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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 Jun 19. 2018

15. 일요일 오후 다섯 시의 그녀.

Norah Jones, <Day Breaks>

일요일 오후 다섯 시.

당신은 창가에 앉아있고, 창 밖으로는 새파랗던 하늘이 저 멀리서부터 조금씩 붉게 먹혀 들어가고 있다.

문득 당신은 이 순간을 조금 더 느끼고 싶어 졌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부터는 다시 새로운 한 주이고, 다음 주에 다시 이런 노을을 바라보며 쉴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너무 멋진 노을, 집 안에 가득 찬 커피 향기, 나른함.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는 이때, 당신은 이 사람의 목소리가 듣고 싶을 것이다.


바로 오늘 이야기할 노라 존스(Norah Jones)이다.



내가 처음으로 노라 존스에 대해 알게 된 때는 노래 'What am I to you'를 들었을 때다. 아마 고등학생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노래가 들어있는 <Feels Like Home>이 2004년에 발매된 것으로 보아 2009년의 나는 굉장히 늦게 노래를 들은 편이었다. 쌀쌀한 가을, 저녁을 먹고 기숙사에 엎드려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이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보다 더했던 그때의 감수성으로 이 곡을 듣고 난 후의 나는 모든 플레이리스트를 그녀의 노래들로 채웠었다.


Norah Jones, What am I to you


노라 존스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능력이 있다.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에 강하지 않은 발성, 그런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아, 나른해진다.


 

그렇다. 그녀의 목소리는 사람을 나른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좀 더 좋게 말하자면 그만큼 편하다는 이야기다. 그녀의 피아노도 좋지만, 뒤에 편하게 깔리는 밴드 세션의 사운드도 좋아한다. 거슬리지 않고 딱 좋은 크기의 사운드들과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가 일요일 오후 다섯 시에 있는 것만 같다.


저녁을 먹기엔 조금 이르고, 이제 막 휴일의 낮잠에서 깬 오후 다섯 시. 그래서 나는 그녀를 '일요일 오후 다섯 시의 노라 존스'라고 장난 삼아 부르기도 한다.


노라 존스의 앨범은 지금까지 CD로 두 장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정규 1집과 정규 2집인 <Come Away With Me>와 <Feels Like Home>.


이 두 장의 앨범은 내가 군대에 있을 때 CD 플레이어를 가지고 가서 들었던 앨범이다. 내가 있던 부대는 생활이 굉장히 불규칙했기 때문에, 근무가 끝나면 개인 정비 때 푹 쉬어두는 게 굉장히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근무가 끝나면 뻐근한 몸을 침낭에 쑤셔 넣고 노라 존스의 앨범을 들으며 빨리 휴가 날이 되기만을 바라곤 했다.




재즈 레이블의 명가, 블루노트의 재즈 보컬리스트.



음악 레이블들 중에서는 한 가지 분야만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유명한 레이블들이 많다. 예를 들면 흑인 힙합 레이블인 <모타운(Motown)>, R&B/힙합 전문 레이블인 <라페이스(Laface)>가 있다. 


이러한 유명 레이블들의 경우 팬층이 두텁기 때문에 이 레이블에서 노래가 나왔다 하면 무조건 신뢰하고 듣는 사람들이 많고, 그건 재즈도 예외는 아니다. 

블루노트 레이블의 로고

재즈 레이블 중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레이블 <블루노트>가 있다. 블루노트는 예전에 리뷰한 '아트 블래키(Art Blakey)'부터 색소폰의 '캐논볼 애덜리(Cannonball Adderley)', 루이 암스트롱과 함께 재즈의 탄생에 기여한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기도 한 '시드니 베셋(Sidney Bechet)' 등, 재즈를 이끌어간 주역들이 머문 레이블이기도 하다. 재즈 역사에서 이름을 떨치고, 유명했던 사람들이 있던 레이블이다 보니 팬들의 블루노트에 대한 신뢰도가 굉장히 높다.



그리고, 노라 존스(Norah Jones)는 블루노트 레이블 소속의 보컬리스트이다.


얼핏 들어보면 "어? 이런 대단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노라 존스라는 사람이 있어도 되는 거야?"라고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당연히 그래도 된다.


그녀는 블루노트에 들어오기 전부터 밴드 활동이나 개인 공연 등을 거치며 그녀의 음악적 커리어를 충분히 쌓았고, 블루노트에 들어와 발매한 첫 앨범 <Come Away With Me>는 이듬해 제 45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베스트 팝 보컬 앨범, 올해의 여자 보컬, 최고 신인상을 휩쓸었다. 여기에 2004년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인 <Feels Like Home>은 제 47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레코드, 베스트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 상, 베스트 팝 공동 보컬상을 수상하면서 그녀가 블루노트에 소속될 만한 실력의 보컬임을 증명해 보였다.


Day Breaks

<Day Breaks>는 그녀가 2016년 발매한 앨범으로 여전히 그녀의 색채가 잘 드러나는 게 한결같아서 보기 좋다. 동이 트는 것을 뜻하는 <Day Breaks> 답게, 같은 제목을 가진 수록곡은 아침이 밝아오는 분위기를 멜로디로 아주 잘 잡아냈다고 생각한다. 특히 드럼은 활기를 띄기 시작하는 아침의 모습을 아주 잘 담아낸다.


Norah Jones, Day Breaks

나른하게 잠에서 깬 듯 시작하는 노래는, 몸이 조금씩 잠에서 깨면서 수많은 감각들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처럼 후반에는 스틸 기타, 첼로, 비올라, 바이올린에 소프라노 색소폰까지 합쳐져 완전히 아침을 맞이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뉴욕 라이브 실황 9곡이 추가된 디럭스 에디션


한정판으로 제작된 <Day Breaks> 디럭스 에디션.


이번에 구입하게 된 <Day Breaks> Limited Deluxe Edition에서는 기존 6집의 곡들과 더불어 뉴욕 라이브 실황의 'Don't Know Why', 'Sunrise' 등이 수록되어있다.


Norah Jones, Don't know why. Live on KCRW


한 주의 중간을 달리고 있는 지금, 아직 휴식의 달콤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노래를 추천한다. 물론 너무 힐링되다 못해 그 안에서 빠져나오기 싫어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오후 다섯 시의 목소리를 가진 노라 존스의 노래를 들으며 돌아오는 휴일을 미리 느껴보며 힘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






글쓴이 / 음악 듣는 기린

소개    / Crate Digger, 어쩌다가 LP의 매력에 빠져버려서 모으기 시작한 게 취미가 되어, 블로그와 브런치를 오가며 음악을 소개해 주는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후에 개개인의 취향을 저격하는 음악들만 골라서 소개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여러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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