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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May 10. 2020

학교가 최전선? 세월호에서 무엇을 배웠나?

등교개학의 강행, 거대한 세월호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대통령께서 학교를 방문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니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보수언론의 악의적인 왜곡 보도라고 생각했는데, 청와대에서 저렇게 자랑스럽게 선전물까지 만들어 돌렸다. 저 말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 그 무감각함과 무심함이 너무 두렵다.  그런데 대통령께서 심지어 이런 말씀까지 하셨다고 한다.


일상과 방역을 함께 해나가는 생활 속 거리 두기의 성공도 학교 방역의 성공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말 이러시면 안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대통령만은 그러시면 안된다. 세월호 유가족과 동조 단식을 했던 분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기까지 어떤 형태로든 세월호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에게 마음의 빚을 진, 그리고 져야만 하는 분이다.


대통령은  조국 전 장관이 아니라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마음의 빚을  져야 힌다. 심지어 유족에게도 아니다. 희생자, 학생들에게 진 빚이다. 저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었을때도 그랬다. 당신들이 잘나서 당선된 것이 아니다. 이게 모두 세월호의 핏값이다라고.


세월호의 교훈은 무엇인가? 왜 사람들은 그토록 세월호에 아파했을까?  수많은 노동자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이천 화재에 어째서 세월호만큼의 관심과 분노가 모이지 않느냐고 개탄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물론 개탄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유는 따져 보아야 한다. 두 참사의  차이는 희생자의 숫자도 숫자지만, 무엇보다도  어린 학생들이 희생되었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부모가 자녀의 보호자이듯, 이 사회의 어른들은 어린이 청소년들의 보호자다. 보호해야 할 어린 학생들을 눈 앞에서 잃어버렸기에, 그 죄책감 때문에 사람들은 그토록 깊은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세월호의 교훈은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 아이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뼈아픈 실책에 대한 공범의식이 그토록 그 사건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성찰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세월호 아이들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면, 그 교훈을 잊지 않는다면, 지지자들 중 상당수가 각종 소셜 미디어 프로필에서 노란 리본을 자랑하고 있는 그런 위치라면,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위험이 남아있을 때 아이들을 "일단 한 번 굴려 보고 괜찮은지 봅시다."라는 식의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더군다나 현재 학교의 상태는 1%의 위험이 아니다. 교육부는 무슨 통계 마사지로 학교 99%가 방역준비를 마쳤다고 떠드는지 모르겠지만, 서울, 경기, 인천 지역의 학교는 방역의 1번 항목인 교실내 거리두기조차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환경이다. 박근혜 정권 말기였다면 차라리 가능했을 것이다. 그때는 20명 이하로까지 줄어들 조짐을 보였던 학급당 인원이 이 세월호 교훈을 잊지 않는 정부가 들어선 뒤 오히려 야금야금 늘어 25명-35명 사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소독약도 부족하고, 마스크도 부족하다. 무엇보다 수업중에 의심환자가 발생했을때 교실 밖으로 데려갈 인력도 없다. 교사가 데려간다고? 그럼 교실엔 누가 있고?


지금 도서관도 업무를 완전재개하지 않고 있다. 대출 반납 업무만 하고, 열람업무는 하지 않고 있다. 관내 식당이나 카페도 가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학교만 어린 학생들을 데리고 업무의 완전재개를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하늘이 두쪽 나도 그 무시무시한 급식은 해야 하고, 심지어 방과후 수업까지 하라고 한다. 우리 아이들이 급식조리원, 방과후 강사 먹여살려주는 소득원인가?


차라리 예산을 마련해서 그분들 돈을 주던가, 온라인 수업 보조원으로 업무를 주던가 해라. 교사들 중 누구도 그분들이 조리 하지 않는데도 월급받는다고 "일 안해도 월급 나오는 사람"이라며 입을 비쭉 거리지 않을 것이다.


그 분들이 "일 하느라" 아이들이 아픈것 보다는 차라리 놀고 먹는 꼴 보며 아이들이 멀쩡한게 낫다. 게다가 아이들은 아이들이고, 교사들부터 불안하다. 안그래도 건강한 교사조차 환절기마다 감기 한번씩은 꼭 거쳐 가야 하는 곳이 학교다. 수십, 수백명을 밀접 접촉하기 때문에 피해갈 수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코로나다.


학교는 감염병에 취약한 곳이다. 어느 의료인의 말대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좋아하는 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제한된 구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장시간 밀집된 생활을 하며, 더구나 단체 급식까지 하는데, 그 사람들은 신진대사와 활동량이 왕성한 어린이, 청소년이다. 게다가 그들은 고령자, 기저질환자, 임신 등 고위험군을 상당수 포함하고 있는 교사들과 함께 생활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과를 올리기에 이 보다 더 좋은 환경이 어디 있는가?


상황이 이런데도, 심지어 아직 어른들도 완전히 안전하다고 장담하지 못하는데, 미리부터 아이들을  이 위험한 환경으로 몰어 넣으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만약 이 배가 안전한지 아닌지 확신은 못하지만 일단 확인해 보기 위해  학생들을 태우고 배를 출항시켜 보겠다고 결정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게 지금 등교개학 강행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러니 대통령의 저 말씀은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

학교는 방역의 최후방입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학교만큼은 지키겠습니다. 어른들이 생활속 거리두기를 성공해야 아이들에게 학교를 돌려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담벼락에 떠드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무력한 처지가 참 한심하고 한스럽다. 아마 같이 죽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던 단원고등학교 선생님들 심정이 그랬으리라.


그나마 할 수 있는 일, 청원이라도 많이 했으면 한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8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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