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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 Oct 09. 2023

나고야에서 만난 사람들

무계획의 여행기 04

이누야마에서 다시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시간은 어느덧 저녁 시간을 향해갔고, 나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하며 지친 몸을 쉬었다.


당장 다음 날에는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상황, 지금부터 신경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저녁을 먹고 오늘도 바에 앉아 이야기를 하며 다음 여행지를 정해야지.


6시가 넘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나고야의 야경을 담고 싶기도 했고, 그것보다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은 무섭다. 여기에 더해 사진 모델이 되어달라고 말하는 것은 더욱 무섭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행을 하며 느낀 점은, 사람들이 여행객들에게는 나름 관대해진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모델을 해달라고 하는데 거기에 바로 포즈를 취해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실제로도 많이 거절당해 보았고. 사람들의 성향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은 하지만, 한국은 많이 폐쇄적인 면이 없지는 않다.


다행히 일본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들의 사진을 찍어서 선물로 주는 것에 대해 관대했고, 심지어 잘 나오지 않은 사진이 있었음에도 굉장히 기뻐하며 받아주었다.


나는 오스 상점가를 찍으러 가는 도중 한 라멘집에서 발이 멈추었다. 길 건너편에 크게 보이는 라멘 간판. 주변으로는 어둡고 그 라면 가게만이 빛나고 있었다.


8차로의 큰길, 어디에서 찍을까 고민하던 와중 나온 곳은 바로 앞의 육교였다.


Hasselblad 503cxi, Cinestill 800T

밤 12시까지 운영하는 카이리키야 라멘집의 모습.

아쉽게도 피사체로서의 역할은 다했지만, 먹어보지 못해서 아쉽긴 하다.


이어서 향한 곳은 오스 상점가.

여기서 오스 상점가의 입구를 찍을까 했었는데, 삼각대를 펼치고 있던 와중 바로 옆의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에서의 첫 인물사진 시작


앳되보이는 얼굴에 분위기 좋은 공중전화박스에서 친구 둘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 앞에서 사진을 찍다니. 가만있을 수 없다. 나는 바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둘이 사진 찍어드릴까요?'

친구들은 예상치 못한 행운이라는 듯이 호쾌하게 웃으며 허락을 했다. 특히 한국인 여행객이라고 말하니 한국인들은 모두 사진을 잘 찍는다면서 좋아했다.


Hasselblad 503cxi, Cinestill 800T

사진은 바로 볼 수 있도록 핸드폰으로도 찍어주고, 필름으로도 찍어주었다.

리쿠와 마사히로. 둘의 이름이었다.


앳되보인다는 표현에 맞게 둘은 중학교 2학년이었다. 한창 중2병이 도질 시기이지만 그것도 그때 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모르겠지만 지금 본인이 멋있게 느껴지는 것을 표현하는 게 멋있어 보였다.


둘은 친구를 기다리며 오스 상점가에서 놀고 있었는데, 때마침 내가 사진을 찍어준다고 해서 기다리는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게 놀 수 있었다며 좋아했다.


친구들과의 사진 촬영회는 약 40분가량 이어졌고, 이후에는 친구가 이제 나왔다고 해서 촬영비로 편의점 음료수 하나씩 쥐어서 보내주었다.



밥 먹으러 가자! 마사고로 라멘집


숙소로 돌아가기 전 패밀리마트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나의 앞에 어디서 많이 본 두 명의 사람이 나를 쳐다보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같은 게스트하우스의 친구들이었다.


저녁을 먹었냐고 물어보고는 아직 안 먹었다고 하니 라멘 먹으러 가자는 친구들.

역시 자유 여행을 하면 이런 것들이 재미있다.


Masagoro의 라멘. 고기 국물의 매운맛이 일품이었다.

매운 라멘이 당겨서 보니 이 라멘집에는 매운맛 단계가 5단계로 나뉘어 있었다. 예전 같았다면 5단계로 바로 도전했겠지만, 군대를 전역한 이후에는 조금이라도 매운 걸 먹게 되면 땀이 비 오듯 떨어졌기 때문에 욕심은 부리지 않았다.


하지만 땀도 안 흘리고 맛있게 먹은 걸 보면 5단계는 아니더라도 4단계까지 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매운 걸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여유롭게 5단계 까지 가능할지도.


우리는 라멘을 먹으면서 그날 한 여행과 다음날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고야 게스트하우스에서의 마지막 밤


밥을 다 먹고 나서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리빙룸에 모여 앉아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미국, 대만, 호주, 일본, 한국의 친구들이 만나 이야기를 하는 경험은 좀처럼 쉽지 않았기에 우리는 헤어지는 게 아쉬워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Hasselblad 503cxi, Cinestill 800T


잠을 자기 전, 게스트하우스의 오너인 치히로 씨에게 사진을 찍어드리겠다고 말씀드리니, 치히로 씨도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Hasselblad 503cxi, Cinestill 800T


이날도 어김없이 게스트의 손님들과 같이 바에서 이야기를 하고 계시던 호스트분들과 다 함께 사진을 찍어드렸다.


갑작스럽게 찍게 된 사진임에도 모두 좋아하며 사진을 찍어주셨다.


'아, 나 저 카메라 알아! 나사에서 달에 갈 때 썼던 카메라야! 맞죠?'

치히로 씨가 카메라를 보고는 바로 알아보았다. 정확히는 달에 간 카메라는 아니지만, 그 회사에서 만든 카메라이기는 하다.


'달까지 갔던 카메라라고 하시면 잘 찍어야 될 것 같잖아요...'라며 우는 소리를 해보았지만 치히로 씨는 웃으며 '못 찍으면 어때~' 하고는 포즈를 취해주셨다.


오늘이 나고야에서의 마지막 날이었기에, 치히로 씨와 다른 모든 여행객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이틀간이었지만 많은 만남이 있었다. 내가 먼저 다가가기도 하였고, 먼저 다가와주기도 하였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인연을 만나지만, 결국은 누군가가 다가가고, 그걸 받아들이는 것부터 인연이 시작된다.


세상이 많이 무서워지고, 다른 사람을 잘 못 믿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누군가가 다가올 때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을 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이 든다.


내일은 어디로 떠나볼까? 고민을 하다가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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