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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Nov 10. 2020

글은 곧 생각이다

글을 쓰고 싶은 당신에게(1)

틈 나는 대로 글쓰기에 대한 글을 연재하려 한다. 글쓰기에 대한 글이라고 하니 뭔가 어색하다. 사실 나는  글쓰기에 대한 글을 한 번도 써 본적이 없다. 명색이 작가이며, 그 동안 출판한 책이 수십권이지만 한 번도 글쓰기 그 자체에 대해 고민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글재주를 타고 났다고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글쓰기를 어떤 특별한 방법이나 기술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글쓰기에 대한 책들이 많이 팔린다. 이름 좀 났다 싶은 작가는 너도 나도 글쓰기에 대한 책을 쓴다. 즐거워서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그만큼 팔리니까 쓸 수 밖에 없을 뿐이다. 아무래도 시험을 잘 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잘 푸는 비법을 찾는 성향이 글쓰기에까지 이어진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글쓰기 책을 사서 보고, 각종 글쓰기 강좌에 등록하여 배우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의외로 소박하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작가가 되는 것도,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다만 '글을 쓰는 것'이다. 그저 머리속의 생각을 글로 옮길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머리 속의 생각은 K인데 막상 글로 옮겨보면 c가 되는 이런 일을 면하고 싶은 것이다. 창작이 아니라 업무의 문제인 것이다. 


근대 사회는 문서의 사회다.  대부분의 업무가 글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제자백가는 흉중에 천하를 뒤흔들 포부와 계략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이야기(유세) 했지만, 오늘날에는 기획서나 제안서라는 문서 형태로 만들어지지 않은 포부와 계략은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다.  그런데 생각 따로 글 따로 놀고 있으니 그 답답함이야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생각은 마구 흘러가는데, 말로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글로 옮겨보면 조악하기 짝이 없는 그런 문장들로 전락해 버리니 일이 아예 시작단계에서부터 막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마음 때문에  글 좀 쓴다고 알려진 사람들에게 무슨 비법이라도 없는지 기웃거리게 되고, 글쓰기 관련 책이  만만치 않은 도서 시장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런 당신의 마음에 초를 쳐서 미안하지만, 글이라는 것은 별게 아니다. 글은 다만 생각을 문자로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글이라는 것은  생각의 연장선상, 부호로 표현된 생각이다. 좋은 생각, 훌륭한 생각이 있으면 어떻게든 좋은 글, 훌륭한 글이 나오며, 생각이 빈약하거나 엉성하면 아무리 글재주를 부리더라도  빈약하고 엉성한 글이 나올 뿐이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건 글 보다는 우선 생각의 문제일 가능성이 더 크다. 


당장 이렇게 반문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니, 거 무슨 소리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생각만 그대로 글로 옮기고 싶다고 말하는데, 생각이 충분하지 않아서 글이 안되는 것이라니?"


여기에 대해 이렇게 대답해 드리려 한다. 뼈가 좀 아프겠지만 여전히 생각의 문제다.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생각은  괜찮았는데 다만 그게 글로 잘 옮겨지지 않을 뿐이라는 생각 자체가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당신의 생각은 애초에 그리 훌륭하지 않았다. 생각은 다만 어떤 착상이나 아이디어가 아니다. 착상이나 아이디어는 그것을 자신의 이야기로 서술할 수 있어야 비로소 생각(thought)가 된다. 생각한다는 것은 착상을 떠올리는 과정이 아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그것을 자신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 통합하여 납득 가능하게 설명하는 과정이다. 자신이 자신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 정도까지 진행되지 않은 생각은  절대 문장으로 옮겨지지 않으며, 설사 옮긴다 하더라도 이런 저런 글재주에 의존하게 된다. 반면 충분히 진행된 생각은 글재주가 투박하여  유려함과는 거리가 먼 문장이 될지라도 힘을 가진 문장이 되며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글을 잘 쓰고 싶은가? 우선 생각을 잘 하자. 생각 따로 글 따로라 속상한가? 우선 그 생각이 충분이 진행 된 것인지 다시 살펴보자. 충분히 진행되고 숙성된 생각이라면 글로 옮겨지고 싶다는 압력이 저절로 느껴질 것이다. 반면 어떻게든 머리속에서 뭔가 짜내어  글로 옮긴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 생각은 아직 글이 될만큼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다. 


좋다. 그럼 생각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한 말이 되겠지만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가지고, 많이  읽고, 다양하게 관찰하고,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걸 특별한 상황, 특별한 목적이 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해야 한다. 사실 생각이라는 것이 별 대단한 것이 아니다. 대체로 훌륭한 생각은 사소한 일상 속에서 그 씨앗을 찾는다. 일상 생활을 기계적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사소한 순간 하나 하나를 생각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글이 안나오는게 아니라 글을 쓰고자 하는 내적 충동이 넘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 없이 "글쓰기를 배워서" 글을 잘 쓸 것을 기대한다면, 이는 투수를 지망하는 선수가 근력과 유연성을 기르는 운동은 소홀히 하고 다만 교묘하게 손목 비트는 동작만 익히려는 격이 될 것이다. 그런 선수는 잠깐은 경기장에 나가 재주를 뽐낼 수 있겠지만, 오래지 않아 결국 몸이 크게 망가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이 "글 쓰는 법"이 아니라 "글을 쓰고 싶은 당신에게"다. 나는 여기서 글을 어떻게 쓰느냐에 대새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할 말도 없다. 게다가  내 글이 솜씨를 자랑할만큼 멋진 것도 아니다. 어느 교수님이 평한 것 처럼 내 글은 무슨 깍두기 썩썩 썰어 놓은 것 처럼 딱딱하고 건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필력이 대단한" 작가 대접을 받아왔다. 그 힘이 어디서 왔겠는가? 글 이전의 생각이다. 이것 만큼은 자신할 수 있다. 나는 정말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신도 우선 생각을 많이 해 보기 바란다. 글을 잘쓰고 못쓰는게 아니라 글 자체가 나오지 않아 고민이라면, 두말할 필요 없다. 당신은 지금 생각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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