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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Nov 19. 2020

학종과 수능 그리고 사교육 시장

2년 전에 페이스북에 썼던 글인데, 보관을 위해 조금 손을 봐서  브런치로 옮겨 놓는다.  커버 이미지와 본문 내용과는 아무 관계 없다.



우리나라 사교육시장 규모는 얼마나 될까? 그걸 누가 알겠나? 다만  적게는 16조에서 많게는 30조까지 본다는 말을 들었다. 굉장한 규모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사양길로 접어드는 산업이며, 앞으로 점점 축소될 시장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구절벽으로 수험생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수험생이 줄어든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사교육 시장을 위축시킨다. 하나는 절대적 시장 규모의 축소다. 다른 하나는 입시의 경쟁률이 떨어지는데 따른 사교육의 유효수요 감소다. 그런데 이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다. 사교육 업계에 투하될 진짜  큰 폭탄이 있다. 이미 올해부터 나타나는 현상인데 수능에 응시하지 않는 고3학생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건 이미 예고된 사태다. 우리나라 대학 중 상당수는  수험생을 가려받을 처지가 아니게 된지 오래다. 그러니 수능 치기 전에 먼저 신입생부터 받고보자는 식으로 나서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입시라는 과정을 거쳐 수험생을 가려받을 배짱을 부릴만한 대학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아무리 늘려 잡아도 상위 20% 끼리의 게임이다. 


그 동안에는 이 상위 20%의 게임에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 기대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입시 레이스에 뛰어들었고, 수능에 응시했다. 하지만  이 게임이 그들만의 리그라는 것을 의식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아가 그 20%에 들지 않을 거라면  대학졸업장이라는 것 자체도 별 의미 없다는 것 까지 깨닫기 시작했다. 


사교육업 입장에서는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20%만이 입시 경쟁에 뛰어든다면? 수험생을 넉넉잡아 40만명으로 잡자. 그런데 만약 이 8만명 외에는 구태여 이 게임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시장이 1/5로 줄어드는 것이다. 8만명이  1년에 1000만원씩 쓴다고 하면 8000억원이다. 중고등학교  6개 학년을 감안하면 총 5조 정도다. 참으로 시장이 아담하다.  전국에 학원이 8만개 정도인데, 그 중 입시학원을 5만개 정도로 잡아보자. 그럼 학원 하나 당 1억원씩 돌아간다.  1년에 1억 매출 가지고 학원이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 전혀 각이 안 나온다.


학원업자 입장에서는 적어도 20만명 정도는  이 게임에 달려 들어야 뭔가 나눠 먹을 게 있다.  비록 달려든 학생들 중 대부분이 꿈도 희망도 없이 갈려 나갈지라도 말이다. 그러면 20조 정도의 시장이 형성된다. 학원당 4억씩 돌아간다. 이쯤 되면 비용을 뽑고, 이익도 분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20만명 보다 40만명이  뛰어들면 더 좋을 것이다. 입시 경쟁에 뛰어드는 학생이 늘어날수록 경쟁 압력도 세지기 때문에 입시학원이 청구할 수 있는 단가도 세지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 학생들울 입시경쟁에서 물러나지 않게 만들까?  


학생들, 특히 학부모들이 절대 현실을 인정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설사 희망고문이라 할지라도  막판 한방의 역전이라는 꿈을 꾸고 있어야 한다. 용한 학원 하나 잘 잡으면 10만명, 20만명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꿈꾸게 만들어야 한다.  

비록 내신은 개판이고, 선생들의 평가는 엉망이지만, 두고봐. 수능 한방에 다 뒤집어버릴테니까.  

이 희망을 계속 품어야 한다. 시험 한방의 기적, 수능정시는 계속 이 꿈을 꾸게 만든다. 실제 수능점수도 늘 꽤 높게 나온다. 사실 이는 EBS연계 출제 + 약간의 킬러 문항 이기 때문에 최고등급 학생 몇명 외에는 웬만하면 꽤 높은 점수가 나오도록 조작된 것이다. 하지만 희망의 불씨를 피우기에는 충분하다. 한 두개만 더 맞추면 되는데., 아오! 

따뜻한 잔혹이라고 할까? 희망의 살인이라고 할까?

반면 학종은 끊임없이 서서히 절망시키는 방식이다. 고등학교 3년간의 누적된 기록이기 때문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스스로 포기하는 학생이 늘어날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3년의 기록이다. 대만이나 싱가포르 같은 경우는 심지어 입사면접에서 중학교 생활기록부도 달라고 한다). 자비로운 냉정함이라고 할까? 잔혹한 자비라고 할까?

사실 5%만을 위해 95%가 들러리를 서는 입시는 어떤 방법이든 다 잔혹하고 괴롭다. 수능이든 학종이든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기왕 고통스러울 것이라면 5%들 끼리만, 많이 잡아도 20%끼리만 힘들게 하자. 학종이 무슨 요술방망이란 뜻이 아니다. 그나마 희망고문이라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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