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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 Oct 12. 2023

시골 마을의 역에서 웃으며 잠들기

무계획의 여행기 07

'도착했어!'

라는 라인 메시지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 손을 휘젓고 있는 아키코가 보였다.


언어 교환 플랫폼에서 만나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전화통화를 하며 일본어 회화를 익혔던 친구다.

신기하게도 전화만 하다 처음 만난 것임에도 어색한 분위기는 없었다.


등에는 카메라 가방과 삼각대를 맨 채 거북이같은 모습으로 아키코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키코는 조수석을 정리하며 여행이 잘 되고 있는지, 하마마쓰에서는 어디를 구경했는지 묻기 시작했다. 처음 만난 친구에게 이렇게까지 활발하게 물어보는 것을 보면 아키코도 E가 분명하다.


나보다 열 살 많은 누나인 아키코는 한 아이의 엄마이자, 간호사 공부를 하며 틈틈이 한국어 공부를 하는 상당히 멋진 사람이었다. 한국 사람이 많이 없는 곳을 찾다가 하마마쓰에 간다고 한 나에게, '확실한 건 하마마쓰에 오면 한국인은 거의 없을 거야'라고 했다. 더불어 '근데 왜 이런 시골에 오는 거야?'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하마마쓰를 작은 시골로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말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아키코의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하마마쓰를 관통하는 도로. 일본에 와서 이런 도로를 처음 보았다.

하마마쓰를 관통하는 길은 지금까지 내가 봤던 어떤 길보다 시골길의 느낌이 났다.

그것도 상대적인 것이겠지만, 대부분의 관광지는 높지는 않지만 빌딩으로 가득 차있었고, 이렇게 한 구역마다 하나의 점포가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길이 쭈욱 이어져 있는 것은 상당히 신기했다.



사누키우동 맛집 노노카(野の香)


점심을 먹으러 도착한 덮밥집은 아쉽게도 휴무일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아키코는 의외의 제안을 했다.

'예전부터 먹어보고 싶던 사누키 우동 가게가 주변에 있는데 한 번 먹어볼래?'

하마마쓰에서 유명한 우동 맛집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주변 친구들이 모두 이곳 우동을 먹고는 다른 곳 우동은 맛이 없다고 했다 할 정도로 맛있는 집이라고 했다.

면류라면 사양하지 않는 나는 바로 콜을 외치고, 우리는 사누키 우동 집으로 향했다.


사누키 우동집, 노노카(野の香)

우동집은 역과는 한참 떨어진 논밭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직 날씨는 더웠지만 금빛 물결이 논을 채우고 있었고, 푸른 하늘은 절로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이라 아직 안쪽은 만석이었다. 우리는 메뉴를 먼저 주문하고 밖의 벤치에서 우리를 불러줄 때까지 고픈 배를 움켜쥐고 수다를 떨었다.


아키코는 올 겨울 간호사 시험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그때를 위해 실습기간이고, 실제로 병원에서 환자들을 보면서 실습을 한다고 한다. 오늘의 경우 늦게 끝날 것 같아 볼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고 했는데 다행히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정말 다행이기도 했던 것이, 직접 이 먼 길을 와보고 나니 느꼈지만 하마마쓰는 차가 없다면 정말 이동이 힘들긴 하다. 물론 신 하마마쓰에서 숙소까지는 전철로 갈 수 있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정말 이동하는 데에만 시간을 써야 했을 것이다.


튀김과 사누키 우동 세트, 가게의 모습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나는 튀김과 우동을 세트로 주문하였고, 우동의 국물은 차가운 국물로 정했다. 날씨가 덥기도 했고, 한국에서는 냉우동을 정말 맛있게 하는 집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누키 우동 자체는 어디선가 먹어본 맛이 났지만, 튀김이 정말 맛있었다. 치쿠와(원통형 어묵) 튀김이었는데, 쫀쫀하고 달달한 이 맛은 지금까지 먹어본 튀김과는 사뭇 달랐다. 거기에 우동의 양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식사를 마친 우리는 굉장히 느린 걸음으로 우동집을 빠져나왔다.



첫 드러그 스토어 쇼핑! 쿄린도(杏林堂ドラッグストア )


내가 예약한 호텔은 가까운 곳에는 편의점이 없는 꽤 시골마을에 있었다. 호텔까지 데려다 주기로 하면서 간식이나 음료를 미리 사가라고 추천을 받고, 친구의 부탁 겸 드러그 스토어에 방문하기로 했다.


초록색 간판이 귀엽다

간단한 과자랑 음료수들, 그리고 친구에게 부탁받은 안약을 샀다.

처음에 드러그 스토어가 무엇인지 들었을 때에는, 왜 슈퍼에서 약국을 같이 하나 했는데, 원래 드러그 스토어가 그런 것이라고 한다. 정말 많은 종류의 약품들과 음식들이 있었고, 신기하게도 한국 식품 코너가 꽤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키코도 한국 음식들을 자주 사 먹는다고 하고, 일본 내에서 한국 라면의 입지가 꽤 높은 모양이었다. 알 수 없는 뿌듯함에 어깨가 으쓱거렸다.

후리카케 코너. 정말 별의별 맛이 다 있었다.

봉지를 꽤 두툼하게 채우고는 우리는 다시 호텔로 향했다.

카지마 다리를 넘어가며 본 덴류강.

지브리 같은 텐류하마나코 전철역의 호텔, Inn My Life


'미쳤어...!'

호텔 앞에 내리자마자 나는 소리부터 질렀다.


Nikon F3, Kodak ColorPlus 200


낡고 오래된 역 간판이 매력적인 이곳 후타마타 혼마치역. 내가 묵을 숙소의 역 이름이었다. 텐류하마나코철도의 정류장 중 하나인 이곳은 출퇴근 시간대를 제외하고는 거의 한 시간에 두 대 정도(상행, 하행) 전차가 오가는 작은 역이었다. 1량짜리 열차이다 보니 따로 검표하는 사람은 없고, 전차에 탈 때 뒤로 타서 앞으로 내리며 돈을 지불한다.


호텔은 이 역의 입구 바로 왼편에 위치해있었다.

예전의 대합실을 호텔로 리노베이션 한 곳으로, 1박이 꽤 비쌌지만 그만큼의 값어치는 도착한 순간 다 했다고 생각했다.


Nikon F3, Kodak ColorPlus 200


역 앞에는 상사화가 한 무더기 피어있고, 푸른 하늘과 야외 승강장이 이곳이 이번 여행 중 최고의 여행지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는 서둘러 체크인을 마치기로 했다. 이 주변을 더 둘러보고 싶기도 했고, 숙소는 어떨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Inn My Life 호텔의 풍경

숙소의 호스트에게 숙소의 사용법이나 다음 날 아침 메뉴 등에 대해 설명받았다.

숙소에는 굉장히 좋은 스피커에 LP 플레이어가 있었는데, 듣는 노래의 취향도 나랑 정말 비슷한 분이 호스트여서 행복했다.


모든 앨범은 원하는 대로 들을 수 있었다. 구하기 힘들었던 누자베스 앨범부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앨범인 빌 에반스 'Portrait in Jazz', 쿨 재즈하면 빼놓을 수 없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Kind of Blue'까지.


내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함박웃음을 짓고 있자니 호스트 분도 뿌듯한 느낌이었다.


아침은 바삭한 토스트에 베이컨과 샐러드, 가까운 곳에 있는 유명한 양봉장에서 채집한 꿀과 함께, 손수 갈아 마셔야 하는 드립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Nikon F3, Kodak ColorPlus 200


설명을 다 듣고 다시 역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역 자체가 굉장히 작아 둘러보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사진을 찍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키코는 내가 사진 찍는 것을 지켜보며 이곳저곳 이쁜 곳을 골라주었다.


노을지는 역에 도착하는 열차. 한 량짜리 열차가 귀엽다.



리노베이션의 마을 후타마타 혼마치


기차역을 리노베이션 해서 만든 호텔을 시작으로, 후타마타 혼마치는 발길이 끊겨가는 시골 마을을 살리기 위한 젊은 사람들의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마을이었다.


한적한 메인 스트리트

관광지라고 생각하고 가면 큰 오산일지도 모르겠다.

분명 마을에는 젊은 사장님들이 새롭게 꾸민 세련된 가게들이 틈틈이 보이지만, 결국에는 사람이 사는 마을이었다. 대부분이 주택가이고 틈틈이 멋있는 상점들이 있기는 했지만 많은 곳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평일 저녁인 것이 문제였을까, 주말에는 그래도 하마마쓰 사람들이 자주 놀러 오는 가게들도 있었지만 퇴근 시간이 지날 무렵이라 많은 곳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사람이 없는 마을을 아키코와 걸으면서 이곳저곳 둘러보기 시작했다.


교자 있어? 교자 없어?, 아키코가 추천했던 맛있는 교자집. 하지만 사장님이 이른 퇴근을 해서 먹지 못했다.

그중에는 아키코의 친구가 하는 집도 있었는데 아쉽게도 그 집조차 문을 닫았다.

아키코도 친구를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연락도 안 하고 나를 데리고 갔었는데, 아쉽게도 오늘 이 동네 사장님들이 일찍 끝내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 같았다.


연신 미안해하는 아키코에게 계속 괜찮다고 말하며 마을을 돌아다녔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올 것만 같은 건물.

마을은 좋게 말하자면 조용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보니 볼 것은 별로 없었지만 나는 이 조용함이 좋았다. 듬성듬성 들리는 자동차 소리, 어느 가게 안 라디오 소리, 드물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등. 이번 여행에서는 이어폰을 거의 쓰지 않았는데, 이런 소리들을 조금이라도 더 담아가고 싶기 때문이었다.



저녁은 하마나 호수 장어 정식, 미마츠(三松)


어느 정도 돌아다니면서 배가 꺼질 무렵 우리는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알았듯,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우리는 마을을 벗어나 조금 번화한 곳에서 밥을 먹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딱 한 곳이 눈에 띄었다.

마을을 돌아다닐 때는 몰랐지만, 저녁이 되니 은은하게 불빛이 새어 나오던 이곳은 장어정식, 초밥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가게 입구를 찍지 못해 검색한 사진으로 대체한다. 출처 : クックドア


하루종일 고생해 준 아키코를 위해 저녁을 사기로 생각하고 안으로 힘차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키코는 초밥 정식, 나는 하마나 호수 장어 정식으로 저녁을 챙기기로 했다.


하마나 호수 장어 정식


하마마쓰에는 하마나 호수라는 큰 호수가 있는데, 여기 장어가 그렇게 맛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지어 기념품 과자도 장어 과자가 있을 정도로 하마나 호수 장어는 인기가 있다고 한다.


장어의 크기는 작았지만, 초밥도 맛있었고, 아시안 게임을 틀어놓고 다 같이 즐겁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야간 사진 스타트


저녁을 먹고 아키코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멀리서 온 친구 관광 도와주겠다고 실습 끝나고 쉬지도 못하고 운전해 주고 이곳저곳을 데려다준 고마운 친구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가벼운 선물을 주고는 각자의 밤을 보내기 위해 길을 떠났다.


나는 야경을 찍으러 갔다.


이런 시골에서 야경을 찍을 게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하지만. 생각보다 있다.

낮에 갔던 드러그 스토어인 쿄린도가 이곳에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카메라를 챙겼다.


더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중

쿄린도의 간판이 밤이면 초록색과 노란색이 선명하게 보이도록 불이 켜지는데, 나는 이 불빛에 매료되었다.

가만히 앉아 핸드폰을 하고, 자주 가는 현상소 사장님과 통화를 하면서 어떤 식으로 야경을 찍으면 좋을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Hasselblad 503cxi, Portra400

도시라면 나오기 힘든 사진이 나와서 기뻤다.

간판 뒤로 완벽한 어둠. 그리고 형광등의 불빛이 벽을 밝히고

초록과 노란색의 간판이 심심하지 않은 사진이 되었다.


Hasselblad 503cxi, Portra400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인 이 사진은 쿄린도의 벽을 찍은 것이었다.

운이 좋게 이쪽에 주차되어 있던 차들이 다 빠지고,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차에 쫓기며 빠르게 촬영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마음에 들게 나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Hasselblad 503cxi, Portra400

이곳에 온 것은 행운이었다고, 한국에 돌아와 사진을 현상하고 계속 생각했다. 사진들이 너무 예쁘기도 했고, 그만큼 기대에 차 기분 좋은 여행을 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숙소에 돌아와 빌 에반스의 Someday My Prince Will Come을 들으며, 일본 여행 사상 최고의 전차 여행이 될 내일을 기대하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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