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고 Jun 07. 2018

14. 거칠지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Damien Rice, < O >

내가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던 날은 굉장히 더운 여름밤이었다.

당시의 나는 기숙사 방에 누워서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데 그 라디오의 마지막 곡으로 Damien Rice(데미안 라이스)의 『9 Crimes』가 흘러나왔다. 조용한 밤에 어울리게 단조로운 피아노 멜로디와 잔잔한 목소리로 시작해 폭발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나를 끌고 갔다.


이후로 틈만 나면 이 노래를 들었다. 그의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는 이해하지 못했었지만, 마치 미래의 나에게 불러주는 노래인 듯, 그는 정말 괴롭고 슬픈 목소리로 노래를 했다.


Damien Rice, 『9 Crimes』


조금 기괴하기도 한 『9 Crimes』의 뮤직비디오는 이별의 기로에 선 두 남녀의 모습을 상징적인 가사들로 표현해낸 곡으로 우리나라에서 『The blower's daughter』와 함께 그의 인기를 실감하게 해주는 대표곡 중 하나이다.



한 여름밤에 어울리는 그의 목소리



데미안 라이스의 목소리는 한 여름밤에 어울리는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거칠지만 따뜻한 그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지만 특히 한 여름밤에 듣기에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잔잔하다가도 어느 순간 한 없이 폭발하는 그의 가창력은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약한 모습과 강한 모습 둘 다를 아주 자연스럽게 노래로 표현해준다고 생각한다.



『The blower's daughter』는 나탈리 포트만, 줄리아 로버츠, 주드 로가 주연이었던 영화 <클로저>에 소개되기까지 했는데 영화를 보면 정말 영화를 위해 만든 곡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잘 녹아드는 게 일품이다.

특히나 "I can't take my eyes off you(당신에게서 눈을 뗄 수 없어요)"라는 수 없이 많은 곡에 들어있는 가사를 가장 잘 표현하는 가수라고 생각한다. 


2013년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서 부른 『The blower's daughter』.


이 곡은 그의 데뷔곡이자 첫 앨범인 <O>의 타이틀 곡이기도 하다. 이 앨범은 음악 평론지인 <올뮤직(All music)>으로부터 "희망이 없어도 아름다운 앨범"이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성공한 앨범이 되었고, 아시아 최초로는 한국에서 2012년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로 내한한 적이 있는데, 슈퍼 콘서트도 아니었고, 큰 홍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매 하루 만에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데미안은 팬을 대하는 방식이 정말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들도 몇몇 개 발견할 수 있는데, 내한공연에서 팬을 무대 위로 불러 같이 노래를 부른다거나, 공연이 완전히 끝나고도 길거리에서 노래를 불러주며 팬들의 성원에 보답해주었다고 한다. 이러니 사람들은 매 년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면 데미안 라이스가 라인업에 올라와있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2012년 현대카드 컬쳐프로젝트가 끝난 뒤 주차장에서 열린 버스킹. 추운 날씨에 손을 비비면서도 팬들을 위해 열창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이 외에도 『Volcano』『Cannonball』, 『Cheers darlin'』등 그가 내는 앨범의 모든 곡은 타이틀곡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한 곡, 한 곡에 정성을 쏟는 것이 보인다. 



바이닐 최초 출시



데미안 라이스는 바이닐을 처음 모으기 시작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아티스트 중 한 명이었다. 안 듣고 넘길 곡 하나 없이 한 곡 한 곡이 마스터피스인 그의 앨범들은 <My Favourite Faded Fantasy>, <Live at Fingerprints : Warts and All>를 제외하고는 최근까지도 바이닐로 출시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던 중 6월의 첫날. 그의 첫 앨범인 <O>가 바이닐로 출시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솔직히 이미 지난 앨범의 경우 정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이닐로 재생산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었다.


현재 대형 온라인 서점에서는 아직 판매 알림이 뜨지 않았지만, 동교동에 있는 레코드 스토어에서는 예약을 받고 있는 상황이고 6월 중순쯤에 한국에 물량이 풀리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불필요한 장식 없이 심플한 그의 앨범 커버는 그의 음악을 눈으로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한 여름밤. 거칠지만 아름다운 그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나와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의 희망찬 위로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 2018.06.19 바이닐 구매

동교동에 위치한 김밥레코즈에서 <O> 바이닐을 구매할 수 있었다.

오른쪽 위에 살짝 외상이 있긴 하지만,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런 자잘한 것은 생각나지 않는다.

생일을 맞이해서 형이 사준 바이닐.




글쓴이 / 음악 듣는 기린

소개    / Crate Digger, 어쩌다가 LP의 매력에 빠져버려서 모으기 시작한 게 취미가 되어, 블로그와 브런치를 오가며 음악을 소개해 주는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후에 개개인의 취향을 저격하는 음악들만 골라서 소개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여러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글이 마음에 드신다면 Like it과 구독을 눌러주시면 매 글마다 알림이 갑니다. 감사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13. 50년 전의 <라라랜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