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의 여행기 06
시즈오카에서의 하루가 지난 후, 맥도날드에서 간단한 아침을 해결했다.
날씨가 일정 이상 화창하게 되면 건물들이 장난감처럼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의 튀어나온 간판들을 보다가 일본에 오면 확실히 건물에 간판이 많이 안 보이는 것이 느껴진다.
대부분의 간판들은 벽에 딱 붙어있고, 생소한 글자들은 간판이 하나의 액자처럼 보이게끔 만들어준다.
가려진 것들은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타워의 밑은 어떻게 생겼을까. 저것은 무엇일까.
조금 더 재미있는 사진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 바라보며 걷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시즈오카역에서 하마마쓰로 가는 신칸센 표를 구매했다.
역 자체는 한 정거장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가까웠지만 가격은 역시나 사악했다. 다시 한번 JR패스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열차에 올랐다.
하마마쓰역은 꽤 한산했다. 하마마쓰에서 만나기로 한 아키코가 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려서 하마마쓰 성을 둘러보려고 길을 나섰다.
그동안 내가 봐 온 성들은 어림잡아도 그 높이가 5층 이상의 큰 성들이었다. 오사카 성도, 얼마 전 본 이누야마 성도, 구마모토 성도 그 크기는 상당했다. 일단 '성' 이기도 했고, 유럽의 중세 성 느낌은 아니더라도 각자가 가진 성의 웅장함이 있기에 나는 당연히 하마마쓰 성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마마쓰 성은 그런 웅장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작고 귀여웠다.
솔직하게 생각보다 작은 모습에 실망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주차장을 지나 성이 있는 곳으로 오면, 성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할아버지들이 있었다.
더운 날씨임에도 조끼에 모자까지 쓰시고는, 앉아서 쉬고 계신 분들에게 다가가 하마마쓰 성에 대해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100%까지는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귀동냥으로 천천히 역사에 대해 들은 바를 이야기하자면, 하마마쓰 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날 들렀던 시즈오카의 슨푸 성으로 옮기기 전까지 지냈던 거성이라고 한다. 하마마쓰의 성주는 역사적으로 막부의 요직에 임명된 일이 많았기에 '출세의 성'으로 불린다고 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여기에서 17년을 살고, 세키가하라 전투 후 일본을 통일하고 현재의 도쿄로 천도했다고 한다. 작은 성과 대비되는 정말 큰 출세이기는 하다.
하마마쓰 성은 바로 옆에 하마마쓰 성 공원이 꽤 넓게 있어서, 단순히 성만 보고 나오기에는 조금 아쉬운 감이 있다. 하마마쓰 성은 10분 정도 보고 끝났지만, 나는 길을 따라 공원 쪽으로 향했다.
하마마쓰는 일조시간이 길고 온난한 기후라 일본 굴지의 꽃 산지라고 한다. 3월 말부터 6월 초에 걸쳐 '하마나코 페스티벌'이 열려 볼거리가 많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나는 여름 끝자락에 방문을 했다.
또한 봄의 하마마쓰 성 공원에는 약 360그루의 벚꽃 나무들이 꽃들을 피워 장관이라고 하고, 밤에도 조명을 설치해 밤 벚꽃놀이도 가능하다고 한다. 왜 나는 좋은 시기들을 다 빗나가서 온 것일까. 아쉽지만, 그것도 여행의 매력이라고 생각하자.
이러한 풍경들을 보고 있자니 단풍이 지는 10월 말이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었다.
다음에 온다면 꼭 이쁜 시기로 골라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원에서 빠져나와 걷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버스나 지하철이 잘 다니지 않는다.
구글 맵을 통해 보았을 때에는 꽤 큰 도시인 것 같았는데, 아키코는 항상 하마마쓰가 시골이라고 말했던 이유를 조금이라도 알 것 같았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땡볕을 30분 넘게 걷고 있자니 몸이 너무 지쳤다. 아키코는 오전 실습이 끝나고 점심이 넘어서 도착을 한다고 해서 1시간가량 시간을 때울 곳이 필요했다.
나는 일본에 가면 스타벅스 보다는 찻집(喫茶店), 킷사텐을 찾는 편이다. 레트로한 느낌에 내부는 통일된 원목 인테리어로 단정하게 이루어져 있는 곳들을 선호하는데, 내가 찾은 테르미나가 딱 그러한 곳이었다. 킷사텐 자체가 일본 커피문화의 정점을 찍게 한 일등 공신이기도 하기 때문에 동네마다 한 두 군데 정도는 킷사텐이 있고, 나는 이러한 느낌의 카페들을 좋아한다.
이러한 찻집의 장점으로는 조금 어이없을 수도 있지만 실내 흡연이 가능한 곳들이 아직 많이 있다. 보건법에 따라 음식점 실내 흡연이 금지된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일본은 코로나 이후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음식점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들이 종종 존재한다.
땡볕에 땀 흘리며 담배 피우기 싫은 나에게는 이보다 좋은 곳이 없다.
마침 담배가 가능하다고 보기도 했고, 들어가 흡연석이 있는지 먼저 여쭈어보았다. 마스터는 가장 구석 자리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내가 시킨 것은 아이스커피와 치즈 케이크.
저 아이스커피가 먹고 싶어 바다를 건너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는 일본의 아이스커피를 좋아한다. 시원하고, 싸구려 느낌도 나지 않고, 향도 좋다.
여담이지만, 일본에 와서 가장 감명 깊었던 것 중 하나가, 흡연자들이 휴대용 재떨이를 들고 다닌다는 사실이었다. 평소 재떨이에 담배꽁초와 재를 모아두었다가, 흡연장이 나오면 들어가서 버리는 모습이 자주 보였고, 거리에서 꽁초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재떨이를 들고 다니는 부분은 멋있기까지 했던 것 같다. 확실히 우리나라에서는 재떨이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으니까. 거기다가 나 또한 전자담배이기 때문에 따로 재떨이를 들고 다니진 않고, 다 핀 담배는 갑 안에 거꾸로 꽃아 둔다. 혹시라도 새것과 헷갈리면 안 되니까. 그렇게 한 갑을 다 피면 그대로 쓰레기통에 넣는다. 따지자면 담뱃갑 자체가 재떨이인 셈이다.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하마마쓰 성에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자니 아키코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금 거의 다 도착했어 슬슬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