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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 Oct 09. 2023

오늘 정한 여행지에서 친구 만나기

무계획의 여행기 05

아침에 일어나 아쉬운 작별을 뒤로한 채 나고야 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저번 무계획 때는 JR패스를 이용해 가고 싶은 곳을 다 갔는데, 이번에는 JR패스를 끊는 것을 까먹어버렸다. 아무리 무계획이더라도 나중에는 JR패스 정도는 해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고야역까지 걸어서 20분 정도라는 말에 자신만만하게 산책정도의 거리라 생각했지만, 15킬로짜리 배낭을 멘 상태에서는 그다지 걸어갈 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쨍한 하늘. 6일 내내 날씨가 좋아 다행이었지만, 걸어 다닐 땐 좀 더 시원했으면 좋았을걸.


결국 목적지를 1킬로 남겨두고, 버스를 타기로 했다.

가방을 내려놓으니 좀 살 것 같았다. 그늘에서는 그래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고, 버스도 곧 도착한다니 잠시 앉아 숨을 돌렸다.


나고야 버스 센터로 들어가는 버스

정말 딱 한 정거장만을 이동한 뒤, 버스는 나고야 역에 나를 내려주었다.

나는 신칸센 창구로 가, 시즈오카행 기차표를 구매했다. 정한 것도 티켓을 구매할 때 정했다.

어디로 갈지 자신이 없기도 했고, 이틀 동안 너무 재밌었기에 이런 곳을 또 찾을 수 있을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온 이상 떠나야했다.

6,270엔. 거리 상 서울에서 부산도 안될 것 같은데 가격은 더 비싼 느낌이다. 이번에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 하고 군말 없이 기차에 올랐다.




고즈넉한 도시 시즈오카


시즈오카에 가면서 시즈오카 역 앞의 호텔을 예약했다. 이틀을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기도 했고, 하루쯤은 남 눈치 없이 자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한 뒤 샤워부터 했다. 땀이 너무 났기도 했고, 외국인 친구 사귀기 어플에서 시즈오카 친구 한 명이 시간 되면 볼 수 있겠냐고 물어봤기에 만나기 전 준비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만나기로 한 친구는 에리카라는 친구로, 이제 21살 졸업반이었다. 회사도 한 번에 붙어 10월 초 내정식까지 잡혀있던 상태라, 취업준비와 관련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었고, 시즈오카에서 가볼 만한 곳을 추천받던 나에게 바로 연락을 한 것이었다. 엄청난 행동력이다.


오후 4시에 만나기로 하고, 나는 숙소에서 배터리와 필름들을 점검했다.

숙소에서 보이는 시즈오카 역의 모습. 방음이 잘되어 소리가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슨푸성 공원과 일본의 내정식(內定式)


시즈오카역 북쪽 출구에서 만난 에리카는 나이보다 더 어려 보였다. 이제 갓 고등학생을 벗어난 느낌인데 벌써 대학교 졸업반이라니, 말이 굉장히 빠른 친구였지만 그래도 쉬운 말로 이야기를 해주었고, 내가 못 알아들었다고 하면 한국어로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에리카는 한국어가 마음대로 되는 편은 아니었지만 꽤 많은 단어들을 알고 있었고, 조사 또한 적당히 알고 있어, 어느 정도 한국어가 되었음에도 내 앞에서 한국어 하기를 부끄러워했다. (심지어 발음도 엄청 좋았다.)


그렇게 향한 곳은 슨푸성 공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던 이곳은 현재는 대부분 소실되어 재건을 거쳐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원으로 바뀌었다. 물어보니 실제로 봄이나 가을이 되면 사람들이 잔뜩 놀러 와 돗자리를 펴놓고 논다고 하고, 우리가 갔을 때에도 누군가의 생일 파티를 다 같이 재미있게 하고 있었다.


슨푸성 공원의 외곽 건물. 옆의 입구를 따라 들어갈 수 있다.

옛날에 지어진 성답게 성을 둘러싸고 해자가 있었고, 공원을 따라 한 바퀴를 쭉 돌면서 이 해자를 구경할 수 있었다.

Hasselblad 503cxi, Portra 400

우리들은 슨푸성 공원을 돌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의 나라에 대해서 궁금했던 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나는 주로 일본의 내정식에 대해 물어보았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문화이기도 했고, 어쩌다가 그런 것이 생긴 것인지에 관해서도 의문이었다.

가을이 시작되고 있는 슨푸성 공원

내정식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해당 연도에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이고, 첫 번째 회사에만 내정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직은 해당되지 않는다. 사회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는 것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활동인 것 같았다.


이는 회사들이 자기들이 뽑은 학생들을 다른 회사에 빼앗기지 않도록 하는 계약으로 작용한다.

회사의 면접을 보고 나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도 생길 것이고, 그로 인해 입사를 취소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일본의 내정식은 이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생겼다고 한다.


내정식도 정해져 있는 날이 있는데, 10월 첫 번째 월요일이라고 한다. 내가 갔던 때는 9월의 마지막 주였기에, 내정식이 한 달도 남지 않았던 것이다.


에리카의 질문은 대체로 한국의 식문화와 관련된 것이었다. 본인이 일하고 있는 가게 또한 한국의 음식점이었고, 매운 것을 꽤 잘 먹는 듯했다. 11월과 1월에 한국 여행을 잡아놓았는데, 11월은 순전히 한국의 낙곱새를 먹어보고 싶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정말 간결하고 확실한 목적이었다.


에리카가 찍어준 나의 모습. 핀이 정확하게 엇나갔다.

에리카의 사진을 선물로 주겠다고 하고 한 장을 찍어주었더니, 자신도 내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카메라를 받았다. 분명 핀을 맞추는 방법도 알려주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주었는데 재미있는 사진이 찍혔다.


아쉽게도 에리카는 저녁 아르바이트 때문에 가야 할 때가 되었고, 가기 전 나에게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 거냐 물어보았다.


'시즈오카는 어떤 음식이 유명해?'

반문하는 나에게 에리카는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사와야카'를 외쳤다.



시즈오카에서만 먹을 수 있는 햄버거 패밀리 레스토랑,

'사와야카'


일본 전역의 지도를 놓고 보아도, 사와야카는 시즈오카, 하마마쓰에 걸쳐서만 볼 수 있다.

평범한 패밀리 레스토랑인 것 같은데, 에리카는 시즈오카로 관광 오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사와야카를 소개해 준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제일 맛있게 먹는 메뉴와 어떤 소스까지 맛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저녁 무렵의 사야와캬 풍경. 사람들이 많아 예약이 없다면 힘들다고 한다.

일본에는 혼자서 패밀리레스토랑에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은 누군가와 같이 가야 하고, 가격도 저렴하지 않다. 여행 간 입장에서 시즈오카의 명물을 먹어본다는 것은 기대되었지만, 패밀리 레스토랑을 혼자 가야 한다는 것에는 걱정이 앞섰다. 


학생들이 숙제하러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기도 해, 아니면 밥 먹으려고. 일본에서 패밀리 레스토랑은 혼자가도 되는 곳이야. 애초에 레스토랑이잖아. 밥 먹는 데에는 혼자든 둘이든 상관없어. 물론 엄청 비싸고, 옷도 갖춰 입어야 하는 곳은 모르겠지만. 이곳은 학생들도 많이 오는 곳이기 때문에 괜찮아.


그 말은 혼자 여행하는 나에게 용기를 주는 말이기도 했고, 실제로 안으로 들어가 보니 혼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내가 시킨 것은 겐코츠햄버그에 양파 소스. A세트였다.

밥까지 함께 제공되는데, 햄버그도 속은 촉촉하고 겉은 알맞게 익어 먹기 좋았다. 에리카는 가기 전 햄버그가 나오면 알아서 잘라주실 테니 꼭 카메라를 준비해 두라고 당부까지 해주었다. 참 착한 친구다.


나는 에리카의 말대로 음식이 나오자 카메라를 준비했고, 직원분은 카메라가 켜진 것을 확인하고는 햄버그를 자르기 시작하셨다.


맛은 굉장했다. 양파 소스는 너무 짜지도, 너무 달지도 않아 햄버그의 맛을 더욱 증폭시켜 주었고, 볶음밥은 볶음밥보다는 공깃밥에 가까웠지만 함바그, 양파 소스와 같이 먹으면 훌륭한 맛이었다. 가격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저렴했다. 음료 같은 사이드까지 전부 다 해서 2만 원 정도였다.



시즈오카 밤 산책


밥을 다 먹고 나서는 밤산책을 나섰다.

시즈오카 역 북쪽으로는 슨푸성 공원과 학교들이 있었는데, 해가 지고 나서도 학교 운동장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일본의 학교는 대부분 3시 전후로 학교가 끝나는데, 이후에는 동아리 활동이 잘 되어있다고 한다. 물론 3학년이 되면 시험 때문에 공부를 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운동을 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동아리를 들어 활동한다고 한다. 


Hasselblad 503cxi, Portra 400


공원을 돌아 쭈욱 걸어갔다. 세븐일레븐에 들러 돈을 뽑아야 되기도 했었고, 시원하기도 했기 때문에 발이 가벼웠다.


Hasselblad 503cxi, Portra 400

나는 쭈욱 걸어가며 고등학생 때를 생각했다.

나는 대안학교를 나오기도 했고, 입시에 엄청나게 목을 맨 타입은 아니었다. 나는 항상 하고 싶은 공부만 했었고, 그 결과 수학은 말도 못 하게 끔찍했지만, 국어, 영어, 일본어와 같은 언어와 관련된 부분은 항상 좋은 점수를 받아왔다.


그렇게 학교 생활을 하면서, 동아리는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이는 아직도 나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학교적인 특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장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며 지낼 수 있었고, 이는 어떤 경험들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이 끝날 때쯤, 나는 세븐일레븐에 도착했다.

나는 내일 쓸 돈을 조금 출금하고는 다시 숙소로 향했다. 오늘은 조금 일찍 자야지. 내일은 하마마쓰의 친구를 만나러 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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