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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Nov 27. 2020

진보는 왜 오만한가?

어찌하다 보니 이 정권에서는 진보진영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뻔뻔함' 이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주로 '오만함'이었다. 이 정권이 무슨 진보냐 하는 식의 항변은 듣지 않겠다. 진보진영의 특징 중 하나가 같은 진영 안에서도 "우리가 진짜 진보, 쟤들은 짝퉁 진보" 하면서 계속 선 긋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외부에서 보면 어차피 다 진보다. 또 각종 여론조사에서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40%나 되고, 그 중 70%가 이 정권을 지지한다고 하니 말이다. 마치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자기들 끼리는 훈구니 사림이니, 기호학파니 영남학파니 하고 선을 긋고 싸워도 우리 눈에는 어차피 다 고리타분한 성리학자로 보이는 것 처럼.


미국에서도 급진 좌파, 페미니즘, 성소수자 운동에서부터 민주당, 그리고 민주당 우파에 이르기 까지 폭넓게 진보(리버럴: 자유주의란 뜻이 아니다)라고 부른다. 그리고 미국 역시 진보라고 하면 오만하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 오만함 때문에 오히려 그들이 옹호하려는 소위 기층 민중들이 뉴라이트의 친절함에 넘어가기도 했다.  힐러리 클린턴 같은 경우는 특히 그 오만한 이미지가 각인되어  많은 표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진보는 왜 오만할까? 혹은 왜 오만해 보일까? 주로 다음의 두 가지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진보는 현재 상태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더 올바른 상태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이 기존의 주류세력 혹은 기존의 것을 지키자고 주장하는 세력(보수)에 비해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보수는 잘못된 세상에서 이익을 얻거나, 그 잘못을 계속 유지하려는 집단인 반면, 자신들은 설사 그것이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과 반대되더라도 세상이 더 올바른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스스로를  더 도덕적이라고 여길 수 밖에 없고, 반대편을 다만 견해의 차이로 보지 않고 썩어 문드러진 부패집단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면 문제가 생긴다. 보수진영의 활동가나 정치가는 그렇다 치지만, 각종 선거에서 보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들이 모두 썩었나? 그들이 모두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들일까? 국민의 40% 이상이 도덕적으로 썩어 문드러진 나라가 세계적으로 치안이 잘되는 나라로 유지되는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당연히 말이 안된다. 


만약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면 해법은 사실상 '인종청소'가 되어 버린다. 캄보디아의 그 끔찍한 킬링필드의 원흉들은 자신들이 '도덕적' 행위를 하고 있다는 신념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자기들은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썩은 무리들을 제거하여 나라를 깨끗하게 만들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믿었다. 중국의 문화혁명도 마찬가지였다. 홍위병들처럼 도덕적 신념에 가득찬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심지어 나치 돌격대 역시 도덕적으로 순결했다. 하지만 이런 행위들을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이를 '인식'의 문제로 돌린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악'한 무리는 아니지만, 소수의 사악한 무리들이 퍼뜨리는  여러가지 거짓된 정보와 지식, 그리고 기만적인 가치체계에 속어넘어가고 이를 내면화 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악한 쪽의 편을 드는 것이라고. 즉 이데올로기다. 


여기에서 진보진영의 오만함의 두번째 원천이 발생한다. 


우리는 깨어있고, 너희는 속고 있다.


여기서 파생된 버전은 이거다. 


우리가 하는 말만 진실이며 나머지는 거짓이다


그래서 이들은 언론을 불신한다. 가짜언론, 기레기 등의 말을 거침없이 한다. 처음에는 조중동만 기레기라고 불렀다. 그러다 조중동문연으로 늘어났다. 이제는 한경오도 여기에 포함된다. 한 마디로 등록된 언론사는 모조리 가짜언론이다. 취재를 빙자하여 테러를 일삼는 어느 인터넷 방송, 편향되고 감정적인 취재로 걸핏하면 물의를 일으키는 어느 전직기자 같은 사람이 이들에게는 참언론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자기네 주장을 옳다고 떠받들어 줄 때까지의 일이다. 가령 JTBC만 해도 참언론에서 기레기로 전락하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두번째의 오만함에서 "뻔뻔함"으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나는 옳다. 나는 깨어있다. 그러니 내가 하는 일은 다 깊은 뜻이 있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옳은 길이다. 그걸 비판하거나 문제삼는다면 옳은 편, 옳은 일을 반대하는 것이니 악의 무리다. 악의 무리를 처단하는 것은 옳은 일이며 도덕적으로 정당하다. 방법은 그 목적을 통해 정당화될 수 있다. 똑 같은 짓을 하더라도 악의 무리가 하면 악한 일이지만, 옳은 사람이 하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 


그런데, 이쯤 되니 그만 말하고 싶어진다. 


도대체 뭐가 진보야?


그래서 새로 이름을 붙여주려 한다. 한국진보. 한국남자도 있는데 뭐. 

한진. 아, 이건 특정 기업 이름이다.

한보. 아, 이건 망한 회사 이름이다. 딱 좋다. 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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