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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모르는 아재의 타이페이 산책 스토리(1)

들어가는 글

by 권재원
대만 여행을 좋아한다. 대만을 정말 수십번 방문했지 싶다.
업무가 아니라 순전히 관광으로.



익숙한 길을 걷고, 익숙한 장소를 찾는 것이니 여행이라는 말도 적당하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그냥 고향 방문하듯 그리워서 찾기도 한다. 익숙한데 왜 돈들여 비행기 타고 가냐고? 익숙하기 때문이다. 익숙하지만 일상에서는 좀 벗어난 곳. 마치 옛날 프랑스 지식인들이 모로코를 찾듯이. 아, 물론 대만이 한국 식민지는 아니지만, 나한테는 일종의 모로코인 셈이다. 난 여행을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정도로 생각하지, 무슨 액션 어드벤쳐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휴식이 되어야 할 여행에서 짐과 소지품 걱정에 스트레스 받아가면서까지 가서 봐야할만한 대단한 것들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런건 그냥 사진이나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로 즐기면 된다. 나는 쉬러 가고, 일상의 변화를 통해 생각을 자극하러 갈 뿐이다.


실제로 대만은 우리에게 꽤 익숙하고 친근한 곳이다.


한중일 한중일 그러는데 잘못된 표현이다. 문화 동질성을 근거로 말하는 것이라면 한중일이 아니라 한대일이다.


중국 여행 다녀온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우리가 같은 문화권이구나"하고 느낄만큼 동질성이나 편안함을 느꼈는지? 그래서 말만 다르다 뿐, 외국 같지 않은 익숙함을 느꼈는지? 별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상당한 문화충격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 현지인들 때문에 빈정이 상해서 오는 경우도 많다. 여려 면에서 중국은 우리와 아주 다르다. 물론 우리나라의 문화가 중국의 고전문화, 일본의 근대문화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중국의 고전문화는 문화혁명을 계기로 맥이 끊어졌다.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은 수당송명청의 그 중국하고는 문화적으로 상당히 단절된 나라다.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문화적 반달리즘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무섭다.


반면 대만에 다녀온 사람들은 마치 국내여행 다녀온듯한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때로 대만은 우리에게 가장 문화적으로 유사하다고 여겨지는 일본보다도 더 가깝고 익숙하게 느껴진다. 생김새도 상당히 닮았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일본인보다 대만인이 한국인 외모에 더 가깝다.


우리만 그런게 아니라 대만 사람에게도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다. 중국에서는 한국인이 금방 티가 나고, 일본에서도 티가 나는데, 대만에서는 입 다물고 돌아다니면 외국인임을 들킬 확률이 거의 없다. 사람 많은 곳에 "자물쇠 채워지지 않은 배낭을 매고" 다녀도 불안하지 않다는 점이나, 카페에서 빈 자리에 가방부터 내려 놓고 카운터에 가서 주문할수 있다는 점이나(아, 이러면 주문받고 오면 가방이 사라지지 않는게 당연한 나라가 의외로 적다), 가장 부담없이 한끼 식사 할 수 있는 메뉴가 '일본 가정식(돈까스, 카레, 돈부리 등등)'이라는 점이나


나 역시 그러하여, 대만을 거의 해마다 방문하다시피 했다. 타이페이 길눈이 서울만큼 익숙해질 정도다. 지하철은 물론 시먼-시정부역(동서구간), 젠난루-다안(남북구간) 범위의 사방 5킬로미터 범위는 문자 그대로 눈 감고도 걸어다닐수 있을 정도다. 서울시민이지만 금천구, 도봉구, 은평구 보다 타이페이의 다안구, 신이구, 베이터우구, 송산구 지리가 더 익숙하다. 인천보다 단수이를 더 많이 갔다고 하면 적절한 비유가 되리라.


이쯤 되면 내가 현지 언어에 아주 능할 것라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중국어를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한다.


물론 그렇다고 대만어(민난어)나 학카어(객가어)를 한다는 건 더더욱 아니고. 그렇게나 대만을 자주 가는데 중국어를 못한다는게 신기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중국어를 못해도 대만 돌아다니는데 별 문제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 대만만큼 자주 찾는 일본의 경우는 일본어를 못하면 불편한점이 많아 결국 따로 책 사서 공부해야만 했다(난 스포츠 외에는 학원 절대 안 다닌다. 모든 공부는 자습. 아니 그러면서 가르치는 일을 한다고?)


어쨌든 타이페이에서 중국어 못해도 불편없이 여행할 수 있는 이유는


1. 지하철(MRT)

서울 시민들의 지하철 부심은 대단하다. 도쿄 시민 앞에서 지하철 자랑하고, 도쿄 사람은 두 손을 들고 인정하고 하지만 타이베이에서는 서울 시민의 지하철 부심이 무너진다. 우선 기본 요금이 800원이 안된다. 환승도 엄청 편리하다. 배차간격도 엄청 짧다. 아주 길어야 7-8분, 보통 3분-4분이면 온다. 대만 사람들은 전철문 닫힐때 뛰어드는 일 따위 하지 않는데, 시민의식이 높거나 만만디 정신 때문이 아니다(대만 사람들 절대 느리지 않다. 걸어다닐때는 거의 스쿠터 처럼 빨리 걷는다). 어차피 금방 오기 때문이다.

노선 찾기도 쉽다. 모든 노선이 색깔로 구별되는데, 한자가 부담되어 역 이름 외우기 힘들면 색깔과 역 번호로 기억하면 된다. 지하철 출입문 위의 전광판에 역 이름과 역 번호가 같이 나오기 때문에 뭔 소린지 못 알아들어도 숫자 보고 내리면 환승역이나 목적지를 놓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노선이 합리적이다. 특히 관광객이 자주 찾는 곳을 그냥 한 노선에 몰아 넣었다. 바로 빨간 라인인 단수이 선. 원래는 그렇지 않았는데 의도적인 노선 조정 끝에 그렇게 만들었다. 한국 관광객의 필수코스처럼 되어버린 단수이- 베이터우(온천)- 스린(고궁박물관, 양명산, 야시장)- 위안샨(시립 미술관, 공자묘)- 중산(당대 미술관, 카페거리)- 타이페이 역(역은 물론 시먼도 여기서 걸어서 10분)- 중정기념당- 둥먼(용캉지에, 딘타이평 본점. 화산 1914도 여기서 걸어가면 잠깐)- 다안삼림공원-다안(충샤오 푸싱, 소고백화점 걸어서 10분)-신이안허(린쟝제 야시장, 국부기념관 걸어서 10분 이내)-타이페이101-상산 이렇게 이어진다.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면 타이베이에 있는 도시철도 6개 노선 중 그냥 빨간선만 타면 관광의 80%가 해결된다.


서울에서 지하철 환승역에서 잘못 찾아다닌 적은 많아도 타이베이에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환승도 편리하고 직관적이며, 역출구 안내도 영어까지 꼼꼼하게 잘 되어 있다. 다만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은 워낙 복잡해서 안습.


2. 택시

걷기 싫으면 그냥 택시 탄다. 도요타 해치백 모델이 제일 깔끔하다. 어차피 대부분 그 모델이다. 기사분들이 조금 험하게 생겨도 기본적으로 순하고 예의바르다. 말도 할 필요 없다. 목적지를 미리 출력해서 가지고 다니다가 보여주면 묵묵히 간다. 기본요금은 2800원쯤. 그러니 빨간선+택시 조합으로 다니면 돈도 발도 부담이 없다. 마카오처럼 택시기사가 성질 부린다거나, 베트남이나 태국처럼 갑자기 미터기 끄고 돈 더 내놓으라고 으르렁댄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미터기 대로 요금 받고, 지폐 주면 동전까지 칼같이 계산해서 거스름돈 준다.


3. 걷기

지하철 역에서 3킬로미터 이내 거리면 그냥 환승하지 말고 걸어도 좋다. 인도를 스쿠터가 다 차지해서 걸어다닐 곳이 없는 베트남, 혹은 스케일 크게 자동차가 올라와 앉아있고 나머지 공간을 배달 오토바이가 질주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타이베이는 인도에서 걷기 좋은 도시다(지방 도시는 그렇지 않다. 그 대신 지방 도시는 차가 적다). 열대지방이라 가로수도 잘 자라서 마치 식물원 같은 풍경을 만들기도하고, 무엇보다 주민들이 식물 키우는 것을 좋아하여 자기 집 베란다, 문밖, 담장 밑 이런데 화분을 엄청 정성스럽게 가꾸어 내어 놓기 때문에 풍경이 정감있고 예쁘다. (누가 들고 가면 어쩌지 하는 생각은 전혀 안하는듯). 쓰레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간혹 담배꽁초 한두개, 그리고 무심결에 날아간 티슈 조각들이 보일 뿐.


그래서 대만 여행하는 한국분들은 대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2만보 3만보 찍는 경우가 많다.


4. 편의점

문자 그대로 '편리상점'이다. 현지인들의 생활공간이다. 길을 찾기 어렵거나 뭔가 문제가 있으면 일단 편의점에 들어가면 어떻게든 된다. 화장실도 있다. 또 열성껏 도움을 주는 친절한 주민을 만날수도 있다.

세븐일레븐의 IBON(다른 편의점도 거기 해당되는 기기 있음)으로는 기차표 예매, 택시 호출도 된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고 숙소까지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막막하면 그냥 편의점 가서 종합 서비스 단말기로 택시 부르면 된다.

물론 편의점을 먹는것 터는 용도로 써도 좋다. 대만 편의점의 도시락, 음료수, 디저트, 과일, 샐러드, 오뎅의 종류와 양은 엄청나다. 특히 음료수는 넘사벽. 다만 맥주는 빈약하다. 이 사람들은 술을 안마신다.

이용도 간단하다. 물건들을 바구니에 담아서 계산대에 올려 놓고 숫자 나오면 이지카드(교통카드) 올려놓고 띡 하고 계산되면 끝이다. 도착하자마자 아예 교통카드 1000엔티(4만원) 정도 충전해 놓고 전철도 타고 편의점도 긁고 하면 된다.


5. 골목길 탐방

대만 여행의 백미는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다니는 것이다. 타이베이처럼 번화한 대도시도 큰길가가 아닌 뒷골목으로 가면 소박하면서도 아기자기하면서도 인스타 갬성 터지는 작은 길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뒷골목 탐방이 가능한 나라가 의외로 얼마 없다. 어느 나라나 가이드 북을 보면 나오는 말이 "처음 가는 골목길에 함부로 들어가지 마라."인 것을 상기해 보라. 워낙 범죄가 적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지간한 한국인은 그냥 돌아다녀도 "관광객 티가 안난다". 입 꾹 다물고 다니면 그냥 현지인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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