 굳이 최고로 성공한 엘리트들을 비극의 중심에 두셨나요?

작가: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예리한 질문입니다. 사실 이 질문을 예상했어요. 많은 분이 "수십억 벌었으면 피해자 코스프레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정확히 이겁니다: “성공했다고 해서 착취가 정당화되지 않는다.”

첫째, 성공한 사람만이 증언할 수 있는 영역이 있어요. 데뷔도 못한 연습생의 이야기는 분명 중요하지만, "아직 성공 못 했으니까 힘든 거지"라는 반론에 쉽게 묻혀요. 하지만 예진처럼 모든 걸 이룬 사람이 "그럼에도 불행했다"고 말할 때, 우리는 비로소 문제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시스템 자체에 있음을 직면하게 됩니다.

둘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예진은 수십억 자산가가 되었지만 자기 생리 주기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어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자유가 없었어요. 자신의 몸을 함부로 찍어 퍼뜨리는 디지털 성범죄의 타깃이 됐어요. 루미를 잃었어요. 자기 자신(김예진)을 잃어버렸어요. 그게 정당한 교환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셋째, 성공한 엘리트의 고통이 가시화될 때 구조가 바뀝니다. 하버드대 교수가 성폭력을 고발하면 파장이 크잖아요? 노벨상 수상자가 학계의 위계 폭력을 말하면 변화가 시작되고요. 유노이아 같은 탑 그룹이 이런 일을 겪었다면, 그 아래 수백 수천개의 그룹은 어떨까요? 예진의 증언은 빙산의 일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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