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장편소설 디누 2부 1권 10화 레퀴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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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는 풀고 있던 문제집을 탁 소리가 나게 엎어버렸다. 모처럼 마음잡고 공부나 좀 해 보려 했는데, 이놈의 공부가 하고자 하면 할수록 정성을 배신했다.
달리 할 일이 없어 뻐근한 목덜미만 슬슬 문질렀다. 그러나 그 편안한 감촉이 목을 휘감고 있던 지네트의 갸냘픈 팔의 기억을 되살려 내자 더 이상 편안함에 안주할 수 없게 되었다.
생각이 원숭이처럼 두개골 안에서 날뛰었다.
어째서 지네트를 거부했을까?
아녜스에게 의리, 정조를 지키기 위해? 그럴 리가 없다. 나경이를 사랑해서? 그건 모르겠다. 아니, 사랑이라는 것 자체를 확신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인정하기 싫지만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질투!
한번 떠오른 ‘질투’라는 단어가 강박관념처럼 계속 떠올랐다. 이말을 떠올리지 않으려 할수록 오히려 줄을 지어 떠올랐다.
질투, 질투, 질투, 질투.
지네트의 뛰어난 재능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녜스와 한창 같이 연주하던 시절에도 이미 아녜스가 지네트에 한참 미치지 못하다는 정도는 뻔히 알고 있었다. 지네트와 클래스메이트였던 아녜스 역시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으니까.
그러나 지네트의 재능이 아녜스가 아니라 자신을 뛰어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그만 질투의 불길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 단어를 떠올리고 싶지 않은 방어기제 때문에 그만 엉뚱한 행동을 하고 말았다.
연주를 중단하고, 지네트를 거칠게 거절하고.
뒤늦은 후회겠지만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미안해 나는 아직 아녜스와 정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나경이에게 마음이 가고 있어서 고민이야. 여기에 네 마음까지 받아주긴 어려워.”
어째서 이렇게 정중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그 치졸함이 부끄러웠다. 이제 남은 것은 깊은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일뿐.
정우는 머리 안의 원숭이를 내쫓기 위해 옆 좌석에서 공부하려고 끙끙대며 애를 쓰는 나경의 모습을 곁눈질로 훔쳐보았다. 안 되는 공부를 억지로 하려는 모습이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내 원숭이가 다시 뛰어들었다. 지네트 집을 나서며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렇게 뛰쳐나오던 순간 분명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을 지네트의 모습이 상상력의 힘으로 생생하게 떠올랐다.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혹시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까? 혹시 엉뚱한 짓이라도?
음악만 했어야 했다. 의지를 굳건히 하고, 계속 연주했어야 했다. 어떠한 육체적 접촉도 없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평생을 함께 할, 그를 이해해 주고,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그런 벗을 얻었을 것이다.
사악한 생각을 했던 것이 잘못이다. 지네트를 여자로서 얻고 싶다는, 그래서 모든 것을 나누어 갖고 싶다는 사악한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랐던 것이 잘못이다. 그 거대한 저택, 뵈젠도르퍼, 그 모든 것들이 불러일으킨 악마의 유혹들. 그러나 질투 때문에 그마저 끝까지 할 수 없었다. 어째서 그 천재가 지네트란 말인가? 어째서 제라르, 쟈코모, 제롬, 필립 따위가 아니라 지네트란 말인가?
정우는 끝없는 정신적 자학 속으로 빠져들지 않으려 나경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러다 마악 고개를 들고 기지개를 켜는 나경과 눈이 마주쳤다. 싱겁게 피식 웃어버리고 만 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경의 등을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열심히 하던데? 이제 좀 쉴래?”
“점심 먹자. 배고파.”
나경이 미소를 지으며 살포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밖으로 나서자마자 영하 13도의 매서운 바람이 두 뺨을 마구 두드리며 지나갔다. 순식간에 나경의 뺨이 바알갛게 물들었다. 정우도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보호하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었다.
“어이. 추워. 어디서 먹을까?”
정우가 덜덜 떨며 간신히 음파를 만들어 나경의 고막까지 전달시켰다.
“글쎄…. 너희 집에 또 갈까?”
“오늘은 엄마 있어. 여학생 데리고 집에 들어오면 내 머리에 불 질러 버릴 걸?”
“그럼….” 나경이 손뼉을 탁 친다. “우리 집 가자.”
“뭐?”
“놀라긴? 나도 너희 집에서 밥 얻어먹은 적이 있으니까, 그 원수를 갚아야 할 것 아냐?”
“아무도 없어?”
“당근이지! 아빠는 요즘 같이 감기 환자 많은 겨울이 대목 이잖아? 병원에서 숨 쉴 틈도 없을 거고, 엄마는 시립교향악단 정규 연주회 리허설 관계로 하루 종일 연습하느라 붙잡혀 있을 거야. 협연자가 이마누엘 악스라던가? 유선이는 오늘 피아노 레슨 하는 날이고. 오늘 우리 집 완전 전멸이야.”
나경이 자기 집 열쇠를 꺼내어 정우의 눈앞에 마치 최면술이라도 걸려는 양 달랑달랑 흔들어 보였다.
“그럼 뭐 아무 상관없겠지.”
“야, 파란 불이다. 뛰어!”
나경이 갑자기 깜박이기 시작한 보행신호등을 향해 힘껏 달렸다. 정우도 얼떨결에 나경의 뒤를 따라 달린다. 뜻밖에도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야! 무슨 여자애 달리기가 이렇게 빨라?”
“100미터 14초 정도 밖에 안 되는 걸?”
“엑? 나하고 1초 차이도 안나! 남자애들 중에도 너 보다 빠른 애 별로 없겠다.”
“잡소리 하지 마라. 맞는 수 있다. 헉 헉.”
나경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그래? 그럼 진짜 맞나 안 맞나, 잡소리 하나 더해야지.”
“일단 해 봐.”
“이번에 서울시향 프로그램이 임마누엘 악스랑 협연하는 거지?”
“그렇다나 봐.”
“혹시 집에 초대권 같은 것은 없을까?”
“수두룩하지.”
“빙고! 오늘 수입 잡았다.”
“얼! 너 같이 건방진 애가 남 연주하는 것도 들어? 다 무시할 거 같은데?”
“무슨 소리야? 나 겸손해.”
“그 겸손,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좀 보여주시지.”
이렇게 옥신각신 하다 보니 나경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나타났다. 정우는 한 칸 당 창문이 몇 개인가 세어보았다.
하나, 둘, 셋, 네 개다. 그 중 두개는 크고 두개는 작았다. 그렇다면 48평 아니면 51평. 웃음이 나왔다. 참 별난 재주도 가지고 있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많이 번 어머니 덕분인가?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나경이 13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생각보다 좁았다. 정우는 좁은 공간을 나경과 단 둘이 공유하는 상황이 어색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식하지 않았는데, 지네트와의 일이 있고 나서 나경이 계속 의식되었다.
정우는 나경의 숨결이 느껴지면서 들숨 한번 날숨 한번 마다 머리카락이 번쩍 일어서는 착각에 빠졌다. 엘리베이터의 약간 희미한 조명이 콘트라스트를 강화하자, 나경의 아름다운 얼굴이 더욱 신비롭게 보였다.
순간 정우의 아랫도리가 비정상적, 아니 그 나이 남자 청소년에게는 지극히 정상적인 방식으로 팽창했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개미구멍이라도 찾고 싶어졌다.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정우는 마치 천국의 문이 열리는 것처럼 평상심을 되찾았다.
나경이 열쇠를 비틀어 문을 열었다.
“자! 들어와!”
“당케 셴.”
정우는 주저 없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세련되고 문화적 수준이 높은, 그러면서도 부유한 그런 집에서 주로 나는 독특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러나 이미 지네트 집을 한번 구경한 바 있는 정우 눈에는 그저 수수하게 보일 뿐이었다.
“집이 엄청나게 깔끔하네. 네 엄마 성격 안 봐도 알 만하다.”
정우가 가죽 소파에 몸을 던지며 한마디 던졌다.
“그렇지?”
나경이 눈을 찡긋해 보이며 평소 버릇대로 고운 목소리의 레시타티브를 읊었다.
“그래서 정말로 피곤하다니까. 우리 엄마 잔소리, 마르지 않는 잔소리!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이건 마라, 저건 마라.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또 잔소리!”
“아하, 그럼 나도 잔소리나 한번 해야지.”
정우가 레시타티브로 응수했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알았어. 이 돼지야. 그래 뭐 먹고 싶냐? 계란 들어간 라면, 계란 없는 라면 중 하나 선택해.”
“그럴 걸 왜 물어봐? 너 할 줄 아는 게 라면뿐이야?”
“싫어?”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럼 주는 대로 드세요.”
나경이 쪼르르 주방으로 달려가 냄비에 라면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그 동안 거실을 두리번거리던 정우의 눈이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딱 멈추었다.
‘웬 피아노지? 아 참, 최나경 동생이 최유선이지?’
피아노 뚜껑을 여니 야마하라는 글자 아래 가지런한 건반이 예뻤다. 정우는 집에서 업 라이트 피아노만 쓰다 보니 어디 가더라도 그랜드 피아노만 보면 손이 갔다.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드리려는데 문득 벽에 기대어 있는 기타가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한 정우는 피아노 뚜껑을 닫고 기타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몇 번 뚱뚱거릴 뿐, 별 신통한 소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음계만 몇 번 뜯어보던 정우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기타를 원래 자리에 놓았다.
기타 소리를 듣고 나경이 다가오더니 경이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앗싸. 처음으로 정우 기를 팍팍 꺾을 기회가 왔다. 크크크. 자,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나경이 쪼르르 달려와 기타를 집어 들고 소파에 앉아 다리를 살짝 포갠 자세를 취했다.
“너 기타 쳐?”
“일단 들어 보셔.”
정우는 나경이 무엇을 연주할까 호기심에 가득 차 귀를 쫑긋했다. 나경이 연주를 시작하자 정우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나경이 연주하는 곡이 소르의 ‘모차르트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인 것이다.
“아니, 이건 그냥 취미 수준이 아니잖아?”
정우가 감탄사를 던졌다.
그러자 나경이 정우를 향해 코를 높이 치켜 올렸다.
“어때? 기가 팍팍 죽지?”
“맞아. 기가 팍팍 죽어. 너 바이올린 때려치우고 기타 전공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
“그럼 엄마한테 기타가 먼저 부서지나, 내가 먼저 부서지나 확인해야 할 걸? 안 그래도 그 생각 안 해 본 게 아닌데, 기타 쳐서 갈 수 있는 학교라는 게 피어선 신학대학, 서울예대, 뭐 그런 라인이라서. 우리 엄마 눈에는 아예 ‘대학’으로 취급이 안 돼.”
“그렇다고 바이올린은?”
“나 정도면 세종대 정도는 비벼 보지. 근데 그마저도 집에서 쫓겨날 판이야. 엄마 머릿속 대학 지도에는 ‘세종대’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거든.”
“세종대 정도면 괜찮잖아?”
“엄마한테 한번 그렇게 말해봐. ‘천재 디누가 인정한 세종대’라고. 아니면 네가 세종대 들어가서 센세이션을 일으켜 보던가?”
“음, 그건 좀.”
“거 봐.”
“딱하네. 대신 이렇게 말씀드려 볼 수는 있어. 파가니니가 가장 좋아했던 악기가 기타였다는 것 아시나요? 기타를 무시하는 바이올린 교수님이라뇨? 이럼 화내실까?”
“교양있게 대답하시느라 화는 안 낼거야. 대신 기타 좋은 악기죠. 그런데 기타를 무시하는게 아니라 기타 전공이 있는 학교가 문제랍니다. 이렇게 대답할 걸.”
“그거 참. 이거 영 균형이 안 맞아. 뭔가 잘못되었어. 야, 그나저나 뭔 소리지? 물 끓어 넘치는 소리 아니냐?”
“아차!”
나경이 손가락을 한번 튀긴 뒤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다시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야! 야! 큰일 났어.”
“왜 라면 끓이다 불이라도 냈어?”
“아니. 불은 껐어. 그런데 아빠가 차에서 내리고 있어.”
“왓 더. 집에 아무도 없을 거라고 했잖아? 어떡하지?”
정우는 문득 어제 신문에 난 기사를 떠올렸다. 딸과 어떤 남자가 단 둘이 방에 있는 것을 본 아버지가 격분하여 그 남자를 반신불수가 될 때 까지 두드려 팼다는 기사. 이상하게 아버지들은 딸의 남자친구를 결투해야 마땅한 연적으로 여기는 것 같다.
오히려 나경이 금새 평정을 되찾았다.
“어떡하긴 어떡해? 숨어야지.”
“숨다니 어디로?”
“내 방에. 네 신발하고 옷하고 다 챙겨서 내 방에 들어가 있어. 아빠 다시 나가실 때까지 찍 소리도 내지 말고 거기서 기다려. 병원 일 바쁘니까 아마 금방 나가실 거야. 아빠는 특별한 일 없으면 내 방엔 절대 안 들어가니까 거기 있으면 별 일 없을 거야. 자, 어서!”
나경은 현관에서 정우의 신발을 들어 정우의 가슴팍에 집어 던지고, 어리둥절해 하는 정우를 방에 밀어 넣고 문을 닫아버렸다.
“나, 이거야 원.”
얼떨결에 밀려들어온 정우는 차츰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뒤 슬금슬금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아~빠.”
밖에서는 아빠에게 애교를 떠는 나경의 목소리가 방문 틈 사이로 살금살금 새어 들어왔다.
방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나경이 평소 보여주는 덜렁거리는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단색의 소박한 벽지에 구석 구석 꽤나 신경 써서 만들고 배치한 이런 저런 장식, 마스코트, 리본 따위가 앙증맞고 귀여운 엑센트를 주었다. 책장에 있는 책이란 책은 모두 알록달록한 예쁜 포장지로 포장되어 있고, 아기자기한 사진틀로 균형 있게 장식되어 있었다.
정우는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하나하나 뽑아 보았다. 뽑을 때 마다 순정만화, 하이틴 로맨스, 할리퀸 시리즈 등등의 책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왜 이렇게 포장지로 악착같이 싸 놓았는지 알만했다. 엄마한테 들키면 큰일 나겠지. 어쨌든 정우가 읽을만한 책은 아니다.
달리 할 일이 없어 침대위에 펄썩 드러누워 보았다. 나경의 침대에 누워있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했다.
우유냄새 비슷하기도 하고 자스민 냄새 비슷하기도 한 향긋한 냄새가 은은히 코를 적셔왔다. 이게 시인들이 자주 노래하는 여인의 향기일까? 잠시 정우는 음탕한 상상 속에 빠졌다.
그러나 그 음탕한 상상은 서서히 강하게 조여 오는 하복부의 팽창감 때문에 이내 흩어지고 말았다.
그 팽창감의 진원지는 방광이었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뭔가 다른 생각을 해서 방광에 쏠리는 신경을 돌려야 했다.
정우는 반사적으로 책장을 장식한 사진틀 속의 사진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가지가지 포즈를 하고 찍은 나경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혼자 찍은 사진도 있었고, 지네트와 찍은 사진도 있었다. 조금 건방져 보이는 키가 큰 소녀는 정우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최유선이다.
‘와, 유선이가 그새 저렇게 많이 컸구나. 키가 나랑 비슷하겠는데?’
정우는 심심풀이로, 그 사진들 중 가장 예뻐 보이는 사진을 하나 골라 사진틀에서 꺼내 보았다. 그런데 사진을 꺼낸 다음에도 사진틀에 뒤집어진 사진이 또 하나 남아 있었다.
‘뭐지 이건?’
뒤집힌 사진을 조심스럽게 뽑아보았다.
비장한 모습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는 남자의 사진이었다. 한참 그 사진을 바라보던 정우는, 비록 선명하지 않은 오래된 흑백 사진이지만 그 주인공이 바로 자신임을 알아보았다. 3년 전 취리히 콩쿠르에서2위 수상했을 때 신문 기사를 잘라 놓은 것이었다.
정우는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사진틀을 원상복귀 시켰다.
“야! 이제 나와!”
날카로운 나경의 목소리가 들리자, 방광의 참을 수 없는 압박감이 되살아났다. 후다닥 방문을 열고 뛰어나가 최단 거리를 달려 화장실로 뛰어들었다.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문자 그대로의 카타르시스를 만끽하고 나서야 아파테이아를 되찾고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어때? 갇혀 있는 동안 답답하지 않았니?”
“전혀. 아주 기분 좋았어. 다만 오줌 마려워 미칠 뻔했다는 것만 빼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나경이 폭발하듯 웃음을 터뜨린다.
“왜?”
“하하하하! 그때 네 표정을 봤어야 했는데, 아이고, 아까워라. 방에 몰래 카메라라도 설치해 둘 걸 그랬나봐.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