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교사 Dec 01. 2020

교원노조, 교원단체 가리지 말고 많이 세우면 좋지 뭐

교원단체 관련 법률의 입법이 눈앞에 왔다. 그 동안 한국교원단체총연합(한국교총)이 유일한 교원단체로서의 지위를 독점해왔다. 사실 그래야 한다는 법적인 근거도 없다. 이름은 교원단체총연합이지만, 모든 교원단체는 한국교총을 그 연맹으로 삼아야 한다는 따위의 법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교총은 대한변호사협회(변협)나 대한의사협회(의협) 같은 단체와는 그 위상이 전혀 다르다.  


변협은 변호사법에, 의협은 의료법에 의무적으로 설립하도록 되어 있는 단체이며, 모든 변호사나 의사가 강제로 가입하게 되어 있는 단체다. 가령 2020년 가장 인기 없는 단체가 되어 버린 대한 의사회만 하더라도 의료법 28조에 의해 설립된 법정단체다. 따라서 아무리 의협의 행보가 마음에 안들고 그 회원이 부끄럽다고 느끼는 의사가 있더라도 임의로 탈퇴할 수도 없고, 의사가 되는 순간 무조건 가입해야 한다.


제28조(중앙회와 지부) ①의사ㆍ치과의사ㆍ한의사ㆍ조산사 및 간호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각각 전국적 조직을 두는 의사회ㆍ치과의사회ㆍ한의사회ㆍ조산사회 및 간호사회(이하 "중앙회"라 한다)를 각각 설립하여야 한다.


대한변협 역시

제7조(자격등록) ① 변호사로서 개업을 하려면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을 하여야 한다.


한국교총은 대한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에 교원단체는 교원의 지위와 전문성을 위해 교육부, 교육청과 교섭할 수 있다는 규정은 있지만, 그 교원단체의 자격과 설립절차를 규정한 시행령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교사의 단결권과 결사권을 크게 제한하는 반헌법적 상황이었다. 금지된 것이 아니라 절차가 없어서 단체를 만들수 없다니. 그래서 기존의 단체가 엉뚱하게 유일한 단체로서 모든 권리를 독점하다니?


 당연히 자생적인 교사 단체들이 교원단체 설립 절차를 규정한 시행령 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교총과 한 뿌리로 연결된 교육부 관료들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었다. 도리어 보수정당을 앞세워 교총의 독점적인 지위를 못박아 버리는 교원단체법을 제정함으로써 이 시행령을 무력화하려 하였다. 당연히  더불어 민주당 쪽에서 교총의 독점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교원단체의 문을 열어 놓는 대체 입법안을 내어 놓았다. 역사상 처음으로 교총의 그 석연치 않은 독점적 지위가 무너지는 순간이 왔다.


그런데 엉뚱한 일이 발생했다. 여기에 대해 일부 교원노조들이 매우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상황이 좀 지저분해진 것이다.


여기서 그들의 분쟁을 소개하고 또 반박하고 그럴 생각은 없다. 그거 하는 분들은 따로 있으니까. 다만 이 논란을 통해 교원노조와 교원단체가 도대체 뭐가 다른가, 과연 달라야 하는가 등의 이야기들이 나왔기에 이를 좀 정리해 보려 한다.


교원노조가 되었건 교원단체가 되었건영어로 옮기면 다만 Teacher's Union과 Teacher's Association일 뿐이다. 게다가 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는 Federation이라는 명칭도 있다. 하지만 이름은 이름일 뿐이다. 이거나 저거나 하는 일은 어슷비슷하다. UNION은 교사의 권익과 관계된 싸움을 하고 ASSOCIATION은 전문성, 교육정책과 관련된 협의를 하고 이렇게 무 자르듯 나눌 수 있는게 아니다. union도 전문직 단체 같은 활동을 하고, Associatiopn도 노동쟁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럴때 교원노조 측에서 교원단체에게 노동쟁의는 조합의 고유 권한이니 침범하지 말라 따위 항의를 하지는 않는다.  


다만 교직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다를 수는 있다. 가령 미국 교원노조(ATF)는 처음부터 미국노동조합총연맹(AFL)의 한 산별노조로서 자신의 위상을 세웠다. 반면 전미교육협회(NEA)는 상당한 내부진통 끝에 각 주의 사정에 따라 AFL과 연계를 맺기도 하고 선을 긋기도 한다. 아무래도 “우리도 노동자다.”가 좀 더 확고한 사람들이 교원노조에 모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산별노조를 자처하는 ATF는 교원노조, 그걸 주저하는 NEA는 교원단체 이런 식의 이분법은 성립하지 않는다. AFT의 교육 전문성을(AFT는 무려 존 듀이를 창설멤버로 두고 있는 단체다.)  혹은 NEA의 투쟁성을 과소평가하면 안된다.


독일도 여러 교원노조 혹은 교원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교육학술노조(GEW)는 독일노총 산하의 산별노조로 되어 있고, 주로 김나지움 교사들로 이루어진 교사연맹은 공무원노총의 산하 조합이다. 하지만 어차피 교섭권과 파업권이 없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노동조합이 아니다. 그 밖에도 어떤 연맹에도 가입하지 않은 교사단체들도 있다. 이런 단체들을 과연 노동조합으로 볼것인지 교원단체로 볼것인지는 매우 모호하며 구별하지더 않는다.


굳이 차이를 둔다면 UNION 어원에서   있듯 하나(UNI) 단결하여 행동하는 것을 힘으로 삼는다. 즉 교사들의 전문성과 권위보다는 "교사들이 똘똘 뭉쳤다. 어디 건드려 봐라," 의존하는 것이다. 그러니  노선은 다른 산별노조와의 연대가 필수적이다. 결국은 "노동자들이 똘똘 뭉쳤다. 어디 건드려 봐라." 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테니.


그런데 미국의 경우는  전미교원노조가 UNION이 아니라 Federation이라는 이름을 쓴다. 교원단체가 되기를 희망하는 우리나라의 실천교사모임도 영문명에는 Federation을 쓴다. 그렇다고 미국에서  전미교원노조를 UNION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기 때문에 교원노조와 구별되는 다른 무엇이라고 인식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 Association "우리가 교육에는 전문가니 우리 말을 들어라."라는 권위를 통해 협상력을 높이려고 한다. 래서 각종 연구대회, 학술대회, 간행물 발간 등의 사업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 차이도 절대적이지 않다. 아니 20세기 후반부터 그 차이는 거의 사라졌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교원노조나 교원단체나 구별없이 단결투쟁도 하고 학술, 발간 사업도 한다.


이 헛점을 살짝 이용하여 세계교원노조협회 (EI)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여 전교조 뿐 아니라 교총이 가입해 있기도 하다. EI의 여러 교원노조 지도자들 역시 교총을 당연히 교원노조로 인식히며, 구태여 이걸 노조냐 협회냐 따지지 않는다. 그러니 교원단체법에 반대하는 일부 교사노조들은 EI에도 항의서를 보내야 한다. “교장, 교감이 가입해 있는 교총을 제명하라고.”


이게 유독 우리나라에서 이게 문제가 되는 것은 UNION이냐 Association이냐가 아닐 것이다. 단체 이름에  들어가는 '노동'자 때문일 것이다. 교사들 중에, 특히 젊은 교사들 중에 '노동'자 들어가는 단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은 팩트니까. 그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건 자유이겠으나, 어쨋든 그게 현실이다.


그런데 사실 그들 역시 교사가 노동자라는 것을 기꺼이 인정한다. 교사 뿐인가? 교수, 페이닥터, 모두 노동자다. 하지만 교사 역시 임금을 받는 피고용자임을 인정하는 것과 일반적인 산업노동자들과 같은 노동조합의 구성원이 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로 여길 수 있다.  임금을 받는 피고용인으로서 노동자이지만 “노동계급”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교원노조 입장에서는 노동이라는 글자를 안 붙인 단체가기회주의적이고 얄밉게 보일수도 있다.  젊은 교사들의 잘못된 생각에 편승하여 사람 끌어모은다고 여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교원노조법 조차 설립한 단체의 이름을 따지지 않는다. 이름이 뭐가 되었건 구성원이 교사이며, 그 형태가 조합이면 된다. 노동 이라는 글자를 붙이지 않고 '교사조합' 이렇게 이름을 지어도 설립신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가령 우익 계열의 교원노조인 자유교조와 대한교조는 모두 자유교원조합, 대한민국교원조합이다. 노동이라는 글자가 빠졌으니 '노조아님' 통보를 받거나 하는 일은 없다.

조합 이름에 '노동'이라는 글자를 선명하게 박아 넣는 것은 법적 의무가 아니라 설립자들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한 이상  '노동'이라는 글자에 의미를 두는 교사들을 주로 조합원으로 모집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이라는 글자에 의미를 덜 두는 교사들은 어떻게 할까? 사농공상 의식에 쩔어 있다고 비난할까? 훈계할까? 그 보다는 그들이 단결의 가장자리에 고립되지 않도록 연대의 틀을 제공해 주는 것이 옳다. 어차피 교원노조에 가입할 생각이 없었던 교사들이 무력한 개인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연대의 틀에 들어 온다면 결국 교원노조가 그토록 강조하는 ‘노동자성’이라는 것도(만약 있다면) 배우게 될 것이다. 낱낱이 흩어진 개인들은 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단체를 만들었다면, 단체들 끼리는 사안에 따라 언제든지 연대가 가능하다. 전체적으로 파이가 커지는 것이다.


노동이라는 글자가 있건 없건, 조합이건 단체건 간에 단결과 연대를 생각하는 입장이라면 어떤 단체든 모였으면 법적으로 인정을 받고 장내로 들어오게 손을 내미는 것이 ‘노동조합’ 다운 태도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진보는 왜 오만한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