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8 이태원 사태
5월 6일.정부는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활속 방역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그 전에 이미 5월 13일에 고등학교 3학년의 등교개학을 실시한다는 발표가 나와 있는 타였다.
그러다 5월 9일 이태원 클럽발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하면서 모든 것이 뒤로 미뤄졌다. 느닷없는 국민적인 분노가 일어났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연휴기간인 4월 30일-5월 5일(젠장 학교는 재량 휴업 다 까먹어서 연휴 아니었다)은 엄연히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었는데, 그 며칠을 못 참고 철없는 젊은 것들이 그저 놀고 싶어서 일을 다 망쳤다.
정말 그런가? 클럽에 간 젊은이들 외에 다른 어른들은 그 연휴기간을 "마지막 고비"라고 생각하고 조신하게들 보냈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클럽은 안되고, 비행기는 되나? 이태원은 안되고, 북창동은 되나? 전국 주요 관광지마다 빽빽하게 늘어선 사람들, 마치 전시 난민촌을 연상케 하던 한강 시민공원의 수많은 사람들은 그럼 "마지막 고비"를 위해 조신하게들 행동한 것일까?
그럼 다들 왜 그랬을까? 국민이 단체로 정신이 나갔나? 그럴리가. 이미 정부로부터 은연중에 "놀아도 좋다"는 암묵적인 신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5월 6일 부터 생활방역 전환이었다는 따위의 형식논리는 내세우지 말자. 만약 정말로 정부가 그런 생각이었으면 4월 29일에 오히려 "지금이 마지막 고비다. 황금 연휴는 가족과 집에서 보내시라. 간곡히 부탁한다." 이런 식의 담화를 냈어야 했다. 하지만 실상은?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5031984748656
물론 질본에서는 그렇게 발표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4월 29일에 열린 3차 회의에서 정부(정세균 총리 개인 생각이 아닐 것이다)는 질병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무릎쓰고 "이 연휴가 지나면 생활방역으로 전환" 이라고 못을 박았다. 질본에서 요청한 무작위 샘플 검사를 통한 지역사회 감염 확인도 묵살되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납득이 안된다. 연휴기간에 관광지며 유흥가가 미어터질 것이 뻔히 보이는데, 그 영향 평가를 위한 일주일도 안기다리고 연휴 끝나면 바로 '생활방역' 이라고 선포한다?
한국인은 머리가 잘 돌아가는 종족이다. 이 속에 숨은 메시지는 금방 읽을 수 있다. 잠복기가 2주인데 연휴기간 바로 다음날 감염병 위기등급 조정까지 거론된다는 뜻은 적어도 연휴 2주전에 이미 상황이 좋아졌다는 뜻 아닌가?
물론 질본은 이런 오해를 해서는 안된다며 강력하게 경계를 유지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미 대통령도, 총리도 다 만면에 미소를 띠고 헤헤거리는데 질본의 우려야, "노파심" 정도로 취급되었던 것이 사실 아닌가? 휴일 전날인 4월 29자 신문을 보라. "아직 모른다. 위험하니 연휴를 조신하게 보내자."라는 논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소상공인, 요식업자들 이제 기좀 펴고 살게, 가서 좀 팔아주고, 먹어주고, 마셔주자는 착한 소비마저 조장하고 있었다.
실제로 정부도 그렇게 경기가 좀 살아나고 자영업자들의 숨통도 트이기를 바랬던 것 아닌가? 모두가 위험성을 경고하는 연휴기간동안 정부는 유흥을 자제시키거나 사회적 밀도를 낮추는 그 어떤 명시적인 조치도 하지 않았다. 5월 6일이 되기도 전ㅇㄴ 3일에 대뜸 학생들 등교개학부터 발표했다. 바보가 아니면 안다. 학생들 등교개학은 감염병 상황 종료 신호탄이라는 것을.
등교개학 말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정부가 그거 군불떼기 시작한게 무려 4월 20일이다. 4월 16일에 간신히 온라인 개학 시켜 놨더니 1주일도 되기 전에 등교 타령을 한 것이다. 온라인 개학 준비하느라 탈진지경인 교사들이 얼마나 허탈했을지 짐작하는데는 상상력도 필요 없을 것이다. 이런 보도가 자꾸 나가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기 쉬운가 하면
온라인 개학 안하고 정상 등교해도 되는 거 아니었나? 별 일 없네?
이렇게 된다. 4월 20일부터 거의 이틀마다 한번씩 정부 당국자가 교대로 끄집어 내는 "등교개학" 타령이 사람들에게 코로나가 사실상 잡힌 거나 다름없다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또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다 이제와서 6일 이전 까지는 엄연히 거리두기 기간이었는데, 2일에 가서 부비부비하다 병에 걸리다니 몹쓸것들 이런다면, 맹자가 비유한대로 마치 그물을 치고 백성을 잡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일이 터졌다. 늘 그랬듯, 비난이 정부로 몰려오는 것을 막는 제일 비열하면서 확실한 방법은 어떤 소수자를 혐오 대상으로 삼아 비난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특히 문빠들의 주류를 이루는 40-50대 이성애자(이성을 사랑하기는 하는지 모르겠지만) 남성들은 그런 이유 아니라도 언제든지 집단 동원이 가능한 혐오 성향들을 가지고 있다. 때마침 동성애자들이 자주 다니는 클럽에서 확진자가 나오니, 이때다 하고 마구 혐오의 쌍칼을 휘둘렀다.
그런데 아뿔사 그 클럽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 66번 확진자와 무관한 이성애자 남성들도 클럽에서 속속 확진자로 드러났다. 20대 전체를 혐오 대상으로 돌리는 것이 힘들어지자, 저 아재들은 전가의 보도를 꺼내 들었다.
결국 이 나라의 모든 혐오는 여혐으로 귀결된다.
그게 이 천하의 쓰레기 같은 기사로 나타나는 것이다.
누가 보면 애들 온라인 수업 시켜놓고 선생들이 낯술 먹으러 간 줄 알겠다. 심지어 그들은 저녁에 그것도 휴일에, 더더군다나 클럽이 아니라 다만 행정구역이 이태원에 있는 음식점에 간 것이다. 마침 갔는데, 마침 거기 확진자가 돌아다녔다는데 그걸 어쩌라고? 뭐 애들이 휴일에 밀린 온라인 수업 과제 하느라 바빴을진 모르겠다. 그럼 선생도 같이 바빠야 하나? 더구나 하필 '초등교사'라고 쓴 거 봐라. 초등교사 성비가 중등에 비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인식을 자극하려고 저렇게 했겠지? 게다가 '코로나 검사 잇따라' . 저, 제목 봐라. 글을 슬쩍 보는 한남들에게는 그냥 코로나만 보이겠지. 그래서 얼른 보면 젊은 여자들이 많은 초등교사들이 애들 동영상이나 틀어주고 자기들은 클럽가서 놀다 코로나 걸린 줄 알겠다. 그렇게 착각하라고 일부러 저런 제목 단 거 누가 모를 줄 아냐?
이렇게 어떻게든 대통령과 정부 책임은 없다고 하기 위해 계속 혐오 대상을 찾던 끝에 그 종점은 여교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우린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3월에도 4월에도 계속 국민들을 해이하게 만들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좀 놀아주는게 좋은거 아니냐는 신호를 보낸 것은 정부였음을.
그렇지?
어이 상휼아. 대답좀 해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