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주식 이야기 할 때 검찰 이야기를 하다(1)
나는 국민성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단보다는 개인의 가치를 믿고, 집단에 환원되지 않는 개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떄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냄비 끓듯 한다" 는 말이 자꾸 입에서 맴돈다. 바로 두달 전만 해도 온통 화제의 중심이자 국가적 사명이며 국민의 열망처럼 이야기 되던 '검찰개혁' 이라는 말이 쑥 들어가버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무도 검찰 이야기를 안한다. 하나같이 주식 이야기 뿐이다. 검찰 개혁을 시대적 사명이자 국민의 열망이라고 말하던 대통령과 집권 여당 의원들도 요즘은 앞 다투어 펀드, 주식 자랑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아무도 검찰개혁에 관심이 없는 지금이야 말로, '검찰개혁'에 대해 진지하게 따져볼 적절한 시점이다. 미리 밝혀두는데, 나는 검찰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내부로부터의 혁신 보다는 외부로부터의 개혁이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검찰 개혁이 이렇게 다섯 손가락, 아니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중요한 국정목표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공수처' 설치는 절대 검찰개혁의 핵심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 문제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도록 하자. 이게 요즘 우리나라에 가장 부족한 것이다. 뭔가 하나를 선이나 악으로 규정하기 전에 따져보는 것.
'검찰 개혁'을 말하려면 우선 '검찰'이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검찰은 범죄의 수사와 기소를 담당하는 국가기관이다. 그리고 어떤 국가기관에 '개혁'이 필요하다면 그 이유는 다음 중 하나라야 할 것이다.
1. 해당 기관이 담당해야 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기능이 발휘되지 않거나 비효율적이다.
2. 해당 기관이 기능할때 발생하는 역기능이나 부작용이 순기능이나 효과보다 크다.
그렇다면 먼저 검찰의 역할과 기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검찰의 역할은 "범죄좌들이 응분의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며 그 기능은 '범죄를 줄여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흔히 '인권 보호'라고 하면 국가나 공권력으로부터 개인을 지키는 것만 생각하는데, 이는 독재 정권의 역사적 기억 때문에 왜곡된 생각이다.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된 나라라면 거의 대부분 개인의 인권을 가장 많이 침해하는 상대는 국가가 아니라 다른 개인, 즉 범죄자다. 검찰은 이 범죄자들로부터 시민의 재산, 안전, 자유를 지키라고 있는 기관이다.
여기서 경찰과 미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굳이 따지면 경찰은 범죄가 발생하기 전부터 역할이 시작되어 범인을 찾고, 범죄를 입층하는 증거를 수집한 뒤, 체포하는데서 역할이 마무리 된다면, 검찰은 범인을 찾아 체포하는 '수사'에서 역할이 시작되어 재판에서 유죄판결과 적절한 형벌을 선고받도록 하는 '기소'에서 역할이 마무리 된다.
이 중 경찰과 검찰의 역할이 중첩되는 부분이 바로 범인을 찾아 체포하는 과정, 즉 수사과정이다. 경찰은 이 중 수사에 중심을 두는 기관이고 검찰은 기소에 중심을 두는 기관이다. 하지만 수사와 기소가 말처럼 쉽게 딱 끊어지지 않는다. 이는 우리나라가 민주국가이기 때문이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독재국가일수록 철권을 휘두르는 기관은 검찰이 아니라 경찰이다. 검찰은 어쨌든 재판이라는 절차를 거쳐 발휘되는 권력이지만 경찰은 직접 물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권력이다. 80년대 백골단이 법적인 절차를 거쳐 가며 판사의 판결에 따라 시위대를 두드려 팼나? 그냥 멋대로 불심검문하고, 연행하고, 두드려 팼다.
그래서 독재국가나 저개발 국가에서는 기소보다 수사가 훨씬 강하다. 재판이 형식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국이나 베트남의 공안은 경범죄를 현장에서 처벌하기도 한다. 좀도둑의 뺨을 때리고 벌을 세우는 등의. 포루투갈, 스페인, 중남미에 세워졌던 폭압정권의 경찰은 재판까지 끌고갈 것도 없이 정치범을 멋대로 고문하거나 사살했다. 우리나라 역시 유신 시대에는 경찰 대공분실이나 중앙정보부에서 정치범을 넘기면 검찰과 법원은 답정너로 중형을 구형하고 선고했다.
하지만 민주국가에서는 범죄자를 즉시 죄인으로 취급하지 않고 방어권을 보장하며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가며 적법한 재판 절차를 거쳐야만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만약 검사가 범죄자가 고용한 변호사보다 실력이 떨어지거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기껏 잡아놓은 범죄자가 재판을 통해 유유히 걸어나가는 참변을 겪게 된다.
따라서 민주적인 나라일수록 검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수사 단게에서부터 이미 재판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법망의 그물을 교묘하게 빠져나가고 그 빈틈을 이용하는 지능적인 경제사범이나 권력형 범죄자들에게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하려면, 그들이 고용할 비싼 변호사를 무력화 시킬만큼 철저하고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며, 수사단계에서 이미 이 전략에 따라 필요한 증거들을 수집해야 한다. 그래서 수사단계에서도 상대 변호사에 맞설만한 국가 고용 변호사인 검사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범죄 수사의 목적이 나쁜놈을 감옥에 보내는 것이며, 그 방법이 재판에서 이기는 것이라면, 어차피 재판에 나가서 싸울 사람은 검사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사가 수사를 '지휘'한다는 말의 의미는 경찰이나 수사관을 부려먹고 갑질을 한다는 뜻이 아니다. 경찰이나 수사관의 수사 방향을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내기 유리한 쪽으로 이끌고, 수사 과정에서 사소한 트집을 잡혀 증거가 무효가 된다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체크한다는 뜻이다. 검사가 경찰에게 무엇인가 요구한다면 그것은 "내가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려면 ***** 가 필요하다. 지금 수준의 증거 가지고는 어렵다. 좀 더 분발해 달라. 증거를 잡아 달라." 라거나 "현재 수사 내용과 증거로는 재판에 가도 유죄받기 어렵다. 만약 더 얻을 증거가 없다면 이 사건을 더 끌고 가기 어렵다.." 같은 방식이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같은 식으로 부리는 것이 아니라야 한다. 물론 일선 경찰의 말을 들어보면 정당한 지휘보다는 갑질에 가까운 검사들이 여전히 많은 모양이다만.
검찰권력이 비대해졌다, 문제다 문제. 이런 말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90년대 이후 전반적으로 권력기관 자체가 꾸준히 약해져왔다. 검찰권력 역시 과거보다 더 강해졌다고 보기 어렵다. 검찰권력이 비대해졌다고 느껴진다면, 검찰권력이 상대적으로 강해지는 반대급부로 약해진 권력기관이 무엇인지 살펴 보아야 한다. 바로 국정원과 경찰(민생 경찰 말고, 엣 대공분실 같은 공안 경찰)이다. 이는 국가 권력이 더 이상 "잠깐 같이 가셔야 겠습니다.", "이 새끼 연행해!" 같은 식으로 집행되지 않고 방어권을 보장하는 가운데 법적인 절차를 거쳐야만 집행되는 방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집권당 정치인이나 정부 요인들을 검찰이 수사하고 기소하는 모습이 건방져 보일수는 있다. 하지만 집권당 정치인이나 정부 요인을 수사하고 기소하는 검찰이, 집권당 인사가 연루된 사건을 덮는 검찰보다는 훨씬 훌륭한 검찰이다. 법조 드라마나 영화에도 흔히 나오지 않던가? 세상 모르는 정의로운 검사가 어떤 사건을 수사하는데 "윗선"에서 전화가 와서 "그 사건 손 떼" 그러는 장면.
물론 그 검찰권력 역시 견제받아야 하며, 우리나라 검찰이 욕을 많이 먹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동안 검찰이 검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분에 국한되어야 한다. 가령 검찰 출신 인사들이 연루된 사건은 모른척 덮는다거나, 재벌로부터 스폰서 비를 받는다거나, 권력자나 돈 있는 사람의 범죄를 불기소 처분하거나 구형을 가볍게 한다거나 하는 등의 행동들에 대해서는 먼지가 나도록 얻어맞아야 할 일이다. 그러니 검찰개혁을 말하려면 이 문제들에 대해 답해야 한다.
1. 대한민국 검찰이 지금까지 앞에서 말한 검찰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너무도 엉망으로 수행하여 당장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될 지경인가?
2. 대한민국 검찰이 그 역할과 기능은 충실히 수행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게 국민의 안전과 행복에 걸림돌이 되는가?
3. 공수처는 그 답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둘 다 자신있게 "그렇다"라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많은 대중이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압수수색에 대해 분노하는데, 만약 검찰이 조국이 법무부 장관에 취임한 순간 사건을 덮고 불기소 처분했다면, 오히려 그때야 말로 강력한 '검찰개혁'이 필요한 순간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