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지독한 코로나다. 여름 휴가철은 다가오는데, 세계 하늘 길은 여전히 꽉 막혀 있고, 내년휴가철도 이 모양일 거라는 우울한 괴담이 나돈다. 고궁과 박물관까지 문을 닫았으니, 여행은 꿈도 못 꾸는 분위기다. 이럴 때 지면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답답함을 풀어보는데도 도움이 되고, 빡빡한 일정, 쇼핑, 유흥 등에 정신이 팔려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여행지의 역사와 풍물을 차분히 익혀 볼 수도 있다. 이렇게 지면으로 여행을 하고 나면, 여행길이 다시 열렸을 때 훨씬 풍성하고 행복한 여행이 선물로 돌아올 것이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 제곱으로 즐거우니까.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히기 전, 베트남 중부의 중심도시 다낭은 우리나라 관광객이 제일 많이 찾는 도시 중 하나였다. 특히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홍콩이 혼란 상태에 빠진 2019년 하반기에는 타이페이와 더불어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여행지였다. 인구 120만명인 도시에 200만명이 넘는 한국 관광객이 방문했을 정도니, 다낭에서 길 가다 마주치면 현지인 반, 한국인 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데 다낭을 방문한 그 많은 우리나라 관광객이 반드시 찾아 보는 작은 도시가 바로 호이안이다. 다낭 근교의 다른 관광지, 가령 훼, 바나 힐, 오행산 등은 취향이나 일정에 따라 가기도 하고 안 가기도 하지만, 호이안 만큼은 거의 대부분 간다. 특히 여성이라면 다낭을 가서 호이안을 가는게 아니라 호이안을 가기 위해 다낭을 가능 경우도 많다.
호이안은 투본강 하구에 자리잡은 인구 12만명 정도의 작은 도시다. 이 작은 도시에서도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은 삼십 분이면 걸어서 한바퀴를 돌 수 있는 구 시가지다. 이 작은 도시, 그 중에서도 제한된 작은 구역, 심지어 시간 마저도 야경이 아름다운 저녁시간에 다낭에 있던 한국 관광객들이 일제히 몰려온다. 더구나 호이안은 우리나라 관광객에만 인기 있는 곳이 아니다. 호이안을 찾은 외국 관광객은 2018년 기준으로 연 390만명이나 되어, 오히려 다낭 보다 많다. 미국 여행전문매체 <트레블 플러스 레져(Travel+Leisure)> 가 선정한 세계의 관광명소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자그마한 도시가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길래 이토록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일까?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호이안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호이안에 처음 발을 디디면 그 동안 보아왔던 베트남의 풍경과 너무 다른 모습에 놀라게 된다. “여기가 베트남 맞아? 중국 어디 아니야?”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베트남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를 성가시게, 심지어 위험하게 까지 만들던 오토바이들도 마치 마술이라도 부린 것처럼 사라진다. 한창 떠오르는 신흥국가 특유의 떠들썩한 활기도 사라지고, 200년 전에 시간이 멈춰 버린 것 같은 거리가 눈 앞에 펼쳐진다.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호이안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들이 많지만, 그 많은 관광객들이 지나다니는데도 의외로 북적거린다거나 흥청거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호이안은 늘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다. 마치 시간이 투본 강에 잠겨버린 것 같다.
이제 시간을 투본 강에 잠시 담궈 두고 구시가를 찬찬히 걸어보자. 막상 주변을 둘러보면 중국풍이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부분의 건물은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폭이 좁고 속이 깊고, 2층에 방을 두고, 테라스를 만들어 놓은 베트남 전통 주택이다. 그런데도 중국풍으로 착각한 까닭은 건물의 장식, 지붕, 가구, 그리고 바깥에 걸어 놓은 홍등이 영락없는 중화풍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호이안의 경관은 베트남이라고 하기에는 중국 같고, 중국이라고 하기에는 베트남 같다. 게다가 중국풍도 다 같지 않다. 푸젠, 광둥, 차우저우, 하이난 등 지역별로 조금씩 다른 중국풍이다.
그런가 하면 중간 중간에 유럽 스타일과 현지 스타일이 섞인 이른바 ‘콜로니얼’ 스타일의 건물도 눈에 들어온다. 이런 곳들에는 대체로 고급 레스토랑, 카페, 펍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살짝 걸음을 뒤로 돌리면 화교 구역과 일본인 구역의 경계였다는 일본 양식의 다리 ‘내원교’를 만난다. 이 자그마한 도시, 걸어서 잠깐이면 둘러 볼 수 있는 구역 안에 이토록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있는 것이다. 이제야 이 도시의 이름이 호이안(會安)이라는 것이 실감난다. 이름 그대로 같이 모여 편안하게 공존하는 곳이다.
호이안이 이렇게 다양한 문화가 중첩된 이채로운 도시가 된 까닭은 오랫동안 무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그 역사는 의외로 아주 길어서 무려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때부터 장장 1800년간을 해상 실크로드의 주요 무역항으로 기능하였다. 그 긴 시간 동안 호이안은 동아시아와 남아시아가 만나는 곳이었다. 북쪽에서 내려온 중국, 한국(신라, 고려), 일본 상인들, 남쪽에서 올라온 아라비아, 인도, 스리위자야(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상인들이 호이안에서 만났다. 동서양의 문물이 서로 교환되는 거대한 장터가 열린 것이다. 16세기 이후에는 포루투갈, 네덜란드 등 유럽 상인들이 여기 가세했다.
이 중 중국과 일본 상인들은 아예 호이안에 자리를 잡고 눌러 앉았다. 한창 때는 호이안에 일본상인들만 1000명이 넘게 정착해서 살고 있었을 정도다. 물론 화교 인구는 그 보다 더 많았을 것이고, 포루투갈, 네덜란드 상인들도 적지 않은 수가 여기에 정착해 살았다. 이미 수백년 전부터 호이안은 베트남 사람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도시였던 것이다.
이렇게 번창하던 호이안은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면서 급격하게 몰락의 길을 걸었다. 보다 큰 항구가 필요했던 프랑스가 다낭에 거대한 항구를 건설했기 때문이다. 이미 무역 자체도 중국, 인도, 포루투갈, 네덜란드 상인이 아니라 프랑스 상인에게 독점된 상황이었다. 이렇게 호이안은 베트남의 망국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호이안의 풍경이 200년 전에 시간이 멈춘 듯한 동화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시간이 멈추고 말았다.
하지만 세상만사 새옹지마. 호이안에게는 이렇게 시간이 멈춰버린 것이 오히려 행운이 되었다. 20세기 이후 베트남의 역사는 온통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지금도 5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베트남 그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상당수가 “전쟁”이라고 대답한다. 독립을 위해 프랑스와 싸웠고, 독립 이후에는 남북으로 갈라져 싸웠고, 마침내 이 전쟁이 커지면서 미국, 그리고 대한민국과 싸웠다.
호이안의 시간이 멈춰 있는 동안 중요한 요충지로 성장했던 다낭은 이 모든 전쟁을 피해 가지 못했다. 특히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미국 공군기지, 남베트남 1군단 사령부가 자리잡았다. 덕분에 1969년에 벌써 인구 100만명을 넘을 정도로 흥청거렸지만, 대신 끊임없는 베트콩의 공격에 시달렸고, 미군이 철수한 뒤에는 북 베트남 군의 공격이 집중되는 등 큰 피해를 겪어야 했다.
반면 호이안은 다낭에서 불과 2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지만 기적적으로 전쟁의 참화로부터 벗어났다. 별 볼일 없는 시골 마을로 취급 되어 전략적으로 아무 쓸모가 없는데다, 훤히 열린 강가에 있기 때문에 베트콩 은신지로도 활용가치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호이안에는 한국군 청룡부대 본부가 자리잡는 등, 군부대가 적지 않게 드나들었지만, 그 마저도 행정구역만 호이안일 뿐, 호이안 구시가지로부터는 벗어난 곳이었고, 청룡부대가 작전을 펼친 곳도 호이안이 아니라 인근 밀림 속에 자리잡은 다른 마을들이었다. 여기서 대한민국이 베트남에게 반드시 사죄해야 할 부끄러운 전쟁범죄가 일어났다. 하지만 호이안 구시가지는 이 참사로부터도 용케 빠져나갔다. 호이안에서 멈춘 시간이 베트남 전쟁마저 비켜 세운 것이다.
<정감록>에는 후천 개벽이 일어날 때 재앙을 피하기에 좋은 10군데를 십승지지로 소개하고 있다. 십승지지의 공통점은 대체로 두메 산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호이안은 두메산골은 커녕 한때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할 정도로 활짝 열린 곳에 있으면서도 이 끔찍한 전쟁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야말로 유일승지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호이안은 200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고,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호이안은 매우 소중한 곳이다. 수많은 전쟁으로 국토가 파괴되어 우리나라 보다도 역사가 긴 나라지만 온전하게 남아있는 유적이나 유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300년 이상 된 건물들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호이안이 얼마나 소중한 곳일까? 현재 베트남에 있는 다섯 개의 세계문화유산(자연유산 두 군데 제외)이 있는데, 그 중 두 군데가 호이안에 있다. 하나는 지금까지 산책한 호이안 구시가지, 다른 하나는 호이안에서 당일치기로 다녀 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미선 유적지다. 그야말로 베트남에게는 보물과 다름없는 도시인 것이다.
호이안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포개진 지도, 멈춘 시계의 도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물러나고 다시 하늘길이 열리면 그 동안 지치고 답답했던 몸과 마음을 풀기 위해 호이안으로 가자. 200년 전 중화 풍과 동남아 풍이 뒤섞인 독특한 거리를 거닐며, 프랑스 식으로 서빙 되는 베트남 요리를 즐기며, 투본 강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야경을 바라보며 영국식 펍에서 맥주를 음미하자. 걸어서 30분 거리 안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한 도시가 여기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