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일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서울시교육청에 있던 시절이다. 당시 곽노현 교육감은 현직교사들의 자문을 적극적으로 받았다. 어떤 정책을 하나 펼치거나 할때도 보좌관이나 장학사, 장학관 말만 듣는게 아니라 현직교사들을 통해 실제 학교 현장에서 이 정책이 어떤 식으로 작동할지 시물레이션 했다. 임기 첫해에 설익은 정책으로 학교 현장을 혼란에 빠뜨린다는 비판을 받아들인 다음의 일이다. 특히 교육청에 파견나가 있던 교사들은 즉시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에 자주 자문 모임에 불려 나갔다. 나도 어찌어찌 하다 보니 그 자문 멤버 중 하나가 되었다.
곽교육감은 워낙 호기심이 많고 새로 일 벌리기 좋아하는 타입이라 수시 때때로 소집령이 내려왔다. 다른 파견 교사들은 교육청에 근무하고 있어서 바로 가면 되지만, 나는 남산에 있는 교육연구정보원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30-4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하며 눈에 잘 안들어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뭔가 눈에 확 들어왔다.
어, 왜 죄다 남자들인거야?
실로 그러하였다. 불려가면 교육감, 비서실장, 정책특보, 정책 보좌관 네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남자였다. 그리고 혁신학교 지원팀 네명, 교육연구정보원에서 세명의 파견교사가 자주 불려갔다. 이들 역시 모두 남자였다. 애초에 파견교사 열 다섯명 중에 여자 교사는 둘 밖에 없었다. 교육감이 그렇게 임명한게 아니라 교원단체들에서 추천이 그렇게 들어 온 것이다. 교사는 대표적인 여초 직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막상 그 집단을 대표하여 무엇인가 발언하고 일해야 하는 자리에 추천받는 사람들은 다 남자들이었던 것이다.
아, 그리고 또 하나 깜짝 놀란 것이 있었다. 교육감, 비서실장, 정책특보, 정책보좌관들 모두 서울대 출신이었다. 그리고 자문회의를 위해 볼려간 파견교사들 일곱명 중 다섯명이 서울대 출신이었다. 나머지 둘이 서울대 출신이 아닌 까닭은 초등교사였기 때문인데, 그나마 모두 서울교대 출신이었다.
전원 남자, 그리고 전원 서울대학 및 서울교대 출신으로 이루어진 자문단이라.
어차피 뒷북이다. 그때 왜 이런 문제를 좀 강하게 제기하지 못했을까? 학교 선생님들 절반 이상이 여자인데, 어째서 이런 자리에는 꼭 남선생님들만 모이게 되느냐고 따지지 못했을까? 이런 자리 조차 남자들, 그것도 특정학교 출신 남자들이 다 차지하는 현상을 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우리가 진보를 지향한다면 이런 문제는 좀 의식적으로 고쳐야 하지 않겠느냐며 문제제기를 왜 하지 못했을까?
그때는 그런 문제의식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우리가 정의의 편에 서 있다는 생각에, 그래서 우리가 정의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던 분위기였다. 올바른 교육, 정의로운 교육, 교육에서의 진보를 어떻게 만들어 가고, 학교 현장에 관철 시킬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을 뿐, 우리의 존재 자체가, 우리 구성 자체가 이미 올바름, 정의, 진보의 길에서 벗어나 있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말한다 해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항상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후회가 남는다. 나는 왜 그것을 보고 느꼈음에도 적극적으로 따지고 문제제기 하지 않았을까? 왜 이제서야, 한참 지난 이제서야 다 지나간 일을 끄집어 낼 수 밖에 없는가?
결국 나도 어쩔수 없는 남자 동맹의 한 사람으로서 기득권자였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