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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 Jun 05. 2018

13. 50년 전의 <라라랜드>

영화 <The Sound of Music>의 OST

초등학생 시절, 내가 제일 좋아하던 시간은 형을 따라, 혹은 혼자서 비디오 대여점에 가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비디오 커버에 굉장히 적나라한 여배우의 모습을 그대로 프린팅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왕성한 호기심에 모르는 척 어른용 비디오를 꺼내보기도 했다. (그래도 청소년 관람불가 코너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곳은 계산대에서 무척 가깝고 전체이용가와 동 떨어져 있었기에 바로 들킬 수밖에 없었다.) 물론 주인아저씨가 귀신같이 알아채고, '너 아직 그런 거 보면 안 된다.'라고 해서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그럼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비디오를 집어넣고, 전체 이용가 비디오 코너에서 영화를 고르곤 했다.



반 백 년 전에 만들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아름다운 이야기.


어렸을 적 본 영화 중에 재밌었던 영화를 고르라면 열 개정도 말할 수 있지만,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영화를 말하라고 하면 딱 하나 <The Sound of Music>이다. 흡사 고전판 <라라랜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는 스토리면 스토리, 노래면 노래, 모든 것을 다 잡았다. 대중들의 인지도 또한 덤이다.


물론 이 이전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메리 포핀스>같은 뮤지컬 영화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실제로 오스트리아의 폰 트랩 家의 위대한 탈출기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몰입감이 남다르다.


영화의 초반, 수습 수녀인 마리아가 노래를 부르며 푸르른 언덕을 뛰어놀고 개울가에서 장난치는 장면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인터넷에서 보았을 명장면 중 하나이다. 산과 바람, 모든 자연을 느끼며 노래를 부르는 그녀는 순수 그 자체다. 자연을 보고 아름답다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자연을 그대로 느끼고, 소통하길 바라는 사람은 아마 지금이나 그 때나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다.


결국 노래를 부르다가 미사에 늦어버리게 된 마리아, 원장 수녀를 제외한 다른 수녀들은 마리아가 수녀와는 맞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원장 수녀는 '의심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착하고 호감이 가지만, 말썽이 많고, 수녀로써 하면 안 될 것들도 많이 한다.'며 마리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고민한다. 여기에서 나오는 표현들이 참 주옥같은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마리아를 '뜬 구름 같은 그녀를 어떻게 붙잡을까요?', '모래 위의 파도를 어떻게 잠재울까요?',  '달빛을 어떻게 손안에 넣을 수 있을까요?'라고 표현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원장 수녀는 마리아를 폰 트랩 家에 가정교사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녀가 너무 자유롭고 수녀와 어울리지 않으니, 세상을 보고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 찾으라는 이야기였다. 마리아는 반 강제로 수녀원을 나와 폰 트랩 대령의 집으로 향하게 되고, 거기서 일곱 명의 아이들과 만나게 된다.


폰 트랩 대령과 마리아, 7명의 아이들. (영화 <The Sound of Music>에서)


첫 만남, 마리아는 폰 트랩 대령이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에 기겁하게 된다. 이름이 아니라 피리로 아이들을 부르고, 아이들의 눈에는 반항심이 가득하다. 아이들은 마리아의 주머니에 두꺼비를 넣기도 하고, 식사 자리에 솔방울을 두는 등 그녀를 괴롭히지만, 그때마다 마리아는 아이들 탓을 하고 질책하기는커녕 아이들을 사랑으로 감싸준다. 결국 아이들은 그녀를 신뢰하기 시작하고, 엄마처럼 따르게 된다.


알프스 초원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 장면은 오스트리아를 '모차르트의 나라'가 아닌 '사운드 오브 뮤직의 나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이후 이어지는 스토리는 단순히 폰 트랩 家가 나치의 지배 아래서 스위스로 망명하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한 사랑까지 아주 잘 표현되어있어서 아직까지도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지컬 영화로 기록되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온 영화 <Sound of Music>의 배우들.



My Favorite Things



영화에는 도레미 송이나 에델바이스 같은 유명하고 좋은 노래들이 많이 나오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곡은 『My Favorite Things』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들이 마리아에게 장난친 것을 후회하고, 처음으로 마리아와 아이들이 마음을 터 놓는 장면에 수록된 이 곡은 수많은 리메이크들을 남기며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https://youtu.be/DGABqdbtQnA

The Sound of Music - 『My Favorite Things』


장미꽃에 빗방울.
새끼 고양이의 수염.
빛나고 있는 구리 물주전자.
따뜻한 털장갑.
리본이 달린 갈색 종이의 패키지.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이지요.

크림색의 망아지,
사과로 만든 과자,
초인종 소리
썰매의 방울소리,
누들이 딸린 슈니첼,
달빛에 날개를 반짝이며 날아가는 들오리.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입니다.

하얀 치마에 푸른 셔츠의 여자 아이.
콧잔등과 눈썹에 떨어진 눈송이.
봄에 녹아드는 은백색 겨울.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입니다.

개한테 물렸을 때,
벌한테 쏘였을 때,
슬픈 기분일 때,
그것을 생각하면 싫은 기분은 없어집니다.  


이 곡은 슬플 때에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나아진다는 이야기를 아름다운 가사에 녹여 직관적이면서도 감성적이게 잘 표현한 곡이다. 천둥 번개가 치는 것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말하며 두려움을 극복하는 내용의 이 곡은 『Do-Re-Mi』, 『The Sound of Music』, 『Edelweiss』를 작곡한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와 작시가(作詩家)  오스카 헤머스타인 2세가 만든 곡이다.


이 둘의 업적이 어느 정도 대단하냐고 물어본다면, 미국식 뮤지컬의 시작이 이 둘의 손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쉽다. 특히 미국식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오스카 헤머스타인의 역할이 컸는데, 그는 여러 가지 작품들과 더불어 미국의 민속 오페라를 발전시킨 연극적인 음악극 <오클라호마!>(1943)를 만들었고, 이것이 미국 뮤지컬의 새로운 시작점이 되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 한스 짐머 이전 최고의 영화음악 콤비



이 둘은 환상의 콤비로 만드는 모든 노래마다 히트 곡이 되었다. 둘은 작곡가와, 작시가인 점에서 그 분류는 다르지만 마치 오늘날 <미야자키 하야오와 히사이시 조>, <크리스토퍼 놀란과 한스 짐머>를 연상하게 한다. 그만큼 그들은 서로의 곡들을 잘 이해했고, 영화에 있어서 노래가 갖는 역할을 알고 있었다.


그 결과, 둘은 토니상 35개, 아카데미상 15개, 퓰리처상 2개, 그래미상 2개, 에미상 2개. 총 56개의 상을 공동 수상했다. 아쉽게도 그들이 함께한 작품은 영화 <The Sound of Music>이 마지막이 되었지만, 그들의 노래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불려지고 있다.


영화 <The Sound of Music>의 바이닐.

비 오고 우울한 날에는 가만히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감성적인 기분에 취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럴 때, 추억의 곡들이 가득 들어있는 영화 <The Sound of Music>을 보면서 아름다운 노래와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글쓴이 / 음악 듣는 기린

소개    / Crate Digger, 어쩌다가 LP의 매력에 빠져버려서 모으기 시작한 게 취미가 되어, 블로그와 브런치를 오가며 음악을 소개해 주는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후에 개개인의 취향을 저격하는 음악들만 골라서 소개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여러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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