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석은 가슴을 꽉 채운 답답한 덩어리를 녹여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도무지 숨도 쉬지 못할 것 같다.
술 생각이 났다. 술을 마시자. 삼류 신파극처럼 실연의 아픔을 술로 달래며 이 덩어리를 알콜로 녹여버리자.
오석은 힘없는 걸음과 흐릿한 시야에 의지하여 녹두거리를 향했다. 아무 곳이라도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면 들어갈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달구지라는 학사주점이 눈에 띄어 무조건 발을 들이 밀었다.
머리를 스포츠형으로 짧게 깎은 점원이 아무 말없이 메뉴판을 내밀었다. 오석도 말없이 손가락으로 소주 한 병과 김치찌개를 시켰다.
곳곳에서 개강파티를 하고 있는지 여럿이 모여서 술 마시고 노래하는 소리가 왁자지껄하게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배경삼아 쓸쓸히 소주를 한 잔 따라 주욱 들이켰다. 빈 속이라 화끈거리는 느낌이 위벽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왔다.
학생들의 노래 소리들이 점점 커졌다. 그 사이에 잔 부딪는 소리, 웃음소리 따위가 뒤섞여 난장판을 이루었다.
시험거부를 거부해 과에서 배척 받았다. 시험거부를 거부한 이유였던 수현도 떠났다. 철저한 외톨이가 되었다. 외로움에 몸서리를 칠수록 즐겁게 술 마시며 노래하는 소리들이 오석의 머리를 후벼 팠다.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
순식간에 소주 한 병을 다 비웠다. 김치찌개는 반 넘어 남아 있고, 딸려 나온 공기밥에는 한 숫가락도 대지 않았지만 더 이상 여기 있었다간 머리가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릴 것 같았다.
오석은 서둘러 계산하고 달구지 밖으로 튀어나왔다. 튀어나와도 어디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집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안 먹던 술을 단숨에 소주 한병이나 들이켜 너무 어지러워 집에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경동맥 뛰는 느낌이 온 몸으로 전해졌다. 둥, 둥, 둥, 둥. 그 박자에 맞춰 골치도 쿡쿡 쑤셨다. 이 꼴로 집에 들어 갔다가는 어머니한테 한 시간 넘게 잔소리를 들을 판이다.
어딜 갈까?
하영의 자취방이 근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맙소사. 뭔 생각이야 이게? 오석은 자기 머리에 스스로 주먹질을 했다.
하긴 이 시간은 어차피 하영이 과외 수업하러 돌아다닐 시간이다. 하영은 외삼촌 댁과 이모 댁 말고도 이모가 소개한 또 다른 두 집까지 무려 네 집에서 과외를 하느라 저녁 시간에는 거의 얼굴 보기 힘든 아이다. 과외가 넷이면 월수입이 100만원이 넘는다. 거의 교수 월급을 방불케 했다.
이렇게 지독하게 살아가는 하영 앞에서 이런 꼴을 보여주긴 싫었다. 아마 사치부리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별 수 없다. 민경이다. 이럴 때 이야기할 상대는 민경 뿐이다.
오석은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선정릉을 향했다. 택시에서 내리자 마자 공중 전화통을 붙잡았다.
“여보세요? 저, 민경이 과 친군데, 민경이 있습니까?”
“전데요?”
민경의 목소리가 전화를 타고 온다.
“나 오석이야.”
“어머, 웬일이야?”
“잠깐만 볼 수 있어?”
“어딘데?”
“선정릉 앞 골목.“
“너, 술 마셨니?”
“미안해. 너무 힘들어. 좀 마셨어.”
“알았어. 곧 갈게. 그런데 선정릉 쪽은 이 시간에 좀 그런데, 미안한테 선릉역 만남의 장소에서 볼까?”
“응. 고마워.”
오석은 전화를 끊고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옮겨 간신히 선릉역 만남의 장소로 내려갔다. 하얀 색 간이 벤치가 팔각형 모양으로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잠시 누워 보려 했지만 노숙자가 드러 눕지 못하게 디자인되어 있어 교묘하게 몸이 비틀렸다. 할 수 없이 어지러운 몸뚱이를 최대한 많이 기대어 앉았다.
전화한지 20분 정도 지났을까? 민경이 나타났다. 지난 번 급히 음악회 가자고 불렀을 때와 거의 비슷한 복장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반바지 대신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다는 것.
“민경아….”
오석은 기체가 거의 다 빠진 풍선 같은 소리를 냈디/ 딸깍 딸깍 하는 샌들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민경의 목소리가 바로 위에서 들렸다. 썩 기분 좋은 목소리는 아니다.
“뭔 일이야? 사람 난처하게? 아빠 집에 없어서 망정이지. 밤에 이렇게 막 불러내면 곤란해.”
“미안해. 술 마시고 싶어 달구지에 갔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못 하겠더라.”
“그래서 지금 나랑 술 마시자고? 뭐래? 게다가 너 많이 취했어. 조금 쉬었다 술 깨면 집에 들어가.”
“까짓 죽기 밖에 더하겠어? 차라리 죽을래. 죽어버릴래.”
“죽기는 왜 죽는다고 그래? 가만가만. 여기서 이래갖곤 안 되겠다. 술 부터 깨워야지. 야, 이리 와.”
민경이 오석의 팔뚝을 잡아 일으켰다. 오석은 호리호리한 민경이 의외로 힘이 세어 잠시 놀랐다. 어렵지 않게 민경의 힘에 이끌려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일어서자마자 관성을 못 이기고 일어서는 방향 쪽으로 몸이 넘어갔다.
결국 오석은 민경에게 질질 끌리다시피 하며 간신히 역 근처 까페 소파에 던져지듯 앉았다.
푹신한 의자에 앉자마자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민경이 얼른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고마워.”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보지만 나오는 눈물이 닦는 손수건의 흡수력을 압도했다. 결국 처리되지 못한 눈물 방울들이 테이블 위로 뚝뚝 떨어졌다.
오석은 이런 꼴이 부끄러워 결국 얼굴을 팔에 파묻고 이를 악 물었다.
“왜 그래? 대체 뭔 일이야?”
“나, 나, 수현이가.”
“어머! 어쩜 좋아. 예감이 너무 안 좋더라니.”
순간 민경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수현이라는 이름만 듣고도 바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챈 것 이다. 민경이 아까 보다 반 옥타브 높은 톤으로 말했다.
“미안해. 아, 너무 미안해.”
이 말에 오석은 나오던 눈물이 한 순간에 말라 버리는 기적을 경험했다. 예감은 또 뭐고, 오석이 실연당했는데 왜 민경이 미안 하다는 걸까?
눈물이 말라버린 자리에 이성이 차갑게 밀고 들어왔다. 오석은 고개를 다시 세우고 민경을 몰아붙였다.
“네가 왜 미안한데? 이상하잖아? 수현이는 네 이름을 들먹이고, 넌 갑자기 미안하다 그러고?”
“너랑 수현이가 과에서 따돌림 당하는 거 보기 싫어서, 수현이한테도 우리 학회 같이 하자고 했어. 곽재훈이랑 막 과격한 애들 없고 수민 언니랑 나랑, 하영이 뿐이고, 이념 그런 거 말고 주로 문학 같이 볼 거라고 했어.”
“그랬더니?”
“수현이가 ‘오석이는?’ 그러더라고, 그래서 ‘오석이는 생각해 본다고 했는데, 아마 같이 할 것 같아.’ 그랬어. 그런데 수현이가 갑자기 ‘그럼 나보다 오석이한테 먼저 물어본 거야?’ 이러는 거야.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응.’ 하고 대답했는데, 수현이 눈 빛이 좀 섬찟했어. 그러더니 ‘너희 방학 중에 따로 만난 거야?’ 이러는 거야. 아차 했어. 그래서 너희 둘 싸우겠구나 어쩌지 이러고 있었는데. 설마 깨질 거라곤 생각 못했어.”
“싸우지 않았고, 깨지지 않았어. 일방적으로 버림받았어.”
“말도 안 돼. 내가 나서서 할 말은 아니지만, 그게 화가 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깨질 것 까지는 없는데, 좀 그렇다. 아, 이런.”
“또 뭐야?”
“학회 이야기하다 수현이가 또 그러는 거야. ‘하영이 데모 많이 하는 애잖아? 그럼 학회 같이 하면 나도, 오석이도 데모해야 해?’. 그래서 ‘그건 너희 선택이지’ 그러고 말았어. 그러다 괜히 농담 삼아 ‘하영이 요즘 과외 하느라 바빠서 데모할 시간도 없을 걸?’ 그랬는데 수현이 얼굴이 확 바뀌는 거야. 순간 호랑이 보는 줄 알았어.”
“그 과외들 내가 구해 준 거거든.”
“그건 나도 아는데, 그게 그렇게 성낼 일인가? 아니, 생각해 보니 나도 화가 난다. 너 나한테는 과외 하나도 소개시켜 준 적 없잖아? 그런데 하영이 한테 그렇게 많이 소개시켜 주었다고?”
“아니, 난 외삼촌 댁에 소개시켜 준 것뿐인데, 외삼촌이 이모한테, 또 이모가 자기 친구들한테 소개시켜 준 거야.”
오석은 하영의 어려운 가정환경을 알게 되어서 그랬다는 말이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막았다. 자존심 강한 하영이 다른 여자 동기들한테 절대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일 것 같아서였다.
순간 술기운이 확 치밀어 올랐다. 결국 오석은 커피잔을 휘두르며 혀 꼬부라진 말을 뱉고 말았다.
“수현이를 저주할 거야. 수현이는 마녀야!”
민경이 당황하며 커피잔을 빼앗고 팔을 잡았다.
“이러지 마. 수현인 내 친구야. 그런 말 듣기 싫어.”
“이런 꼴 안 당해 봤으니 그렇게 쉽게 말하지?”
“함부로 말하지 마. 나도 못지않게 많이 아팠던 적 있어.”
“그럼 너도?”
“더 말하고 싶지 않아.”
민경이가 오석의 눈빛을 피하며 잘라 말했다.
오석이 다시 테이블에 엎드리며 웅얼거린다.
“수현이, 영영 안 돌아오겠지?”
민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석이 다시 웅얼댄다.
“뭐, 그러라지. 그런데 실연당한 것 보다 더 힘들었던 게 이런 얘기 들어줄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거야. 네가 있어 정말 다행이야. 고마워. 정말 고마워.”
이때 민경의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오석의 숨골에 틀어박히듯 들려왔다.
“미안한데, 나한테 자꾸 이러지 마. 네 외로움 나한테 하소연 하지 마. 우리과 애들이 너한테 뭘 어떻게 한 건 없어. 네가 먼저 아집의 담을 쌓고 웅크리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그랬던 건….”
“시인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마음에 미움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어쩌고 하는 말 하려는 거지? 그만. 더 말하지 말고 들어. 이유야 뭐건 간에 그런 식으로 네가 친구들 앞에 담을 쌓은 거야. 그러니 누가 널 좋다고 하겠니?”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래.”
민경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 기세에 밀린 오석이 간신히 한 마디 모기소리처럼 짜내어 봤다.
“그럼 내가 뭘 해야 해?”
“네 길 가는 건 좋아. 하지만 외곬은 옳지 않아. 데모 몇 번 한다고 네 시가 망가지니? 난 너의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신화적인 발상에 동의하지 않아.”
“와, 그 말 아프다.”
“누가 너한테 무조건 나가서 투쟁하라고 강요했니? 그런데 너랑 수현이는 너희들 길만 옳고 너희들은 틀렸다는 식으로 오만하게 행동했어. 나도 알아. 운동권이 독선적인 모습 보이는 거. 하지만 너희도 그 점에선 다르지 않았어. 우리가 너희를 외톨이로 만든 것도 있을 거야. 하지만 너희가 우릴 따돌린 것도 분명히 있어. 아, 이젠 너희가 아니겠구나.”
“그럼 나도 학회 모임에 나가면 될까?”
“그럼 적어도 나랑 하영이는 네 편이 되어 줄 거야. 물론 너도 조금은 우리 편이 되어 주어야 하고.”
“알았어. 같이 해 볼 게. 충고 고마워.”
오석이 머리를 깊게 숙이고 애꿎은 커피잔 손잡이만 문지르며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 풀 죽고 불쌍해 보였는지 민경의 목소리에도 조금은 온기가 돌아왔다.
“미안해. 말이 좀 심했나?”
“아냐. 다 옳은 말이야. 내가 그동안 잘못 살았어.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라 꾸지람이었나봐.”
“아냐, 아냐. 무슨 소리야? 누가 누굴 꾸짖을 수 있어? 꾸짖자고 한 말 아니야. 그러지 마. 더 미안해지니까.”
“그냥 지금 다 이야기해. 매도 한 번에 맞는 게 좋으니까.”
오석은 눈을 감고 고개를 푹 숙인 뒤 마치 총살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비장하게 귀를 열었다. 그러자 민경이 오석의 발을 툭툭 걷어찼다.
“고개 들어.”
“아냐. 무슨 말이든 다 해. 찍 소리 안하고 들을 테니까.”
“나도 너한테 큰 소리 칠 입장 아니야. 난 뭐 열심히 싸우고 그런 줄 아니? 아니야. 나도 시험 안 친 거 외엔 회색지대를 맴돌았어. 마음을 어디에 붙여야 할지 모르겠더라. 너랑 수현이가 커플 되고 쏙 빠지니까 더 그랬고. 그래서 수민 언니 학회 들어갔는데, 하영이랑은 좀 사이가 어색해서, 여기 너랑 수현이가 같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건데, 그만 이 사달이 났네. 고등학교 때 사귀던 남자친구 하고도 깨졌는데, 남의 커플까지 깼네.”
“고등학교 때 남자친구? 아, 너도?”
“그 녀석이 먼저 그만 하자더라. 말도 안 되는 이유 대면서. 짜증나. 내가 채인 거야, 세상에.”
“너도 외롭구나.”
“원래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는 동물 아닐까? 배고프듯이?”
오석은 슬슬 술이 깨는 모양, 이 시간에 여학생을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은 너무 매너 없는 짓이란 생각이 떠올랐다. 부끄러워진 오석은 얼른 점잖고 얌전한 모습을 연출했다.
“오늘 너무 고마웠어. 너 아니었으면 투신이라도 했을지 몰라.”
“무슨 말을 그렇게 끔찍하게 해?”
“절망의 골이 깊었으니까.”
“수현이, 생각보다 독하네?”
“수현이야 뭔 잘못이 있겠어? 이 세상이 그런 거지 뭐. 수현이도 거기서 살아남으려고 그랬을 거야. 겉으로는 그래도 속으로는 외로울 거야. 이젠 수현이가 밉지 않아. 불쌍해.”
“많이 사랑했나봐?”
“그런 건 잘 모르겠고, 남은 골은 확실히 깊네.”
오석은 휘청이는 몸을 코어 근육에 힘을 주어 버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집까지 바래다 주어야 매너지? 자, 그만 들어가자.”
“그 꼴로 우리 집 앞에 오겠다고? 그냥 너 먼저 들어가. 난 좀 더 있다 알아서 갈게.”
“혼자 갈 수 있어?”
“물론. 선릉역 근처는 박상은 사건 이후 오히려 안전지대 됐어. 경찰이 꽤 신경 쓰거든.”
“그럼 먼저 갈게. 안녕. 고마워.”
민경을 카페에 남겨두고 오석은 지(之)자 걸음으로 비틀비틀 몸을 움직였다. 정신과 무관하게 육체는 아직도 알코올의 지배를 받고 있는 모양이다.
집에 들어서자, 웬 술이냐며 어머니가 잔소리를 퍼부어 대었지만, 그 소리를 무시하고 방에 들어가 침대에 엎드렸다. 카세트의 플레이 단추를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흘러나왔다.
자살 타령까지 하다 들어와 레퀴엠을 들으니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오석은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로 테입을 바꿔 끼웠다.
아름다운 그러나 쓸쓸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흐느끼는듯한, 애원하는듯한 클라리넷 소리가 딱 오석의 마음이다. 클라리넷이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전화해, 당장.”
그래. 전화해야겠다.
오석은 방 밖으로 뛰어나가 수화기를 들고 너무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아, 그 목소리가 들린다. 너무도 듣고 싶었던 그 목소리. 하지만 차마 대답은 못하겠다.
“권정우입니다. 아 참, Dinu speaking. What can I do for you?”
갑자기 영어가 들렸다. 밤 늦은 시간이라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전화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오석은 대답할까 말까 망설이다 그만 수화기를 내려버렸다.
오늘은 아니다. 좀 더 정신이 맑을 때 하자. 오석은 멀지 않은 시간 안에 먼저 손을 내밀기로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