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변한 것일까 정권이 변한 것일까?
요즘 내 글 독자층이 많이 바뀌었다. 몇년 전에 많이 읽어 주던 분들이 떠나가고 새로운 얼굴들이 들어왔다. 아주 오랜 팬 한 분도 떠났다. 그 분은 한때 나를 모차르트에 비유하고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질투에 불타는 살리에리라 부르며 마치 경호실장처럼 맞받아쳤던 분이라 놀라웠다. 이랬던 분 마저 어느날 갑자기 나를 차단하고 떠나가 버린 것이다.
혹은 이런 소리도 들린다.
권재원이 수구보수 되었다. 우경화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난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그들이 말하는 진보가 어느 정도 수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이 원하는 만큼 진보였던 적도 없으며, 또 그들이 지금 생각하는 만큼 우경화 된 적도 없다. 나는 늘 그대로였다고 생각하는데, 뭔가 주변이 달라진 것 같다. 아니 뭔가 이성을 상실한 것 같은 느낌, 취해 있는 느낌이다. 모두가 취한 세상에서는 맨정신인 사람이 오히려 정신나간 사람 취급을 받는다.
사실 나는 내 생각의 변화가 궁금해서 해마다 이런저런 정치성향 조사를 있는대로 다 해 보는 편이다. 그런데 어느 경우에나 내 위치는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유주의적인 좌파다. 그렇다고 자유주의로도 좌파로도 많이 치우친 편은 아닌 딱 중도좌파다. 대략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사이 어디쯤이라고 프로그램이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하지만 나는 정치가 보다는 철학자와 비교하는 것을 선호한다. 네그리와 하버마스 사이 어디쯤 정도로 생각한다. 내가 한때 "부정변증법"이라는 필명을 썼듯이, 그 자리에는 딱 아도르노가 있다.
2016년인가 처음 이 설문에 응답한 이래 나는 계속 그대로다. 정치성향을 좌-우, 공동체-자유의 메트릭스로 조사하는 정치좌표 검사에서도 단 한번도 자유주의적 좌파 자리를 벗어난 적이 없다. 아마 오른쪽으로 한 칸 정도 이동했을 것이다.
내가 달라지지 않았다면 달라진 것은 바로 이 정권을 이루는 사람들, 그리고 그 열렬한 지지자들의 성향이다. 그들이 엉뚱한 위치로 옮겨 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가 마치 수구보수(저 좌표상에서는 공동체주의적 우파)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로 옮겨간 것일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의 자리는 저 좌표상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그냥 뭐가 뭔지 모를 괴물이 되어버렸거나 2차원 좌표계로는 표시 할수 없는 새로운 차원을 만들었거나일 것이다.
그 새로운 차원은 무엇일까? 4차원이다. 저 2차원 좌표에 사익추구-공익추구 축과 지도자추종-자기가치추구 축 까지 집어넣은 4차원. 그래서 좌-우 축에서는 왼쪽에 치우치고, 공동체-자유주의 축에서는 공동체주의에 치우치면서 다시 사익추구와 지도자 추종에 치우친 새로운 정치 성향을 하나 창출한 것이다.
그들을 뭐라 불러 줄까? 사익추구, 권위추종형 공동체주의 좌파라고 불러야 할까? 혹은 좌파를 빙자한 사익추구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지도자추종에 치우친 공동체주의 좌파라고 할까? 아니면 지도자추종 외에는 아무 공통점 없는 잡다한 집단이라고 해야 할까?
자, 이제 저들을 보수-진보 중에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지켜야 할 굳건한 가치가 없다는 점에서 보수가 아니다. 미래지향이 않다는 점에서 진보도 아니다. 만약 그들이 스스로 진보라 부르며, 세상이 그런 부류를 진보라 부른다면 나는 차라리 그 반대 극단인 수구보수라고 불리더라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아니 차라리 수구보수라 불리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진보라는 말이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너무 슬프다.
당장 "진보교육감" 타이틀로 당선된 여러 교육감들이 과연 2022년에 다시 "진보"라는 말을 전면에 내세우고 선거운동을 할 용기가 날까? 아니라고 본다. 안타깝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