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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 May 03. 2018

08. 나는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진다

Chet Baker, 『I Fall In Love Too Easily』

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감정은 내가 알고 있는 어느 단어보다 강렬하고 뜨겁다. 왜 사랑이 항상 붉은색과 연관이 되는지, 하루 이틀 만나고 헤어졌던, 몇 년을 만나고 헤어졌던, 사랑이라는 것은 기간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래 사귀는 커플을 보면 '와 정말 사랑하는가 보구나'하고, 짧게 사귀는 커플을 보면 '그냥 가볍게 좋아한 정도구나'라고 단정 지었었다. 그들의 만남이 정말 '사랑'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내가 판단할 권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내 얕은 지식과 경험으로 그들의 감정을 무시했던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Chet Baker『I fall in love too easily』는 금세 사랑에 빠져버리는 사람에 대해 아주 로맨틱하고도 감미롭게 풀어낸 명곡이다.


첫눈에 사랑에 빠져버린


디즈니 동화나 로맨스 소설에서만 나올법한 이 말은 실은 꽤 많은 사람들이 겪는 감정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기에 어떤 상황에서 사랑에 빠지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지만 - 안다면 그것대로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데 도움이 되기는 할 것 같다. - 사람은 누구나 다 결국엔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 차이가 남들보다 빠르냐 늦냐의 차이일 뿐.


적어도 나와 같은 경우에는 취향이 비슷하고, 말이 잘 통하면서, 감정적 유대감의 형성이 빠른 사람과 쉽게 사랑에 빠진다. 흔히 말하는 취향이 맞고 서로를 존중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디테일한 부분에서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 주변에 나와 비슷한 조건으로 사랑에 빠지는 친구들이 많다고 했으니 아마 이 부분은 이상형에 대한 기본 조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에 더불어 예술 쪽에 조예가 깊은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면 경외심이 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내가 남의 사랑에 대해 멋대로 판단했던 멍청한 시기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자.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연애를 하고 있든, 헤어졌든, 혹은 짝사랑을 하고 있든,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그 감정을 누군가가 '야 너 그거 사랑 아니야'라고 말했을 때 어느 누가 기분이 좋을 수 있을까?


나는 2년 가까이 되는 평범한 연애도 해봤고, 짧지만 영화 같은 연애도 해보았지만 내가 판단하기에 둘은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새빨간 사랑이었다. 처음 보고 눈이 맞아서 1주일도 안돼서 사귀었던 적도 있었고 몇 년을 기다리다가 사귀었던 적도 있다. 생각을 해보자면 연애를 시작하는 데 있어서 꽤 많은 타입을 경험해 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 순간들이 진짜 사랑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자니 내 파랬던 청춘들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느낌이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왼쪽이 Gene Kelly, 오른쪽이 Frank Sinatra


『I fall in love too easily』은 1944년 Jule Styne에 의해 작곡되었고, Sammy Cahn에 의해 가사가 붙었다. 그리고 1945년 유명한 재즈 보컬이자 영화배우였던 Frank Sinatra가 출연한 영화인 'Anchors Aweigh'에서 처음 소개되었는데, 그 해 아카데미 음악상에 노미네이트 되어 결국에는 음악상까지 수상하게 된다.


https://youtu.be/UesYWymYKBE

Frank Sinatra - 『I Fall In Love Too Easily』


Frank Sinatra의 노래들은 다른 노래들도 그렇지만 정말 낭만적이다. 잘생긴 얼굴에 노래까지 낭만적으로 부르니 당시의 수많은 여성팬들은 그가 나타나기만 해도 기절해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부르는 곡은 '나는 이렇게 낭만적으로 사랑에 빠져, 나랑 사랑에 빠져볼래?' 하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부드러운 바이브레이션과 강약의 조절이 특히 도드라지는 곡이다.


https://youtu.be/3zrSoHgAAWo

Chet Baker - 『I Fall In Love Too Easily』


이번에는 Chet Baker의 곡이다. Frank Sinatra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힘이 쫙 빠진 모습이다. 목소리에도 힘을 쫙 빼고 바이브레이션도 최소화했다. 덕분에 그가 부르는 『I Fall In Love Too Easily』은 어쩔 수 없이 사랑에 속고 속으면서도 계속 사랑에 빠지는, 사랑으로 상처를 입고 사랑으로 상처를 치료하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처럼 그의 사랑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그를 사랑으로 이끈다. 그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사랑에 속고 속으면서도 다시 사랑을 하는 우리들



Chet Baker, 『I Fall In Love Too Easily』

I fall in love too easily
I fall in love too fast
I fall in love too terribly hard
For love to ever last

나는 너무 쉽게 사랑에 빠져
나는 너무 빠르게 사랑에 빠져
나는 너무 끔찍하리만큼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빠져서
사랑이 오래 간 적이 없어
 
My heart should be well-schooled
`Cause I`ve been fooled in the past

내 마음은 좀 더 배워야 해
과거에 늘 실패로 끝나버렸으니

And still I fall in love so easily
I fall in love too fast

그리고 나는 아직도 사랑에 너무 쉽게 빠져
난 너무 빠르게 사랑에 빠져


가사를 보면 매번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이 실패로 끝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사랑에 쉽게 빠져버리는 한 남자의 모습이 나온다. 헤어지고 다시는 연애하지 않는다던 친구도 며칠 뒤에 연락 와서는 '진짜 괜찮은 남자를 찾았는데~'하고는 떠드는 것하고 비슷하다. 우리들의 사랑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단지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렇게 낭만적인 노래들을 남긴 것과는 다르게 그의 마지막은 썩 낭만적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엄청난 인기를 거느렸던 젊었을 때와는 반대로 그의 말년은 약물과 마약에 찌들어 있었고, 이를 줄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지만 결국 59세의 나이로 암스테르담의 호텔에서 투신해 유명을 달리했다.


Chet Baker (1929 ~ 1988), Trumpeter, Vocalist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그는 "Chet Baker의 노래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라고 했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상처와 사랑에 대한 열망은 뜨거운 사랑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이정표가 되어주며 청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빛바랜 사진첩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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