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의 여행기 09
신조하라 역에 도착하고, 토요하시로 넘어가 신칸센으로 갈아타기로 했다.
신조하라 역은 굉장히 오래된 건물 같아 보였다. 정류장의 길이도 매우 짧았고, 개찰구를 통과하면 바로 도카이도 본선이 다니는 역과 연결이 되어있었다.
여기서 토요하시로 가는 열차로 갈아탄 뒤, 토요하시에서 신칸센을 구매했다.
도카이도를 이용해서 가도 되지만, 그래도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나고야에서 좀 더 돌아다니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또한 당장 내일이 출국이기 때문에 지인들에게 줄 선물들과 레코드가게에 가려면 오늘이 오후 시간대를 잘 써야 했다.
마루노우치 부근의 호텔에 짐을 풀고 작은 카메라만 들고 밖으로 나왔다.
해는 기분 좋은 빛을 내며 지고 있었고, 나는 얼마 남지 않은 낮 시간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레코드 스토어는 친한 사장님의 부탁으로 잠시 들르게 되었는데 30분 넘게 뒤져보았지만 원하는 앨범이 나오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찾는 것은 요시다 미나코의 앨범이었는데, 몇 개 있긴 했지만 오비가 없어 구매는 미뤄졌다. 이외에도 한 군데 더 들르긴 했지만, 거기는 전통 록 음악만 취급하는 곳이어서 얼마 보지 않고 바로 나왔다.
라시크를 나와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아키고가 나고야에 온다는 이야기 했다.
실습이 끝나는 날이라 리프레시 겸 나고야로 온다고 시간 되면 저녁 먹자는 이야기를 했다.
하마마쓰에서 나고야까지 거리도 멀 텐데, 먼 거리까지 달려와서는 마지막 저녁이라고 나고야의 명물 미소카츠를 사주겠다고 한다.
우리는 나고야의 랜드마크인 미라이 타워 쪽으로 이동하며 어떤 집의 미소카츠가 맛있을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방문한 미소카츠 집은 라무치이(らむちぃ)라는 집으로, 구글 맵에서도 평점이 꽤 높은 집이었다.
아키코가 도착한 시간이 저녁 8시 반쯤이었으니 둘 다 배가 많이 고픈 상태였고, 우리는 바로 밥부터 먹기로 했다.
옆 자리 사람이 시킨 메뉴에서 파가 잔뜩 올라간 걸 보고는 같은 것으로 주문하게 되었다.
톤테키(とんてき)는 돈가스와 비슷한 것 같기는 한데, 정확한 뜻은 돼지고기 스테이크라고 한다.
먹어본 느낌으로는 돈가스와 크게 차이는 못 느꼈었지만... 메뉴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일본식 된장이 잔뜩 발라져 있는 돼지고기 스테이크는 달달해서 좋았지만 다 먹어갈 무렵에는 너무 달아 느끼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고야에 오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은 먹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1년 전, 첫 무계획 여행을 갔던 후쿠오카에서도 마지막 날에 카에츠 나츠미(嘉悦なつ美)씨를 만난 것도 그렇고, 이번 또한 새로운 사람을 만났으니, 바로 거리의 드러머 히로시 사카키마씨였다.
저녁을 먹고 야경을 찍기 위해 혼자 나온 밤거리에서 나는 미라이 타워를 찍고는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미라이 타워를 지나 오아시스 21쪽으로 신호등을 건너가려던 그때,
어디선가 신명 나는 비트가 들려오고 있었다.
카메라를 메고 지나가는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걸어주고, 공연을 구경하며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거리를 깨끗이 합시다!'라고 소리치며 중간중간 자신이 준비한 쓰레기통의 위치까지 알려주던 그의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든 버스킹이었다.
모아둔 쓰레기는 재활용품을 수거해 가시는 분이 오시면 연주도 멈추고 바로 가지고 가시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참 보기 드문 멋진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또한 히로시 씨의 옆에는 아이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아저씨를 '옷짱' 이라고 부르며 공연 내내 옆을 지키고 앉아있는 친구들이었다.
이야기를 해보니 대부분 고등학교 3학년. 그리고 혼혈인 친구들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하자 알고 있는 모든 한국어를 총 동원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아저씨의 노래를 들으며 아이들과 수다를 떨었다.
아저씨는 리퀘스트 100엔, 가라오케 200엔을 걸어놓고 연주를 하셨는데, 가라오케가 특히 아이들한테 인기가 많았다. 어떤 곡을 리퀘스트에 올려도 다 연주해 줄 수 있다면서 자신만만하게 말씀하시는 아저씨는 정말로 어떤 곡이 나와도 다 칠 수 있었다.
히로시 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공연하는 모습을 찍기로 했다.
계속 내 카메라가 신경 쓰이셨던 모양인지, 히로시 씨는 카메라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어! 이거 필름 아니야?'
'굉장히 오래된고 좋은 거 쓰네'
공연은 새벽 1시가 넘도록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잠시 노래를 재생하는 아이패드의 전원이 꺼져버렸을 때, 히로시 씨에게 다가가 얼굴을 클로우즈 업해서 한 장 찍어주실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사진을 현상하고 스캔까지 하게 되면 인스타그램으로 보내 드리겠다고 하자 히로시 씨는 너무 좋아하며 잘 찍어달라 부탁했다.
새벽이 너무 늦어 이 컷을 마지막으로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나는 아저씨와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천천히 숙소로 향했다.
하루종일 돌아다닌 몸이 힘들 법도 했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힘이 들지 않았다.
노래를 들으며 계속 앉아서 쉬기도 했고, 나라는 사람 자체도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술집 호객 행위들이 많았지만, 다행히 삼각대를 끼운 배낭을 들고 다니는 사람에게 술 마시러 오라고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숙소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는 그 자리에서 떨어져 기절했다.
내일, 나는 한국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